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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처럼 손쉽게 보청기 낄 수 있는 세상 만들 것"

입력
2020.07.21 04:3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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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성 리딤 대표, 자체 기술로 50만원대 제품 출시

7월 17일 서울 마포구 함께일하는 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강호성 리딤 대표가 난청환자를 위한 스마트보청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7월 17일 서울 마포구 함께일하는 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강호성 리딤 대표가 난청환자를 위한 스마트보청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어머니가 치매라는 소식에 일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갔습니다. 어머니를 돌보다 보니 치매의 원인 중 하나가 난청이라는 것을 알게 됐죠."

90년대 대우전자에 근무하면서 대우그룹 기술인상까지 받았던 강호성 리딤 대표는 2015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고향에 계신 어머니가 치매 질환을 보인다는 것. 그때 난청에서 치매가 비롯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접했다. 평생 정보통신(IT) 분야에서 일을 해왔던 그는 도서관을 다니며 난청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강 대표는 "귀와 눈은 망가지면 회복이 안 되고, 관리를 제때 하지 않아 한쪽이 나빠지면 둘 다 안좋아지게 된다"며 "요즘에는 중장년층뿐 아니라 초등학교 저학년 교사, 치과의사 등 소음 때문에 특정 주파수 대역을 듣는 신경이 망가져 난청을 겪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고 무선 블루투스 이어폰이 보급되면서 부분적 난청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말 국내 난청인구는 810만명이다. 국민 6명 중 1명꼴로 겪을 만큼 흔한 질환인 셈이다. 하지만 국내 난청환자 중 보청기(청력보조기기 포함)를 사용하는 비율은 7%에 불과한 상황. 보청기는 고령층만 착용하는 제품이라는 편견과 함께 300만원에 달하는 비싼 가격 때문이다. 정부 보조금이 나오고 있지만 유지 비용까지 포함하면 여전히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강 대표는 발상의 전환을 했다.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고 가격을 낮출 수만 있다면 보청기가 향후 안경처럼 보편화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어릴 때 안경을 쓰면 부모님이 크게 꾸짖었는데, 지금은 안경을 끼는 사람을 이상하게 보는 시선은 없다"며 "시점만 늦어지는 것이지 귀도 똑같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어떻게 보청기를 개발할지였다. 보청기 시장은 글로벌 상위 6개 업체가 전체의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만큼 진입 장벽이 높았다. 강 대표는 대학 친구인 범재룡 넥스트웨이 전 대표가 떠올랐다. 그는 삼성전자에서 근무하다가 2000년대 MP3 플레이어 전문업체 넥스트웨이를 운영했던 음향 전문가다. 2011년에는 증폭기를 개발했다가 실패 경험을 하기도 했다. 강 대표의 아이디어에 범 전 대표의 기술력이 더해지면서 리딤이 탄생했다.

강 대표는 "예전엔 개발 장인이 아날로그 기술 기반의 보청기 제품을 만들었고 다른 업체들이 이를 따라가기가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라며 "하지만 90년대 중반에 오면서 보청기도 디지털로 바뀌었고, 덕분에 기존에 우리가 해왔던 기본 기술과 노하우를 결합해 자체 기술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4월에는 창업진흥원에서 진행하는 재창업과제에 선정되면서 리딤의 제품 개발에 박차가 가해졌다. 1년 간 지원이 끝나고 '우수제품'에 추천되면서 크라우드 펀딩도 받았다.

그렇게 완성된 보청기 '호렌-10'은 기존 보청기의 형태에서 벗어나 일반 블루투스 이어폰을 본떠 제작됐다. 하루 종일 보청기를 착용해야 하는 환자 입장에서 귀를 뒤덮는 기존의 보청기가 불편하다는 의견을 반영했다.

기술을 자체 개발한 데다가 대리점 유통구조에 의존하지 않는 덕분에 보청기 가격을 50만원 수준으로 크게 내렸다. 강 대표는 "제품을 개발하면서 난청 환자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가격 좀 싸게 만들어 편하게 쓸 수 있게 해달라는 말이었다"며 "자식들이 수백만원짜리 보청기를 사줘도 잃어버릴까봐 평소에는 보관하다가 자식이 올 때만 쓴다는 말에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기존 보청기와 달리 스마트폰으로 자기 귀에 맞게 피팅이 가능하다는 특징도 있다. 사람마다 잘 듣지 못하는 주파수 대역이 다르다 보니 보청기는 주기적으로 제품을 사용자 환경에 맞게 피팅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존 사용자들은 주기적으로 대리점에 찾아가 10만~20만원의 피팅비를 내야 했다.

사업이 탄력을 받으면서 '왕년의 부장님'들이 대거 합류했다. 삼성전자연구소에서 나와 다산네트워크 연구소장을 역임한 이현수 수석, 삼성전자연구소에서 17년 간 하드웨어를 개발한 박기영 수석, 의료기기업체 바텍의 대표를 역임한 박수근 마케팅책임자(CMO) 등 각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들이 제품 상용화에 나서고 있다.

리딤의 최종 목표는 난청 환자들이 증상 초기에 손쉽게 보청기를 착용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게 되면 난청의 범위와 증세가 확대될 수 있는 만큼 초기에 보청기를 착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지난 3월 예비사회적기업 육성기업으로 지정된 리딤은 이룩한 성과를 사회와 나누겠다는 기업 철학을 갖고 있다.

강 대표는 "애초에 과거 잘나갔지만 자기 길을 펴지 못하고 뒷산이나 다녔던 우리들이 지금 사업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부의 재창업 지원이 있었다"며 "그런 만큼 우리도 우리 사업 본거지인 마포에 있는 1,800여 명의 청각장애인에 제품을 기부하고 정기적으로 청력 측정을 해드리는데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 대표는 더욱 착용하기 편한 제품 개발에도 매진 중이다. 하반기에는 귀에 쏙 집어넣을 수 있는 커널형 블루투스 보청기를 출시할 예정이며 내년에는 보청기에 온도ㆍ심박ㆍ동축센서를 탑재해 생체리듬을 측정하고 이를 병원 주치의에게 실시간으로 전달하는 기능이 포함한 보청기를 선보일 계획이다.

해외 진출도 계획하고 있다. 고령화 사회가 빠르게 다가오면서 일본, 유럽 등에서의 보청기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세계 보청기 시장은 매년 7% 성장하면서 2025년에는 약 17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강 대표는 "6개 업체가 공고하게 장악했던 보청기 시장에 진출해 가격 거품을 없애고 난청환자가 보다 편리하게 쓸 수 있는 제품을 선보이는데 노력할 것"이라며 "의료기기 업체와 연계하는 등의 전략으로 글로벌 시장에도 진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안하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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