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조항 도입 후 첫 헤이트 스피치 단체 시위서?
"일본인 차별" 주장에 "함께 인권 공부하자" 맞서
우익도 벌금 의식해 노골적인 차별 발언은 자제
시민단체 "시와 차별 발언 감시 계속해 나갈 것"
"일본 정부가 왜 일본인보다 외국인을 우선시해야 하나. 가와사키시의 조례는 오히려 일본인을 차별하는 조례다."
12일 오후 2시 일본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역 동쪽 출구 앞. 일장기와 욱일기를 앞세우고 모여든 50여명 중 마이크를 잡은 20대 여성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이 자리는 혐한(嫌韓) 선동을 주도해온 재특회 출신 일본제일당원들이 예고한 시위였다. 지난 1일 일본 최초로 헤이트 스피치(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차별ㆍ혐오 발언) 처벌 조항이 시행된 이후 처음 열린 헤이트 스피치 시위여서 이목이 집중됐다.
혐한 선동 시위대 맞은편에 있던 시민들은 "그런 말을 하는 당신이 더 무섭다" "인권에 우선순위가 있느냐" "우리와 같이 공부해 보자" 등으로 대응했다. 시의회가 헤이트 스피치에 대해 최대 50만엔(약 540만원)의 벌금을 부과한 조례를 제정했음에도 우익단체가 시위를 신청하자 헤이트 스피치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맞불을 놓으려 행동에 나선 것이다.
앞서 낮 12시30분쯤 가와사키역에 도착했을 때 5명의 헤이트 스피치 단체 소속 남성들은 '히노마루(일본의 국기) 거리선전 구락부', '호국지사 모임' 등의 깃발을 내걸고 있었다. 주변에는 경찰 수백여명이 충돌을 대비해 두 겹의 바리케이드를 설치했다. 시위 단체의 언행이 차별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기 위해 기록용 녹음기와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있는 시청 직원들도 눈에 띄었다.
바리케이드를 사이에 두고 헤이트 스피치를 반대하는 시민 200여명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역 주변에서 조례 내용이 담긴 유인물을 시민들에게 나눠주거나 일부는 '인종차별주의 반대'나 '헤이트 스피치 용서할 수 없다' 등이 쓰여진 플래카드를 들고 헤이트 시위대 앞에서 대기했다.
시위를 지켜보던 나가시마 세이호(永島誠豊ㆍ67)씨는 "가와사키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일본 최초로 처벌조항을 도입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했다. 노인 돌봄시설에서 일한다는 그는 "모두가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첫 걸음"이라며 "그간 침묵했지만 앞으로 나부터 차별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역 주변에서 유인물을 나눠주던 70대 여성은 "요즘 젊은이들이 취직 등에만 관심을 보이고 차별과 같은 사회 문제에 나서는 걸 손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아쉽다"며 "이들에게 조례 내용을 알리고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나왔다"고 했다.
이날 시위는 별다른 충돌 없이 오후 3시40분쯤 마무리됐다. 헤이트 스피치 단체들은 자신들의 발언에 처벌조항이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한 듯 직접적인 차별보다 애국심을 강조하는 모습이었다. 한 시위 참가자는 헤이트 스피치 반대를 외치는 시민들을 향해 "우리의 집회와 발언의 자유를 막는 당신들이야말로 헌법을 위반하고 있다"면서 "일본에 태어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일본을 지키겠다는 당연한 말을 하는데 뭐가 문제냐"라고 강변했다. 그는 발언 도중 "외국인들이 홋카이도를 점점 차지하고 있어 위험하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조선학교는 국가보안법 위반'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내걸기도 했다.
가와사키 조례 제정을 주도해온 미우라 도모히토(三浦知人) 시민네트워크 사무국장은 시위가 끝난 뒤 "처벌 조항이 헤이트 시위 단체의 노골적인 차별 발언을 일부 억제한 것 같다"면서 "앞으로도 이들의 언행을 감시하는 노력을 가와사키시와 함께 계속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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