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완공된 미국 뉴욕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381mㆍ102층)은 ‘카네기와 오티스가 낳은 자식’이라고 불린다. 앤드류 카네기의 강철 대량 생산 성공과 엘리샤 오티스의 승강기 개발이 없었다면 초고층 건물인 엠파이어스테이 빌딩은 이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는 의미다. 그만큼 승강기 개발은 ‘마천루’를 꿈꾸는 인간의 오랜 욕망을 현실화 시키는 역할을 했다.
요즘 좀 높다고 소문난 초고층 건물들은 보통 500m가 넘는다. 국내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서울 잠실의 롯데월드타워도 550m를 넘는다. 초고층 빌딩이 곳곳에 들어서면서 운송 수단인 승강기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엘리베이터는 5~10층 건물에서는 ‘편리한’ 운송수단일 뿐이지만 20층을 넘어서는 고층 빌딩에서는 ‘필수적인’ 운송수단이다.
500m가 넘는 초고층 건물을 오르내리려면 승강기 속도가 빨라야 한다. 보통 1분당 45m를 이동할 수 있는 승강기를 저속 승강기, 60~105m를 중속 승강기, 120~300m를 고속 승강기로 분류한다. 초고속 승강기는 분당 360m 이상 이동이 가능하다.
내년 완공 예정인 높이 1㎞의 사우디아라비아 ‘제다 타워’를 일반 아파트에 설치하는 중저속 승강기로 오르려면 20분이나 걸린다. 하지만 실제로는 길어야 2분 정도 걸릴 것이다. 그 비결이 바로 ‘초고속 승강기’에 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빠른 승강기는 중국 광저우시의 ‘CTF 광저우 금융센터’에 설치된 승강기다. 2017년 6월 일본의 승강기 제조업체인 히타치제작소가 설치한 초고속 승강기로 최대 속도는 1분당 1,260m이다. 1층부터 95층까지 43초 만에 올라갈 수 있다.
국내 승강기 제조업체인 현대엘리베이터도 지난 5월, 1분당 1,260m, 1초당 6층 높이인 21m를 이동할 수 있는 승강기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 시스템을 현존하는 지상 최고 건물인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부르즈칼리파(828m)에 적용하면, 57초인 최고층 도달 시간이 46초로 20% 줄어든다.
그렇다면 초고속 승강기의 구조는 어떻게 될까. 초고속 승강기라고 하더라도 구조적으로는 일반 승강기와 크게 차이가 없다. 다만 속도제어 기술과 안전장치가 함께 설치돼 초고속으로 운행하면서도 승차감은 좋고 안전은 보장된다.
승강기는 단순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매우 정교한 장치다. 엘리베이터 1대를 만드는데 3만~5만개의 부품이 들어간다. 이용자들에겐 네모 상자로만 보일 수 있지만 자동차의 부품이 볼트까지 포함해 2~3만여개인 점과 비교해보면 승강기를 움직이는 기계는 단순하지 않다.
승강기는 기본적으로 승객이 타는 밀폐된 공간인 ‘카(car)’와 카를 오르내리게 하는 ‘로프’, 무게의 균형을 잡아주는 ‘균형추’, 이들을 건물에 고정하고 카를 끌어올리는 고정도르래 역할을 하는 ‘권상기(traction machine)’로 구성된다.
승강기의 속도를 빠르게 하는 핵심은 ‘권상기’의 힘에 있다. 승강기의 심장 역할을 하는 권상기는 대부분 영구자석을 이용하는데 자석의 힘이 강할수록 승강기의 속도는 더 빨라진다. 한번에 많은 전류를 흘려 빠르게 움직이다가 목적 층에 다다르면 전류를 차단해 정확히 멈추게 해야 하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자기력이 세고 힘이 오래가는 희토류 금속으로 영구자석을 만들기도 한다.
로프는 여러 겹의 강철을 꼬아 만든 강철로프와 탄소섬유로 만든 로프가 용도에 따라 구분해 사용된다. 로프는 기본적으로 최대 정원 무게의 10배를 견딜 수 있게 제작되고, 윤활유를 발라 마찰로 닳지 않도록 하며, 정기적으로 교체된다. 초고속 승강기의 경우 로프에 가해지는 무게가 100톤 정도로 중저속 승강기의 10배가 넘는다.
로프의 한쪽 끝에는 최대 정원의 40~50%에 달하는 무게의 균형추가 달려있다. 승강기가 올라갈 때 내려오고, 내려갈 때 올라와 전동기의 부담을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로프의 무게도 중요하다. 권상기는 승강기 카와 함께 로프도 끌어올려야 하는 만큼 로프가 가벼울수록 속도는 더 올라간다. 일반 아파트의 로프는 강철로프가 대부분이지만 30층 이상의 초고층 건물은 탄소섬유로 만든 가벼운 로프가 사용된다. 탄소섬유 로프는 무게는 강철로프의 5분의 1에 불과하지만 강도는 10배 이상이다. 대신 가격이 비싸다.
대부분의 초고층 건물이 권상기로 로프를 끌어올리는 방식이지만 건물이 점점 더 높아지면서 로프를 감아 끌어올리기에는 속도에 한계가 있다. 건물 높이가 1㎞에 달하는 ‘제다 타워’의 경우 로프 무게만 30톤 정도라고 한다. 권상기로 끌어올리면서 속도를 높이는 것은 한계에 도달해 가고 있다는 말이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로프를 없애고 자기부상열차의 기술도 도입하고 있다. 자기부상열차 처럼 레일의 N극과 승강기의 S극에 흐르는 전류의 양을 조절해 승강기를 벽에서 띄우고, 레일을 따라 오르내리도록 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초고속승강기는 속도만 빨라선 안 된다. 승차감도 좋아야 한다. 승강기 승객들에겐 출발, 가속, 등속, 감속, 정지까지 물리학적인 힘이 계속 작용한다. 진동을 최소화해 승객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한다. 초고속 승강기의 속도는 놀이공원 롤러코스터의 최대 속도와 비슷하다. 속도가 분당 1,000m 이상이 되면 공기의 마찰과 와류(소용돌이) 때문에 진동이 발생한다. 승객들이 속도 변화를 최대한 느끼지 못하도록 가속ㆍ감속 하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건물 1층과 최고층의 기압차이가 1,800Pa(파스칼) 이하가 되도록 승강기를 설계해야 한다. 승강기가 빠르게 상승하면서 주위 기압이 급격히 낮아지면 고막이 팽창하며 불쾌감을 느낄 수 있다. 이런 현상은 비행기가 이륙할 때 종종 느껴봤을 것이다.
대기시간을 줄이고, 승객들이 속도와 기압의 변화를 최대한 느끼지 못하도록 공기의 흐름과 압력 변화, 소음 등도 신경 써야 하는 것이다.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해 승강기 카의 모양을 유선형으로 설계하고, 벽과 바닥도 2중으로 만들어 진동을 줄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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