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성장 중심 개발민족주의에 갇힌 그린뉴딜

입력
2020.07.18 06:00
23면
0 0
기후위기비상행동 회원들이 1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정부의 그린뉴딜 계획에 대한 비판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기후위기비상행동 회원들이 1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정부의 그린뉴딜 계획에 대한 비판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그린뉴딜’ 세부계획을 발표하자마자 환경·노동·농민·여성·인권·종교 등 350여 단체로 구성된 ‘기후위기비상행동’을 필두로 시민사회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기후위기와 불평등 위기 대응을 위해 사회·경제구조의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그린뉴딜의 취지에 전혀 부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대통령의 검토 지시 후 두 달간 정부와 여당이 그린뉴딜과 관련해 보여준 함량 미달의 입장과 행보를 생각하면 이 같은 결과는 예견된 것이었다. 그래도 대통령이 직접 국민보고대회를 주재한다니 다르지 않을까 기대를 버리지 않았던 이들은 무척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국민보고대회는 기업을 중심으로 ‘국력’을 결집해 한국의 산업 국제경쟁력 강화와 경제성장을 이루고 ‘2등 국가’를 넘어 세계시장을 이끄는 ‘선도국가’로 도약하겠다는 개발민족주의와 성장주의의 비전을 재확인하는 자리였다. 그린뉴딜에 대해서는 기존의 녹색 사업들과 다를 바 없는 내용에 재벌기업의 전기차 사업 설명 이벤트가 추가되었을 뿐이다. 파리 협약에 따른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도, 석탄화력발전 등 회색산업의 규제와 폐쇄 계획도, 기후 피해와 탈탄소화 비용이 노동자·농민·자영업자·소상공인과 취약계층에게 불평등하게 전가되지 않도록 하는 ‘정의로운 전환’도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상황이 이럴진대 시민사회의 기후행동도 달라지지 않을 수 없다. 기후위기의 시급성을 강조하고 우리 아이들에게 재앙을 물려줄 것이냐 호소하는 것으로, 온실가스 감축과 재생에너지 확대를 촉구하는 것으로 정부와 여당을 설득하고 압박할 수 있으리라는 나이브한 기대에서 벗어나야 한다. 계속되는 비판에도 정부와 여당이 무늬만의 그린뉴딜을 고수하는 것은 다른 많은 영역에서도 드러나듯 친기업·시장 중심 정책 지향, 기술관료주의와 공고히 결합된 개발민족주의와 성장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정면으로 부딪치지 않고서 제대로 된 그린뉴딜을 추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통령이 주창하는 ‘선도국가’부터 그렇다. 이 관점은 기업의 이윤 창출과 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통한 GDP 등 경제지표상의 성장과 세계시장 점유율의 증가를 곧 ‘발전’으로, 또 국가와 민족 구성원 모두의 목표이자 의무로 등치시킨다. 간혹 ‘노동 존중’, ‘사람 중심’과 ‘포용’이 거론되지만 기업과 성장 중심으로 정의된 발전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그러하다. 대체 선도국가의 국가는 누구를 위한 것이며 민족은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불평등의 심화로 노동자·농민·자영업자와 취약계층의 삶이 위협받고 성장주의로 기후·생태계가 붕괴된다면 그 같은 발전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개발민족주의와 성장주의가 유지되는 한 2050년 탄소배출 순제로 목표가 수용되고 재생에너지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이루어진들 탈탄소 사회·경제 구조로의 정의로운 전환으로 이어지지 못할 것이다. 대신 재벌·대기업, 자산운용사, 금융사 등이 새로운 이윤 창출의 기회를 찾아 에너지·리모델링·탄소배출권·녹색금융 시장에 대거 진입하는 재난 자본주의의 확장판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사회·경제·환경 정의의 실현, 공공성의 확립과 생태적 지속 가능성의 보장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우리가 진정 두려워해야 할 것은 대통령이 말한 ‘영원한 2등 국가’가 아니라 바로 그러한 상황이다.



김상현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