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미당(延薇堂) 7.15
연미당(延薇堂, 1908.7.15~ 1981.1.1)은 독립운동사 전공자나 여성학자가 아니라면 생소할 수 있는 일제 강점기 여성독립운동가다. 임시정부에서 일했고, 애국부인회 등 수많은 청년 여성단체 조직사업에 관여했고, 김구 이동녕을 비롯한 임정 지도자들을 뒷바라지했다. 광복 후 광복군 7지대와 함께 미 군함을 타고 귀국했지만 6ㆍ25전쟁 와중에 남편 엄항섭(독립운동가)이 납북되는 바람에 ‘월북자 집안’이란 낙인이 찍혀 공식 역사에서 철저히 내쳐졌고, 혼자 2남 4녀를 키우며 험한 세월을 견디다 중풍과 노환으로 별세했다. 남편이 자진 월북한 게 아니라 강제 납북됐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1980년대 말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뒤늦게 엄항섭에게 건국훈장 독립장(1989)을, 연미당에게 건국훈장 애국장(1990)을 추서하고, 부부의 맏딸 엄기선에게 건국포장(1993)을 수여했다.
연미당의 공적을 살펴보는 데는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자료만 한 게 없다. 그가 훈장을 받았을 때, ‘이달의 독립운동가(2018년 7월)’로 선정됐을 때, 부친 연병환의 유해가 국내 봉환(2014년 11월)되던 때, 언론들도 연미당의 생애를 설핏 소개하곤 했다. 하지만 여성가족부 공식 블로그를 비롯한 대부분이 그의 공적 맨 첫머리에 소개한 게 '윤봉길 의사의 도시락 폭탄 보자기를 만들어주었다'는 사연이다. 생소한 인물이어서 '의사'의 곁불이나마 쬐게 하자는 뜻은 짐작되지만, 결코 온당치도 탐탁지도 않은 방식이다. 보자기 설의 진위도 확실치 않거니와, 부당한 그늘을 걷어내기 위해 기성의 권위에 의존하는 것도 일종의 차별이다.
임정 안팎 여성들의 활약이 도드라진 예가 많지 않은 건 사실이다. 그들은 ‘여성’이란 낱말이 붙은 엇비슷한 단체의 직함을 받아 공적인 활동을 하면서 남편 내조, 자녀 양육을 책임졌고, 단상 아래에서 임정 행사 준비와 설거지를 도맡아야 했다. 연미당은 그런 제약을 딛고 존재감을 드러낸 이들 중 한 명이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