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불법 승계 사건 미공개 자료 들여다보니
법원 영장기각, 심의위 불기소 권고의? 결정적 이유
검찰 "李,?목적ㆍ동기 불순... 허위발표ㆍ은폐 일관”
삼성그룹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을 받아 왔던 이재용(52)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검찰의 기소 여부 결정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법조계 관측이 분분하다. 1년 7개월 동안 수사를 이어 온 검찰 입장에서는 기소를 밀어붙일 태세지만, 법원이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하고 대검찰청 검찰수사심의위원회(심의위)에서도 압도적인 표차로 '수사중단ㆍ불기소'를 권고한 사실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19일 3차장검사 산하 부장검사들과 함께 이 사건 관련 회의를 극비리에 진행했다. 이르면 이번 주, 늦어도 다음 주에는 대검과의 조율을 거쳐 이 부회장 수사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매듭을 지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한국일보가 지금까지 공개된 사건 내용과 미공개 자료 등을 토대로 분석한 결과, 140쪽이 넘는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에 '구체적인 범죄 사실'은 극히 일부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됐다. 법조계에서 “이 부회장의 범죄 사실이 제대로 특정되지 않은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도는 이유다.
“부정한 의도 합병” vs “정상적 경영활동”
삼성 측과 검찰 측이 팽팽히 맞서고 있지만, 여러 자료를 토대로 살펴본 이 부회장 등의 범죄사실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삼성 측이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주주들을 속였는지(사기적 부정거래, 시세조종) △합병 성사를 위해 삼성바이오 자산을 의도적으로 부풀렸는지(분식회계) 등의 문제를 둘러싸고 삼성과 검찰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는 것이다.
핵심은 역시 삼성물산-제일모직 간 합병이다. 일단 양측은 대전제부터 극명하게 다르다. 검찰은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지배력 강화를 위해 추진된 것”이라는 입장이다. 실제로 이 부회장 등의 구속영장에서 90%가량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 서술에 할애된 것으로 알려졌다. 합병 목적과 동기 자체부터 ‘불순했다’는 걸 입증하려 한 셈이다. 그러나 삼성 측은 △박근혜 정부의 규제 방침 준수 △경영권 강화 △사업상 시너지 효과 달성 등 정상적인 경영 활동이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팽팽한 입장 차이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있었던 삼성 측의 각종 노력에 대한 해석의 차이로 이어졌다. 검찰은 합병을 두 회사의 이사회가 아니라, 이 부회장 및 미래전략실이 독단적으로 결정한 것으로 봤다. 2012년 10~12월 작성된 ‘프로젝트-G(지배를 의미하는 Governance에서 따온 명칭)’ 문건을 비롯한 삼성 내부 문건의 존재 등을 볼 때, 이 부회장이 합병 과정의 주요 고비마다 관여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실제로 합병 이후 삼성그룹에서 이 부회장의 지배력은 한층 강화됐다. 반면 삼성 측은 “이 부회장의 지배력 강화는 합병으로 인한 지분 변동에 따른 불가피한 결론이었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합병비율 조작’ 빠져… “범죄사실 특정 안돼”
문제는 합병 의도가 무엇이었든, ‘위법 행위’의 유무는 별개라는 점이다. 검찰은 이 부회장에 대해 자본시장법상 사기적 부정거래와 시세조종 혐의만을 적용했을 뿐, 배임(삼성물산 주주들에 대한 손해) 혐의까지 포함하진 않았다. ‘이 부회장을 위한 합병이었다’는 것만으로는 이 사건 범죄사실이 구성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삼성 측도 심의위에서 이 지점을 집중적으로 공략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검찰은 삼성이 두 회사의 합병 비율을 조작한 것으로 의심했다. 제일모직 지분 40%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삼성 오너 일가에 유리하도록 합병 비율을 ‘1:0.35(제일모직:삼성물산)’로 설정한 게 애초부터 '인위적 조작'의 결과라는 논리였다. 하지만 수사 과정에서 확실한 증거가 나오지 않자, 갑자기 ‘합병 과정 전체’로 수사 범위를 확대했다는 게 삼성 측의 반론이다. 실제로 이 부회장 등의 범죄사실에 ‘합병 시점을 이 부회장과 미전실이 임의로 잡았다'는 대목은 있지만, '비율 조작'의 구체적인 행위 부분은 설명이 부족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이 지난달 9일 이 부회장 등의 구속영장을 기각하고, 심의위도 사실상 삼성의 손을 들어주게 된 결정적 배경은 바로 이 지점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140여쪽 가운데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범죄 행위’가 적힌 분량은 10여쪽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합병 관련 사기적 부정거래의 핵심인 ‘합병비율 조작’을 밝혀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법조계에서는 이와 관련, “이 부회장의 범죄사실이 구체적으로 특정되지 않은 게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오고 있다. 이 부회장 영장 기각 당시 원정숙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밝힌 사유 가운데 “기본적 사실관계는 소명됐다”는 이례적인 문구를 사용한 것도 ‘범죄 혐의 소명’에 이르지 못했다는 걸 에둘러 표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검찰 “삼성바이오, 증거인멸 의구심”
물론 검찰도 할 말은 있다. 검찰은 삼성 측이 △투자 위험 정보 은폐 △합병 관련 허위 공시 자료 발표 △자기주식 매각 및 취득 등을 통한 인위적 주가부양 등을 실행했다는 사실에 비춰 ‘사기적 부정거래’가 명백하다는 입장이다. 자본시장법에 정해진 ‘부정한 수단, 계획 또는 기교를 사용한’ 경우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문제의 합병이 ‘정상적인 경영활동’이라면, 앞서 구속된 삼성바이오의 일부 임직원들은 왜 형사처벌을 감수하면서까지 적극적으로 증거 인멸을 실행했는지 의구심이 제기된다.
게다가 “이 부회장은 합병 절차에 일일이 관여하지 않았다”는 삼성 해명과는 달리, 그가 합병 성사를 위해 직접 발로 뛴 정황도 있다. 2015년 7월 이 부회장은 미국에서 워런 버핏을 직접 만나 제일모직의 주요 자산인 삼성생명과 관련, 삼성 오너 일가가 보유한 지분을 매각하고 ‘비밀 이면계약’을 맺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위원회가 받아들이지 않아 이 거래는 무산됐고, 투자자들에게 공개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 같은 투자위험 정보는 투자자들에게 제공됐어야 했는데도 삼성은 이를 은폐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아울러 검찰은 삼성이 합병의 시너지 효과를 당초 6조원대로 추정했다가 15조원대라고 부풀린 사실도 밝혀냈다. "합병에 부정적이었던 삼성물산의 대주주 국민연금을 설득하기 위해 특별한 근거 없이 자의적으로 산출해 냈다"고 검찰은 주장한다.
그럼에도 검찰로선 이 부회장 기소를 강행할 경우, “최근에 검찰이 도입한 제도를 스스로 무력화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특히 수사심의위원 13명 중 10명이 '불기소' 의견에 찬성했다는 건 상당한 부담이다. 그렇다고 심의위 권고를 따르자니, 이 역시 ‘압수수색 50회, 소환조사 인원 100명 이상’을 기록한 이번 수사가 무리했다는 걸 자인하는 꼴이자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도 나올 수 있어 무작정 선택하긴 힘들다. 검찰이 이런 딜레마를 어떻게 해소할지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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