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투의 역설, 천동설, 경제학

이전기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봉투의 역설, 천동설, 경제학

입력
2020.07.15 16:00
수정
2020.07.15 17:48
0 0
차현진
차현진한국은행 연구조정역

©게티이미지뱅크


1776년은 상당히 흥미로운 해다. 미국에서는 독립전쟁이 시작되고, 영국에서는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통해 경제학의 길을 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개혁군주 정조가 즉위했다. 변화의 조짐이 여기저기서 뭉개 뭉개 피어오르던 때였다.

그해 7월 미국의 독립선언은 조세저항에서 시작되었다. 프랑스와 전쟁을 치른 뒤 재정적자에 쪼들리던 영국 정부는 북미 식민지를 향하여 설탕, 종이, 유리, 잉크, 홍차 등에 닥치는 대로 세금을 매기기 시작했다. 참다못한 식민지 보스턴에서 폭동이 터졌다.

그 세금들을 도입한 사람은 찰스 타운센드 재무장관이다. 그가 세수확대에 골몰할 때 그의 집에는 애덤 스미스가 드나들고 있었다. 애덤 스미스는 원래 글래스고대학교 도덕철학 교수였으나 그 무렵 장관 아들의 가정교사로 뛰었다. 명예 대신 돈을 택한 것이다.

애덤 스미스는 장관 아들의 견문을 넓혀주기 위해서 틈만 나면 국내외 각지를 함께 여행했다. 그 여행 경험에서 나온 것이 '국부론'이다. 그 책의 제1장은 분업을 다루는데, 여행 중에 보았던 폴란드의 옥수수 농장과 프랑스의 포도주 밭이 예로 나온다.

그 책 제2장에서 애덤 스미스는 분업의 원동력을 '교환 성향'이라고 설명했다. 개는 뼈를 교환하지 않는데 인간은 항상 무엇인가를 교환한다. 인간의 교환 행위는 남의 물건에서 결핍감을 느끼는 데서 나온다. 그것이 애덤 스미스의 생각이다.

철학가들은 애덤 스미스의 주장을 경멸한다. 그래서 봉투의 역설을 꺼낸다. 밀봉된 2개의 봉투에 각각 돈이 들어 있다. 하나는 다른 하나의 2배다. 그리고 두 사람이 봉투를 하나씩 나눠 가진다. 그 순간 두 사람의 머릿속에서는 계산이 시작된다. 내가 1만원을 가졌다면, 상대방은 2만원 또는 5,000원을 갖고 있다. 상대방이 가진 돈의 평균이 1만 2,500원이므로 내 것보다 25% 많다. 두 사람은 합의 하에 봉투를 바꾸고 서로 이익을 봤다고 좋아한다. 그것이 철학자들이 보는, 애덤 스미스 식 교환 성향이다.

봉투 교환이 두 사람을 진짜 부자로 만드는가? 정곡을 찌르는 철학자들의 당황스러운 질문 앞에서 경제학자들은 쩔쩔맨다. 난해한 조건부확률까지 동원해서 그렇지 않음을 힘들게 증명한다. 어쩐지 군색하다.

철학자들의 답은 훨씬 쉽고 성숙하다. 철학자이자 마술사인 레이먼드 스멀리언은 상대방의 눈으로 나를 보라고 한다(과연 마술사답다). 상대방 봉투에 1만원이 들어 있다면 내 봉투에는 2만원 또는 5,000원이 들어 있다. 평균적으로 1만2,500원이고, 상대방보다 25%나 많다. 그러므로 봉투를 교환할 이유가 없다.

결국 애덤 스미스가 말하는 교환 성향, 즉 남의 떡이 커 보이는 결핍감은 나를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간다는 천동설에서 출발한다. 관점을 바꿔 상대방의 눈으로 나를 보면, 내 떡은 이미 크다. 그러므로 교환에 눈독을 들이기보다 범사에 감사하라!

봉투의 역설이 주는 철학적 교훈은 어느 TV드라마에서 나온 유행어와 같다. "서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이 달라진다." 그런데 봉투의 역설은 우화가 아니다. 외환시장에서도 관찰된다.

많은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외환거래를 통해 수익을 추구한다. 하지만 지구 전체로 보면, 외환매매 손익은 제로섬이다. 또한 한국은행의 외환보유액 운용 성과를 원화(내 입장)로 평가했을 때 이익이라면, 미 달러화(남의 입장)로 평가했을 때는 손실이다. 봉투의 역설 그대로다.

경제학은 천동설에 머물러 있어 안분지족(安分知足)을 모른다. 그래서 경제학자 로버트 하일브로너는 경제학을 세속철학이라고 부른다. 애덤 스미스의 인생이 딱 그랬다.

타운센드 재무장관은 아들의 사교육이 만족스러웠는지 애덤 스미스에게 관세청장 직을 제안했다. 솔깃해진 애덤 스미스는 교환 성향을 발휘하여 냉큼 직업을 바꿨다. 보수가 더 두둑한 그 관직에서 죽을 때까지 열심히 관세를 거뒀다. 그것이 자유무역을 주장하며 도덕을 가르치던 철학가의 세속적 삶이었다.

그 무렵 조선의 정조는 신해통공(辛亥通共)을 통해 시장 설립의 족쇄를 풀었다. 덕분에 조선의 물자유통과 상거래가 크게 늘었다. 1776년 왕위에 오른 정조야말로 그해 발간된 국부론의 진정한 실천가였다. 애덤 스미스보다도 훨씬.

차현진 한국은행 인재개발원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차현진의 융통무애(融通無碍)
한국일보가 직접 편집한 뉴스 네이버엣도 보실 수 있습니다. 뉴스스탠드에서 구독하기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