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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세, 인두세, 창문세...

입력
2020.07.2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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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세 이야기(7.24)

잉글랜드 사우샘프턴 포틀랜드 거리의 한 빌딩. '창문세' 때문에 막은 창들이 보인다. wikipedia.org


1949년까지 존속한 인도 서남부 토호국 트라반코르(Travancore)에는 ‘유방세’라는 게 있었다. ‘인간 이하’인 카스트 천민 여성은 가슴을 가릴 수 없었고, '건방지게' 가리려면 세금을 내야 했고, 세금도 안 내고 가슴을 가렸다가 걸리면 더 중한 벌금을 내야 했다. 난젤리(Nangeli)라는 한 천민 여성이 그 조치에 항의해 징세원 앞에서 자신의 유방을 칼로 도려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있다. 불과 한 세기 전 일이다.

후기 조선을 병들게 한 것 중 하나도 ‘삼정 문란’이라 불리는 징세제도였다. 관료들은 조정을 위해, 제 곳간을 채우기 위해, 갓난아이에게도, 망자에게도 군포(병역 대신 내는 삼베 옷감)를 내게했다. 각각 황구첨정(黃口簽丁), 백골징포(白骨徵布)라 불렸다.

14세기 잉글랜드 농민반란(와트 타일러의 난)의 발화점은 이른바 ‘인두세’였다. 백년전쟁을 치르느라 가난해진 왕가는 흑사병 시대의 농민에게 소출 불문, 나이 불문, 주민 숫자에 따라 일정액의 세금을 내게 했다. 5개월 여의 대치 끝에 반란은 진압됐고, 봉기 주도자들은 모두 처형됐다. 그 덕에 세율과 징세 기준도 얼마간 바뀌었지만, 세목은 지금도 남아 ‘주민세’가 됐다.

17세기 영국 왕실이 거둔 세금 중에는 ‘창문세’가 있었다. 창문 개수에 따라 세금을 차등 부과하는, 일종의 부유세였다. 1696년 도입 초기 모든 가구는 매년 최소 2실링, 창문이 10~20개면 4실링, 21개 이상이면 8실링을 내야 했다. 창문세는 ‘난로세’, 즉 난로 개수에 따라 매기던 세금이 징세 편의를 위해 진화한 거였다. 창문세에 대한 저항도 거세, 아예 창문을 합판으로 막아 없애거나, 감추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환기가 안돼 호흡기 질병이 만연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1776년 왕실은 창문 6개까지는 면세혜택을 주는 등 몇 차례 법을 고쳤다. 창문세는 1851년 7월 24일 공식 폐지됐다. 그게 오늘날의 주택세나 재산세로 맥을 잇고 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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