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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한일 문화 속에서 본 ‘이타적 자살’의 민낯

입력
2020.07.22 05:30
수정
2020.07.22 10:53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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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에서 서울시장의 극단적 선택에 따른 파장이 확산되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전통사회부터 자살을 공적인 선택으로 미화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일러스트 김일영

최근 한국에서 서울시장의 극단적 선택에 따른 파장이 확산되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전통사회부터 자살을 공적인 선택으로 미화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일러스트 김일영


◇ 사적인 자살을 공적으로 미화한 일본의 역사적 사례

자살은 개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적인 사건이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자살이 공적으로 수행된 역사적 사례가 적지 않았다. 예를 들어, 무사들이 행하던 ‘할복(腹切り、切腹)’ 이라는 풍습이 있었다. 서민이라면 참수형에 해당하는 무거운 죄를 지은 무사에게 자신의 배를 찔러 자결케 하는 징벌로, 할복을 ‘허락받은’ 사무라이는 목욕재계하고 흰 옷으로 갈아 입은 뒤 정해진 예법에 따라 스스로의 목숨을 끊었다. 절도있고 장엄한 의례인 양 엄숙하게 수행되었지만, 실은 개인에게 자살을 강요하는 가혹한 형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일본에서 자살이 공적인 수단으로 변질된 역사는 근현대까지 이어졌다. 태평양전쟁 때에는 ‘가미카제(神風)’라는 별칭으로 더 잘 알려진 자살특공대가 존재했다. 이 반인권적인 공군 부대는 목표물에 전투기를 충돌시키는 무모한 전법으로 적군에게 피해를 입혔다. 조종사는 십중팔구 목숨을 잃을 것을 전제로 전투기에 올랐는데, 전투 경험이 일천하고 나이가 어린 병사들이 주로 동원되었다. 1970년에는, 노벨문학상 후보에까지 올랐던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가 극단적인 민족주의와 극우 사상에 심취한 나머지 ‘천황 폐하’를 부르짖으며 할복했다. 정치적 주장을 위해 스스로의 목숨을 인질로 삼은 것인데, 이 역시 공적인 이유에서 자살을 감행한 기묘한 사건이었다.

일본의 무사는 살아남아 견뎌야 하는 치욕을 회피하기 위해 할복했고, 어린 병사는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일그러진 존경을 얻기 위해 자살 특공대에 합류했다. 일반적인 자살에 대한 평가와는 달리, 공적인 이유 때문에 목숨을 내던진 이들은 ‘삶에 연연하지 않았다’, ‘더 숭고한 가치를 위해 희생했다’는 식의 찬사를 받았다. 반면, 암묵적으로 강요되는 자살을 거부한 자는 쩨쩨한 소인배라는 평가를 감내해야 했다.

무사의 할복은 종종 화려하게 개화했다가 순식간에 꽃잎을 떨구고 스러지는 벚꽃의 미학에 비유되기도 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를 긍정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정신적 순결함을 추구하는 아름다운 행위인 양 미화하는 풍조까지 있었다. 자살에 대한 칭송은 정작 목숨을 끊은 이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겠지만, 사회적으로는 자살을 긍정하고 심지어는 부추기는 효과를 낳는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목숨을 경시하는 풍조가 팽배했고 실제로 자살이 공적인 의미를 가진 제도로 자리잡았던 것이다.


19세기말 영국에서 출간된 일본 문화 도감에 소개된 무사의 할복 의식. 구텐베르크 프로젝트 (퍼블릭 도메인)

19세기말 영국에서 출간된 일본 문화 도감에 소개된 무사의 할복 의식. 구텐베르크 프로젝트 (퍼블릭 도메인)


◇ 한국에도 충성심으로 자살을 합리화한 역사적 사례

반면, 한국에서는 역사적으로 자살이 바람직하지 않은 행위로 받아들여졌다. ‘신체발부 수지부모 (身體髮膚受之父母, 나의 몸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라는 공자의 가르침)’ 라는 유교의 가르침 때문이었는데, 자살은 선조가 주신 목숨을 제멋대로 끊는다는 점에서 최대의 불효였다. 이런 사고 방식은 자기의 목숨을 경시하는 풍조를 억제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찌감치 개인의 생명을 중시하는 생각이 뿌리내렸다고 볼 수는 없다. 어떻게 보면 개인에게는 자살할 권리조차 없다는 것으로, 우리 시대의 개념에서 말하자면 자기 신체에 대한 결정권이 선조에게 있다는 뜻도 된다. 선조가 원한다면 기꺼이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성립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에는 임금이 신하에게 독약을 내려 음복하게 하는 처벌이 있었다. 원래 사약이란 앓는 신하에게 임금이 약을 내려 쾌차를 비는 것을 뜻했다. 그런데, 죄를 지은 왕족이나 중신에게 임금이 자신의 이름으로 극약을 보내어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하는 형벌로도 쓰였다. 군주에 대한 충성심을 부모에 대한 효심과 동등한 가치로 중시하는 성리학적 가치관에서는, 멀쩡한 사람에게 자살을 강요하는 비인도적인 통치 행위가 간단하게 정당화되었다. 단도로 자신의 배를 찌르게 하는 일본의 할복만큼 처참하지는 않아도, 한반도의 역사 속에서도 군주에 대한 충성심이라는 명분 하에 자살이 공적으로 강요된 사례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 ‘이타적 자살’의 집단주의적 성격

사회학자 뒤르켐은 저서 <자살론>에서 일본의 할복 풍습이나 한국의 사약 제도와 같은 부류의 자살을 ‘이타적 자살’이라고 정의했다. 이 때 ‘이타적’이라는 단어 때문에 오해의 여지가 있으므로 설명을 덧붙이자면, ‘타인을 위한 목숨을 끊었다’ 라는 뜻보다는 ‘외부적 이유에서 비롯된 자살’이라는 의미에서 붙은 표현이다. 삶에 대한 환멸이나 우울 등 내적 원인에 의해 비롯되는 ‘이기적 자살’과는 달리, 외부적 강요나 설득, 사회적 압력 등이 자살의 직접적 계기가 된 경우를 말한다. 이타적 자살 관행은 의외로 많은 문화권에서 발견되어 왔다. 군주가 죽으면 신하나 배우자 역시 죽음을 맞아야 했던 역사 속의 순장이나, 종교적인 신념을 꺾을 수 없어 죽음을 선택하는 순교 등도 이런 부류이다. 명백한 강요라고 규정하기에는 애매한 경우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이런 자살 행위에는 조직의 규율이나 종교적 믿음, 사회적 징벌 등 외부적 요인이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다.

뒤르켐에 따르면 이타적 자살은 집단주의적 사고 방식에 의해 합리화된다. 개인의 인격보다 집단의 필요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 집단의 명예에 비하자면 개인의 삶은 무가치하다는 생각이 근저에 있다. 집단의 가치를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삶을 경시하는 결론에 쉽게 다다르는 것이다. 일본의 할복 풍습은 사무라이 개인의 목숨보다 무사 집단의 명예가 더 중요하다는 가치 판단에 의해 정당화되었다. 선조가 주신 몸에 멋대로 해를 끼쳐서는 안된다는 유교적 신체관도 개인의 개성보다 가족이나 선조와의 연대를 강조하는 혈연적 집단주의와 관련 있다.

이런 사고 방식에서 보자면 이타적 자살은 개인의 인격과 개성, 삶의 다양성에 대한 인식이 옅다는 점에서 전근대적이다. 자신의 생명을 가볍게 보는 생각은 다른 사람의 생명 역시 경시하는 풍조와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상시적으로 물리적 투쟁을 맞닥뜨리는 무사나 군대 사회, 국가주의가 폭력적으로 충돌하는 전쟁, 종교나 당파적 집단주의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 등에서 이타적 자살이 빈발한다. 집단의 가치를 중시한 나머지 개인의 존엄성과 삶에 대한 권리가 뒷전으로 밀리면서 이타적 자살에 대한 우호적 시각도 강해지는 것이다.

◇ 사회 지도층 인사의 자살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인구 대비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몇 년 째 놓친 적이 없지만, 일본도 만만치 않게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다. 특히 한국에서는 전직 대통령,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던 정치인, 시민의 사랑을 받던 지방 자치 단체장 등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큰 충격을 주는 일이 끊이지 않는다.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일본에서도 정부 관료나 정치가 등이 공적 업무와 관련한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는 일이 빈발하는 편이다.

한 명의 사적인 인간이 삶보다 죽음을 택하는 허무주의에 다다른 경위를 헤아릴 길은 없지만,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극단적인 선택에는 공적으로 수행해 온 역할이 어떤 방식으로든 연루되어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관련 뉴스가 끊임없이 회자되고 끊임없는 논쟁을 불러 일으키는 것도 이들의 죽음이 사사로운 일만은 아니라는 반증일 것이다. 공적인 이유로 자살하는 이가 있고, 이들의 죽음을 공적으로 소비하는 대중이 있는 것이다. 할복이나 사약처럼 노골적인 강요는 아닐지언정, 사적인 죽음에 대해 공적인 의미를 부여하고 사회적으로 왈가왈부하는 분위기는 이타적 자살을 종용하는 조건과 상황을 만든다. 어느 사이엔가 집단적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 개인의 희생을 당연한 듯이 생각하는 풍조가 만연한 것은 아닌지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이유를 막론하고 생명보다 중요한 가치는 없기 때문이다.

김경화 칸다외국어대 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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