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손만큼 작은 이 보드는 정보를 수집 처리해요. 여기에는 소리 등을 감지할 수 있는 ‘센서’, 정보를 주고 받는 ‘네트워킹’ 기능도 있어요. 이 보드가 스마트폰, 인공지능(AI) 스피커, TV, 전등에도 내장돼 말만 해도 TV나 전등이 켜지는 거에요.”
지난 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융복합인재교육센터 AI실. 오렌지색의 작은 보드를 들고 ‘스마트홈’에 사용되는 사물인터넷(IoT) 원리를 설명하는 강사의 말에 수강생들은 귀를 쫑긋 세웠다. 수강생은 초중고교 학생들이 아니라 모두 성인. 반백의 노신사, 취업준비생, 학부모와 전업 주부 등 다양했다. 초반 낯선 전문 용어가 등장할 때 굳어졌던 얼굴은 교육용 키트로 보드를 직접 만들며 ‘감’을 잡아서인지 3시간 강의가 끝날 즈음엔 환해져 있었다. 이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 해서 사물인터넷이 궁금한데도 마땅히 배울 곳이 없었다”며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알려주니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서대문구가 4차 산업혁명에 맞춘 평생교육 프로그램으로 호평을 얻고 있다. 서예나 고전읽기 등 고리타분한 성인 대상 강좌 대신 AI, 드론, IoT, 코딩, 빅데이터, 3D프린터 관련 학습기회를 제공해 구민들의 미래 역량 강화에 나선 것이다.
16일 서대문구에 따르면 야심 차게 준비해 온 융복합인재교육센터가 지난달 26일 개관했다. 이 센터는 2개층 585㎡ 면적에 빅데이터실, 3D메이킹실, 디지털드로잉실, 코딩카페, 딥러닝실, AI실, 드론 및 자율주행실, 미디어제작실 등 전용강의실을 갖춰, 어린이ㆍ청소년 뿐만 아니라 성인에게도 학습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성인 대상 강좌는 모두 20개. ‘사물인터넷 기술 체험:스마트홈’ ‘모바일 앱 만들기’ ‘드론 조립부터 비행까지’ ‘스마트폰 하나로 유튜버 도전’ ‘3D프린팅을 활용한 피규어 만들기’ 등 중장년은 선뜻 접근하기 어려웠지만, 한번쯤은 호기심에 구미가 당겼을 법한 강좌다. ‘사물인터넷 기술 체험:스마트홈’ 강좌를 신청한 송기락(70)씨는 “대중교통 앱이 버스 도착시간 어떻게 알려주는지 평소 궁금해하다 그 원리나 요즘 추세를 알고 싶어서 신청했다”고 말했다. 서대문구 관계자는 “지난달 22일 온라인 신청 접수를 시작하자마자 몇몇 강좌는 순식간에 마감돼 놀랐다”고 말했다.
사실 서대문구는 수 년 전부터 차별화한 평생교육 사업을 꾸준히 진행해 온 ‘평생학습’의 메카다. 2013년부터 시작한 소규모 학습공동체 지원 사업인 ‘세로골목’이 대표적이다. 세로골목은 구민 5명이 모여 특정 희망 강좌를 신청하면 일터, 카페, 종교시설, 경로당, 도서관 등 어디든 강사를 파견해 최대 12회까지 강의를 해주는 찾아가는 서비스다. 매년 약 50개 모임이 만들어질 정도로 호응이 좋다. 모임에는 지식ㆍ재능ㆍ노하우를 나누고 싶다고 신청한 주민 중 별도 절차를 거쳐 선발된 강사인 ‘골목지기’가 파견된다. 골목지기는 사전에 이화여대 글로벌미래평생교육원에서 성인학습자 이해, 교수법, 상담기법, 교안작성법, 스피킹, 매너, 강의시연 등의 사전 교육을 받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진 올해는 이달 중 골목지기 사전교육을 마치면 다음달부터 평생교육관에서 강의가 진행될 예정이다.
박물관 관장, 무용학과 교수, 여행작가, 미술작가 등 전문가의 수준 높은 강좌를 들을 수 있는 ‘찜질방 인문학’도 서대문구의 자랑이었다. 어려운 인문학을 편하게 듣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강의실이 아닌 찜질방에서 진행한 이 사업은 2013년 시작돼 장소를 제공해오던 찜질방 사정으로 종료된 2016년까지 주민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이밖에 구가 예산을 지원하면 주민 운영진이 각 동에서 자체적으로 강좌를 기획해 주민에게 제공하는 ‘동네배움터(2013년~현재)’, 청년ㆍ자영업자ㆍ저소득노동자 등 학습참여기회가 제한된 소외계층을 위한 ‘삼각지식김밥(2017년)’ 등 새롭고 참신한 평생교육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이 같은 평생학습 시스템 구축 노력 덕분에 서대문구는 지난해 10월 유네스코 평생학습연구소(UIL)로부터 ‘2019 유네스코 학습도시상’을 받았다. 이 상은 평생교육 관련 심사를 거쳐 가입된 52개국 225개 도시의 모임인 ‘유네스코 글로벌 학습도시 네트워크’(GNLC) 중 성과를 보여 준 도시에 2년마다 수여하는데, 서울 25개 자치구 중에선 서대문구가 첫 수상이었다.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 ‘포용적 교육도시’와 ‘평등한 디지털교육’을 목표로 올해 교육경비 보조 예산을 지난해 보다 2배 이상 증액했다”며 “관내 구민들이 융복합기반의 미래 역량을 함양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평생학습 인프라 확충에 적극 투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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