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황인식 서울시 대변인이 직원 인권침해 진상규명에 대한 서울시의 입장 발표 후 기자의 질문에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다. 정준희 인턴기자.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모르쇠’로 일관하던 서울시가 15일 진실 규명을 위한 ‘민관합동조사단’ 구성 계획을 내놨다. 그러나 조사단 출범 시기, 조사 계획 등 구체적인 로드맵이 빠진데다, 강제 조사권한이 없어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맹탕’ 계획이란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빗발치는 진상규명 요구에 서울시가 응하는 모습은 취했지만, 결국 여러 의혹에 대한 명쾌한 답을 내놓는 대신 조사단에 공을 넘긴 꼴이어서 비판도 나온다.
서울시는 이날 발표한 ‘직원 인권침해 진상규명에 대한 서울시 입장’을 통해 “여성단체, 외부 인권ㆍ법률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민관합동조사단’을 구성ㆍ운영해 철저한 진상규명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 계획에 구체적인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시는 조사단 구성ㆍ운영방식ㆍ일정 등을 여성단체 등과 구체적으로 협의할 예정이라고만 밝혔을 뿐이다. 조사단 규모, 출범 시기, 권한 등 조사의 실효성을 가늠할 정보들은 빠졌다. 여론에 떠밀려 내놓은 대책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조사단이 꾸려져서 본격 활동에 나서더라도 진실에 접근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수사기관과 달리 강제 조사 권한이 조사단에는 없다. 특히 피해여성이 “서울시 내부에 피해를 호소하고 도움을 요청했지만, 묵살당했다”고 할 정도로 시에 대한 불신이 높은 상황에서 서울시가 참여하는 조사단이 과연 객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에도 의문이 남는다.
이에 따라 피해자가 조사에 응할지, 조사는 객관적으로 진행될지, 사건 관련 당사자들이 나온 조사결과를 받아들일지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은의 변호사는 “직장 내 성폭력 관련 신고자의 입장에서는 회사가 공정하게 사안을 들여다 볼 것이냐 하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며 “특히 신고자가 내부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도움을 요청했는데도 묵살됐다면 더욱 불안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피해여성이 조사단 결과를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란 것이다.
서울시는 지난 9일 박 전 시장의 성추행 피소 사실이 처음 알려진 뒤 그 동안 제기된 의혹들에 충분한 답을 하지 않음으로써 혼란을 부추겼다. 핵심 쟁점 중의 하나인 박 전 시장의 피소 인지 시점을 두고 말이 달랐다. 서울시는 그 동안 “박 전 시장이 실종됐던 9일 언론 보도를 통해 처음 접했다”는 입장이었지만, 이후 임순영 젠더특별보좌관이 박 전 시장이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된 것을 사전에 인지, 박 전 시장과 회동한 사실이 알려진 게 대표적이다.
이날 민관합동 조사단 구성 계획 발표에 나선 황인식 대변인도 임 특보의 행보와 관련 “젠더 특보께서 직접 말씀해야 할 부분”이라고만 밝혔다. 사건 발생 6일만에 이뤄진 사태 관련, 서울시의 첫 입장 표명에 기대가 모였지만 황 대변인은 “앞으로 민관합동 조사단에서 규명될 것”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사건 전말에 대한 ‘키’를 쥐고 있는 ‘6층 인사’들에 대해 조사단이 어느 수준으로 돋보기를 들이댈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정무라인의 별정직 공무원 27명은 지난 10일 당연 면직됐다. 일반직 공무원은 면직이 돼도 공무원 신분을 유지해 소속 기관의 조사에 응하지 않을 수 없지만, 별정직 공무원들은 다르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에는 별정직 공무원들을 조사할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이는 서울시가 조사단을 꾸린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지만, 과연 이들이 조사단의 조사에 응할지는 지켜봐야 한다. 서울시 직원들 사이에서도 “민관합동조사단으로는 진실규명이 어렵다”는 회의적 시각이 상당하다.
외부 수사기관의 강제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과 이날 서울시가 구성 계획을 밝힌 조사단에 대한 무용론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 전 시장의 정확한 사망 경위 확인을 위해 박 전 시장 휴대폰 디지털포렌식 작업에 착수한 경찰이 이날 고한석 전 비서실장 소환 조사했다. 서울시 한 공무원은 "다른 정무라인 인사들까지 조사해 객관적인 정황들을 확보한다면 민관합동조사단의 역할 축소는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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