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야 이바노비치 이바노프(7.20)
인간 유전자를 동물에 이식하는, 윤리적으로 아슬아슬한 실험이 꽤 잦은 모양이다. 최근에는 대형 유인원을 포함한 영장류의 뇌에 인간 뇌세포를 이식해 회백질의 성숙도를 측정했더니 자기 종 평균보다 훨씬 커지더라는 실험 결과도 보도됐다. 인공 교배 등을 통해 새로운 종을 ‘창조’한 예는 드물지 않지만, 인간-비인간의 유전자가 '유의미한 교류'를 시작한 건 전례없던 일이다. 과학은 지금 SF가 앞서 간 길을 따르며, 불확실성의 새로운 철조망을 넘보기 시작했다.
'SF의 길'이란 말은, 엄밀히 보자면 틀렸다. 인류가 DNA의 존재조차 몰랐던 1920년대, 러시아 생물학자 일리야 이바노비치 이바노프(Ilya Ivanovich Ivanov, 1870.7.20~ 1932.3.20)가 먼저 실험을 시도했다. 가축 인공수정 분야의 독보적 권위자였던 그는 인간과 유인원의 인공수정도 가능하리라 판단했고, 볼세비키의 지원을 받아 암컷 침팬지 세 마리의 자궁(난자)에 인간 정자를 주입했다. 이른바 '휴먼지(Humanzee)' 실험에 실패한 뒤, 그는 거꾸로 여성 난자와 고릴라ㆍ침팬지 정자 수정을 시도했다. 소비에트 여성 5명이 실험에 자원했다. 그는 거듭 실패했고, 1930년 숙청당해 5년 유배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유배지 알마타의 한 수의연구소에서 일하다 약 2년 뒤 뇌출혈로 숨졌다.
구 소련 출신 케임브리지대 사학자 알렉산더 에트킨드(Alexander Etkind)에 따르면 이바노프는 1910년대부터 야심을 키웠다고 한다. 종마 인공수정 기량을 인정받은 그는 소비에트과학아카데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볼세비키 정부 지원을 받아 1926년 실험동물을 구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떠났고, 도중에 들른 프랑스 파리에서 파스퇴르 연구소 등의 지지와 후원을 얻기도 했다. 미국도 비슷한 시기 유사한 비밀 실험을 벌였다는 주장도 있다.
저 실험의 바탕에는 체제 경쟁 외에 (소비에트형) 인간 개조와 ‘영생’의 욕심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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