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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도세도, 종부세도 맞을수록 맷집만 키워 온 '강남불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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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도세도, 종부세도 맞을수록 맷집만 키워 온 '강남불패'

입력
2020.07.22 04: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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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호재 줄잇는데, 세금만으로 집값이 잡힐 리가...
그린벨트 해제 언급 패착...? 규제 완화, 잘못된 신호"

19일 송파구 일대 아파트 전경. 뉴스1

19일 송파구 일대 아파트 전경. 뉴스1

"정부가 증여 취득세를 올리기 전에 증여하겠다는 문의가 많아요. 자녀와 배우자는 물론이고, 부모나 무주택자 형제까지 동원해 증여를 할 것 같습니다."

21일 시중은행의 한 세무사는 '7ㆍ10 부동산 대책' 이후 서울 강남 다주택자들의 대응 분위기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주택 보유나 양도 모두 세금 부담이 커졌지만, 어쩔 수 없이 집을 팔겠다는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서초구 반포동의 A공인중개사 대표는 "강남 아파트는 가장 수익률 높은 투자상품이자 여간해선 떨어지지 않는 안전자산"이라며 "계속 오를 것이란 믿음이 있으니 세금을 많이 내더라도 남에게 팔지는 않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가주택을 여러 채 보유한 이들에게 '세금폭탄'을 내리기로 한 7ㆍ10 대책이 발표된 지 2주 차에 접어들었지만 이번에도 시장 분위기는 정부 기대와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가아파트가 밀집한 강남 지역에는 매물이 자취를 감추고 수요는 되레 강해져 호가가 사상 최고 수준까지 올라간 곳이 늘고 있다. 정부의 주택공급 확대 방침이 강남 그린벨트 해제와 재건축 규제 완화 기대감으로 이어져 집값이 들썩이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강남 집값을 잡겠다고 내놓은 대책들이 오히려 '강남불패'의 아성을 공고히해 주는, 역설적인 상황이 수년째 반복되면서 전문가들은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신고가 속출... "작년 말로 돌아갔다"

21일 KB부동산이 발표한 주간 주택시장동향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 송파구 등 이른바 '강남 3구' 주택가격(13일 기준)은 한 주 전보다 각각 0.52%, 0.46%, 0.9%씩 상승했다. 6ㆍ17 대책 발표 직전인 지난달 15일부터 누적 상승률은 1.95%, 1.24%, 2.94%로 올라간다. 강남 일부 지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했음에도 인근으로 매수세가 몰리면서 가격이 뛴 것으로 풀이된다.

실거래가 가운데는 사상 최고가도 속출하는 분위기다. 서초구 반포래미안아이파크 130.93㎡는 이달 33억원에 거래됐는데, 1년 전 거래가(29억5,000만원)를 크게 웃도는 역대 최고가다. A공인중개사 대표는 "거래 자체가 거의 없고 호가는 작년 12ㆍ16 대책 이전 수준으로 돌아간 상황"이라고 전했다.

주택공급 대책이 나온다는 소식도 집값을 끌어올리는 데 한 몫하고 있다. 당정이 그린벨트 해제를 강력 추진하겠다고 하자 유력 후보지인 강남구의 세곡동과 내곡동에는 투기 수요가 몰렸다. 그린벨트 해제는 결국 보류됐지만 재건축 규제 완화 기대감은 여전히 살아있다.

지난달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였던 강남구 은마아파트 전용면적 84.43㎡는 지난 14일 21억5,000만원에 매매 거래가 허가됐는데, 지난달 22일 같은 면적의 거래가(21억3,000만원)보다 2,000만원 오른 값이다. 재건축을 추진 중인 강남구 개포주공 7단지 83.7㎡도 지난 3일 역대 최고가인 20억2,000만원에 매매가 이뤄졌다.

학습효과 얻은 시장 "버티면 오른다"

사실 이 같은 상황은 수년 째 반복되고 있다. 정부가 강남 집값을 잡겠다며 규제를 내놓으면 일시적으로 시장이 움츠러들지만 이내 상승세를 회복하는 패턴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인 2017년 8ㆍ2 대책이 대표적이다. 투기 수요를 잡겠다며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를 부활했는데, 다주택자들의 반응은 "어떻게든 양도세만 피하면 된다"였다. 더욱이 정부는 같은 해 12월 임대사업자 등록 시 양도세 부담마저 크게 낮춰주는 혜택을 제공하면서 다주택자에게 되레 '꽃길'을 열어줬다. 그 결과 2018년에는 2010년대 들어 가장 크게 집값이 올랐다. 2018년 1분기 강남 3구 집값은 7~9%씩 폭등했다.

종합부동산세를 부활시킨 2018년 9ㆍ13대책은 다주택자의 투기 의욕을 꺾기 위해 도입됐다. 실제로 이듬해 1분기 강남 3구 집값은 1% 안팎의 하락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약발은 오래 가지 못했다. 규제를 해도 강남 집값은 결국 오른다는 학습효과가 공고해진 탓이다. 이번에는 1주택자들이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갭투자' 열풍이 불었고, 무주택자들은 청약 시장으로 몰려갔다.

작년 10월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해 꺼내든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도 예상과 다른 결과를 낳고 있다. 이달 말 제도 시행을 앞두고 청약 시장에는 광풍이 불었고, 강남의 대규모 재건축 단지에선 나중에 제 값을 받겠다며 후분양을 선택하는 사례가 늘고 있어 오히려 공급 감소에 따른 하방 경직성만 강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주택자들, 강남에서 먼 곳부터 팔 것"

이번 7ㆍ10 대책 후에도 비슷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강도가 더 세진 만큼 다주택자의 고민이 깊어진 건 사실이지만, 강남 아파트를 내놓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한 세무사는 "강남이나 서울에서 먼 곳부터 집을 정리하겠다는 사람이 많다. 지방 거주 자산가들도 강남 집만은 남겨두겠다고 한다"며 "결국에는 증여세 부담을 안더라도 가족에게 넘겨야 하지 않겠냐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강남의 이른바 '똘똘한 한 채'를 보유하려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수도권 외곽이나 지방에는 매물이 쏟아질 수 있어도 강남은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이란 얘기다.

정부가 주택공급을 늘리겠다며 그린벨트 해제 등을 언급한 것이 오히려 패착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최은영 도시연구소장은 "7ㆍ10 대책의 효과가 나오는 시점에 정부가 규제 완화라는 잘못된 신호를 줘서 정책 효과를 반감시키고 있다"며 "단기적인 해법뿐 아니라 수요를 분산시킬 근본적인 처방까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실제 전문가들은 인구와 경제, 교육, 의료시설 등의 수도권 편중을 놔둔 채 땜질식 처방만으로는 시장의 수요를 잠재우기 힘들다고 말한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지금도 강남에는 현대차 사옥 건립 등 개발 호재가 줄지어 있는데, 세금만으로 집값이 잡히길 바라는 것은 요행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최은영 소장도 "지금 같은 수도권 과밀 상황에선 주택 공급이 이뤄져도 집값을 낮추기보다 오히려 인구 집중과 그에 따른 새 수요를 만드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며 "중장기적인 비전을 갖춘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지해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강남 3구 아파트 35만여채 중 절대 다수는 1주택자인데 과거보다 대출 규모가 줄어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힘들어진 경우도 상당히 많다"며 "이로 인한 매물 잠김 현상을 해소할 대책도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환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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