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이 진실 규명의 시간을 맞았다. 진상뿐 아니라 서울시 은폐 여부와 경찰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밝히는 게 불가피해졌다. 피해자의 주장대로라면, 서울시는 대외적으로는 젠더특보까지 신설하며 여성권익 보호에 앞장서는 것처럼 포장했으나 내부적으로는 성폭력 피해 사실을 묵살해 왔다. 피해자 측이 비밀 유지를 강조한 수사 정보가 어떻게 외부로 유출됐는지 경위를 놓고도 의문이 든다.
법률대리인과 지원단체들이 전한 피해자의 주장에 따르면, 그는 경찰 고소 전 이미 수차례 서울시 내부에 피해 사실을 호소했다. 증거 사진까지도 보여 줬다. 그러나 동료들은 “시장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 “단순 실수일 것이다”라며 묵살했다고 한다. 성적 괴롭힘이 지속되자 피해자는 급기야 인사 이동을 요구했으나 이마저도 받아들여지지 않다가 4년째인 올해 2월에야 이뤄졌다.
생전 박 전 시장이 피해자의 경찰 고소와 동시에 이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됐는지도 밝혀야 한다. 경찰은 청와대에 박 전 시장의 피소 사실과 혐의를 보고했다고 설명했으나, 청와대 측은 박 전 시장 쪽에 알린 사실이 없다는 입장이다. 경찰은 조만간 박 전 시장 휴대폰의 디지털 포렌식을 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성폭력 정황 못지 않게 통화기록 등 수사 정보 유출과 관련된 증거도 확인해야 할 것이다.
지위를 무기로 권력자가 성폭력을 저지를 수 있는 배경엔 조직과 관계기관의 묵인, 비호가 있다는 건 이미 여러 사례에서 확인됐다. 그것이 위력의 실체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도 “(박 전 시장을 둘러싼) 위력은 나를 숨이 막히게 했다”고 토로했다. 서울시의 성폭력 은폐 여부나 경찰 수사 정보 유출 의혹 역시 모두 권력형 성범죄를 가능하게 한 위력의 범주 안에 들기에 반드시 밝혀야 할 부분이다. 나아가 공적 위력의 진짜 쓸모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 보호임을 재확인하고, '권력형 성범죄' 재발을 막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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