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2020 KBO리그 롯데와 두산의 경기. 롯데는 1회초부터 1사 1ㆍ3루 위기를 맞았다. 다음 타석에는 두산 4번 타자 김재환. 최근 10경기 연속 안타 행진으로 타격감이 오른 상태였다. 그가 타석에 들어서자 롯데 수비진이 일부 움직이기 시작했다. 3루수는 그대로 일반적인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2-3루간 있어야 할 유격수 마차도가 아예 2루를 넘어 1루에 가깝게 서 있었던 것. 김재환은 투수 옆을 스쳐 2루 베이스를 타고 넘는 안타성 공을 쳐 냈지만 길목을 지키고 있던 마차도는 이 타구를 잡아 2루를 직접 밟은 뒤 1루로 송구해 병살로 처리했다.
같은 날 서울 잠실구장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LG와 NC가 6-6으로 팽팽히 맞선 11회말 LG 로베르토 라모스는 완벽한 우익수 앞 안타성 타구를 쳤다. 하지만 2익수(2루수+우익수) 위치에서 수비 중이었던 박민우가 타구를 원바운드로 잡아 1루로 던져 아웃 처리했다. LG 측에서는 한숨이, NC 측에서는 환호가 터져 나오는 순간이었다.
올 시즌 각 구단 수비 시프트가 화제다.
과거 외야수들이 상대 타자들의 타격 성향에 따라 좌측, 혹은 우측으로 조금씩 옮겨 수비를 한 적은 있다. 내야에서도 라인 선상에 붙거나 조금씩 위치를 변경하기도 했다. 하지만 10개 구단 대부분이 내ㆍ외야를 불문하고 극단적인 수비 시프트를 적극적으로 실행하는 것은 올해 유독 두드러진다. 이는 최근 대세로 떠오르는 ‘데이터 야구’가 올 시즌 현장에 적극 적용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구단들에 따르면, 전력분석팀과 데이터팀이 관련 데이터를 작성해 수비 코치에게 전달한다. 이후 수비 코치는 3연전 첫 경기 전에 선수단 전략 회의에서 이 내용을 미리 공유한다. 그리고 수비 코치는 상대 타자가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현장에서 이를 적용, 수비수들의 위치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현장에 적용한다. 실제로 최근 덕아웃에서는 수비 코치들의 시프트 지시가 자주 눈에 띈다.
팀마다 전력ㆍ전략 노출 우려 때문에 세부 공개는 어렵지만, 상대 타자의 △타구 방향 비율 △스윙 자세 △볼카운트 유ㆍ불리 △우리 투수의 주요 구질과 구속 △당일 컨디션 △수비수 개인 수비 범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수비 시프트를 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 김재환과 오재일을 비롯해, LG 라모스 등 주로 극단적으로 당겨치는 ‘파워 히터’나 ‘풀 히터’들에게 자주 적용된다. 다만 구단에 따라 선별적으로 적용한다. 실제로 올시즌 KIA 최형우가 타석에 들어서면, 대부분의 구단들이 수비 시프트를 하지만 키움은 적용하지 않는다. 모 구단 관계자는 “적중할 때도 있고 실패하는 경우도 있지만 ‘확률’의 영역인 만큼 시행하자는 추세”면서 “변형된 수비 시프트는 상대 타자를 압박하는 효과도 있다”라고 말했다.
외국인 감독이 부임한 KIA와 데이터 야구를 적극 추진하는 NC, 삼성 등을 중심으로 극단적인 수비 시프트까지 시행 중이다. 특히 지난 5~6월 쌓였던 올 시즌 상대 타자 타구 데이터가 쌓이면서 각 구단은 7월부터 더 활발하게 시행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시프트 성공/실패 여부는 아직 구단별로 통계를 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데이터 야구가 정착된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특정 선수를 상대하기 위한 다양한 수비 시프트를 볼 수 있다. 2000년대 초중반 배리 본즈, 데이비드 오티즈 등 리그 톱클래스 타자에게 적용하기 시작, 2010년대 들어 스프레이 차트(spray chartㆍ타구 방향 분석)가 널리 쓰이면서 완전히 퍼졌다.
물론 일각에서는 이런 극단적인 수비 시프트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투수 출신의 한 전문가는 “전통적인 수비 위치는 오랜 세월 통계를 통해 타구가 가장 많이 가는 방향으로 정해진 것”이라며 “또 투수 입장에서 지나치게 변형된 수비 위치는 오히려 심리적 불안감을 느낄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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