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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하지만 막상 무슨 노래인지 잘 떠오르지 않는 음악, 그 음악을 알려드립니다.
지난 6일(현지시간) 91세 나이로 타계한 영화음악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는 '선율의 마법사'였다. 단순하지만 심금을 울리는 곡조를 많이 썼다. 그의 노래는 선율 따라 흥얼거리기 좋았고, 그래서 널리 사랑 받았다. 음악을 좋아하는 영화감독 박찬욱은 "모리코네 영화를 안 본 사람은 있어도, 그의 음악을 안 들어본 사람은 문명사회에 없다"면서 그를 '현대의 바흐'라 부르기도 했다.
이탈리아 음악학교 중 최고 명문으로 꼽히는 산타체칠리아음악원 출신답게 모리코네는 클래식 작곡과 클래식 악기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 그의 음악에서 주제 선율은 현악기 뿐 아니라 관악기, 타악기 등 다양한 악기들이 담당했다.
영화 '미션'(1986년)에는 신부 가브리엘(제레미 아이언스)이 밀림 속 원주민들 앞에서 오보에를 부는 장면이 있다. 영화 배경이 18세기인 점을 감안, 현대가 아니라 바로크 오보에를 등장시켰다. 이 오보에를 통해 내놓는 신부의 따뜻한 선율은 말도 제대로 통할 리 없는 원주민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처음엔 간단히 '가브리엘의 오보에'란 이름으로 불렸다. 오보에의 중후한 음색을 살리려다보니 보통 오보에 곡은 단조가 많다. 하지만 모리코네는 이 곡을 D장조로 썼다. 그래서 밝고 희망찬 느낌을 주고, 그 덕에 큰 인기를 끌었다.
곧 마르첼로와 모차르트가 쓴 오보에 협주곡의 인기를 능가하더니, 지금은 오보에로 연주되는 곡 가운데 가장 인기있는 곡이 됐다. 나중엔 모리코네 허락 아래 가사를 붙인 노래로 편곡됐고, 이 곡은 팝페라 가수 사라 브라이트만이 불러 세계적 인기를 누렸다. 이 노래가 바로 '넬라 판타지아(Nella Fantasiaㆍ환상 속에서)'다.
'시네마 천국'(1988년)의 주제곡으로 유명한 '사랑의 테마(Love theme)'에는 클라리넷과 플루트를 썼다. 중년이 된 주인공 토토(자끄 페렝)가 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영사기사 알프레도(필립 느와레)를 떠올리는 장면에서 코끝이 찡해지는 애뜻한 선율을 뿜어낸다. 모리코네의 대표작 중 하나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모리코네가 아니라 그의 아들 안드레아 모리코네가 썼다. 아버지의 영화 음악에 참여한 것이다.
모리코네의 선율은 1960년대 서부극에서도 들을 수 있다. '석양의 무법자'(1965년)에서 모리코네는 총싸움을 벌이기 일보직전, 카우보이들간 긴장감을 휘파람 소리로 위트있게 표현했다. 피리와 바순 등 쓰는 관악기의 기교에 따라 이 휘파람 소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얼마든지 변주된다. '황야의 무법자'(1964년)에 등장하는 트럼펫 솔로는 황량한 미국 서부의 풍경이 안겨주는 고독을 묘사했다. 트럼펫을 전공한 모리코네의, 트럼펫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기도 한 노래다.
고전 로맨스 '러브 어페어'(1994년)에서 모리코네는 감미로운 피아노곡을 선보인다. 비행기에서 시작된 테리 맥케이(아네트 베닝)와 마이크 갬브릴(워렌 비티)의 운명적인 사랑을 상징하는 노래다.
허명현 클래식 평론가는 "모리코네의 음악의 가장 큰 힘은 음악 자체가 주인공이 되지 않으면서도 제 역할을 충분히 해내는데서 온다"며 "'러브어페어'에서도 보편적인 감수성을 들려주면서도, 음악 자체에 영화의 메시지를 위한 빈 공간을 남겨뒀다"고 말했다.
모리코네가 쓴 영화음악은 500편이 넘는다. 그의 음악은 대중적 인기에 힘입어 상당수가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편곡돼있다. 클래식 공연장에서 그의 노래를 종종 들을 수 있는 이유다. 유정우 클래식 평론가는 "음악의 3대 요소인 선율ㆍ화음ㆍ박자 가운데 모리코네는 '선율미'를 중시하는 이탈리아 작곡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면서 "그의 음악들은 이미 21세기 클래식 반열에 올라가 있다"고 평가했다.
CGV는 16일부터 전국 20개 극장에서 모리코네 대표작을 상영하는 추모 기획전을 연다. 10월 23일엔 서울 신천동 롯데콘서트홀에 모리코네 추모 무대가 마련된다. 하모니카 연주자 박종성과 피아니스트 조영훈이 모리코네의 주요 곡들을 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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