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반 양현종의 투구는 그 동안 KIA를 이끌던 에이스의 모습과 어울리지 않았다. 숫자가 가장 뚜렷하게 말한 건 결정구 체인지업의 무뎌진 감각이다. 지난 시즌과 구종 구사 비율의 차이는 거의 없지만 피안타율(2019 0.208ㆍ2020 0.379)이 크게 상승했다. 마운드에서 투구 운영의 폭이 좁아진 건 어쩌면 당연했다.
반면 속구의 스피드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즌이 시작됐던 5월보다 조금 더 빨라졌다고 숫자는 말한다. 표면상 양현종의 기이한 부진은 속구 스피드의 변화는 크게 없으나 대표 결정구인 체인지업의 감각이 무뎌지면서 흔들리고 있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하지만 ‘왜’라는 단어로 한 겹 더 깊게 파고 들어가면 근본적인 원인이 조금 다를 수도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바로 속구의 문제다. 양현종은 속구 구사율이 60%에 가깝다. 이는 곧 속구가 흔들리면 ‘대투수’의 근간도 뿌리째 흔들리게 된다는 얘기다. 보통 투수가 속구를 이 정도 비율로 던지려면 구위가 특별하거나, 속칭 핀포인트 제구력이 필요하다. 굳이 말하자면 양현종은 전자에 가깝다. 그리고 양현종 구위의 특별함은 높은 릴리스 포인트가 만든 공의 각도와 타자 방향으로 공을 길게 끌고 나오는 능력(익스텐션)에서 만들어졌다.
이전만큼 타자 쪽으로 공을 끌고 나와 던지지 못한다. 타이밍 싸움에서 때론 단 몇㎝ 차이로 파울이 되기도, 홈런이 되기도 해서 미묘한 차이는 엄청난 변화다. 수치상 스피드가 빨라졌다고 해도 익스텐션이 짧아지면 타자의 체감 구위는 다르다. 투구의 비행 거리가 길고 멀어졌기 때문이다. 이때 제구의 미스는 곧 장타로 이어진다. 지난 16일 삼성전에서 속구 하나만을 노리고 들어온 이원석의 2점 홈런이 바로 그 예다.
왜 양현종의 속구가 달라졌을까. 한 겹 더 벗겨 파고 들어가 본다. 결론부터 말하면 투구 동작의 문제고 또 그 이면엔 컨디셔닝의 문제가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투수의 투구동작 단계를 아주 쉽게 말하면 ‘(다리를 들어) 힘을 모으고, (그 모아진 힘을) 타자 쪽으로 이동하고, (앞다리가 착지하고) 몸통을 회전시키면서 공을 던진다’이다.
투구동작은 한번 다리를 들어 시작하면 공을 던지기까지 연쇄 동작이기 때문에 처음 ‘(다리를 들어) 힘을 모으고’의 동작이 흔들리면 당연히 연쇄적으로 다음 단계도 전부 흔들리게 되고 자신의 의지와 느끼는 감각과는 전혀 다른 투구동작이 돼버리기 일쑤다.
양현종은 ‘힘을 모으고’의 동작이 남다르다. 다리를 높게 든다. 좋은 투수들이 갖는 특징이기도 하고 또 그만의 장점이지만 사실 리듬과 밸런스를 유지하는 게 그리 쉽지는 않다. 그래서 양현종의 좋고 나쁨의 체크포인트는 항상 이 부분이 기준이 됐다. 사실 돌아보면 올 시즌 이 부분의 변화와 흔들림이 유독 심했다.
투수들이 공을 앞으로 끌고 나오지 못하는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대개 ‘힘을 모으고’의 첫 단계에서 시작된다. 첫 단계가 흔들리고 무너지면 공을 앞으로 끌고 나가는 단계인 다음 체중 이동의 과정이 급해진다. 무게 중심이 내려오는 힘을 제대로 버텨내지 못하고 빨리 회전을 시작, 팔이 뒤에 남게 되고 결국 공을 일찍 떠나게 하고 만다.
이 단계의 동작이 흐트러진 데에는 피로도 축적 등 컨디셔닝의 문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고 본다면 양현종은 6시즌 연속 180이닝 이상을 투구했다. 성향상 굳이 내색은 하지 않아도 육체적 피로도는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2020시즌에는 팀의 주장까지 맡았다. 일반적으로 야수들과는 생활 패턴, 경기를 준비하는 루틴이 다르고 정신적으로 예민한 투수에게 주장의 역할을 맡기지 않지만 윌리엄스 감독에게는 상징적인 의미가 필요했고 또 불가피했다.
육체적 피로도에 항상 의무가 앞서고 책임감이 강한 양현종에게 주장의 역할은 상당한 정신적 피로도가 더해졌을 거라는 짐작은 누구나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루틴과 패턴이 무너지면 컨디셔닝이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다. 체중 증가 등 투구에 민감한 신체적인 변화도 올 수가 있다.
마운드 위가 혼자이듯 결국 혼자 풀어내야 할 문제다. 하지만 그에게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해 보인다. 얼핏 지난 시즌의 부진과 같아 보인다. 그래서 ‘언제 그랬냐는 듯 곧 좋아질 것’이라는 견해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다른 결이라고 본다.
주변에서 도움을 줘야 한다. 가장 시급한 건 주장의 역할이라는 정신적 피로도를 덜어내 주는 게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가장 큰 도움이고 그게 힘이 되지 않을까 싶다.
스타는 기대에 부응한다. 하지만 슈퍼스타는 기대를 넘어선다. 지금껏 양현종은 우리의 기대를 넘어서며 대투수의 자리에 섰다. 여러모로 이번 부진의 위기가 그리 쉽지는 않겠지만 분명 우리들의 기대를 넘어서 다시 한번 거뜬히 이겨낼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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