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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높으니 참고 산다? 마천루, 소음대책은 무방비

입력
2020.07.16 04:30
수정
2020.07.16 13:05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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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대도시 11곳, 3차원 소음지도 분석
성남 분당 등 접근성 좋은 지역일수록
기준치 초과 소음 시달리는 인구 많아
인천도 밤 시간대 고속도로 소음 심각
"전국에 초고층 아파트 우후죽순 불구
소음기준은 달라진 거주환경 반영 못해"

<2> 쑥쑥 오르는 우리동네 데시벨

서울에서 교통이 편리한 주거지는 집값 상승률도 높아 대체로 주거 밀집도가 상당히 높다. 그러나 차량 통행이 많다 보니 도로소음 피해도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한다. 그렇다면 지방 대도시도 서울과 마찬가지로 시끄러운 동네에서 집값이 많이 올랐을까.

한국일보가 2013~2018년 3차원 소음지도 구축사업에 참여한 6개 광역시와 경기 남양주ㆍ성남ㆍ화성시, 그리고 전남 여수ㆍ광양시의 소음지도를 단독 입수해 분석한 결과, 지방 대도시에서도 소음과 집값의 비례공식이 어느 정도 확인됐다. 그러나 집값 상승을 주도한 초고층 건물이 소음에는 매우 취약한 구조라서, 대도시 중심의 소음관리기준을 별도로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방 대도시의 노출인구(환경기준치를 초과한 소음에 노출된 주민 비율)를 살펴보면, 소음피해가 클수록 아파트값 역시 높아지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같은 도시 내에서도 도로소음에 노출된 인구가 많은 동네일수록 대체로 부동산 가격 상승률도 높았다.

성남시가 대표적이다. 성남시의 밤 시간대 기준치 초과 소음 노출 인구는 13.4%로, 최대 소음피해지역은 판교 테크노벨리가 위치한 분당구 정자동과 야탑동, 이매동, 서현동, 금곡동으로 꼽혔다. 모두 강남 접근성이 우수한 동네다. 이매동과 야탑동의 ‘성남대로’, 서현동의 ‘서현로’, 정자동의 ‘분당수서로’, 중원구 하대원동의 ‘둔촌대로’는 주변에 주거 건물이 많아 초과 소음 노출 인구가 상대적으로 많다. 한국감정원의 주택종합 매매지수를 살펴보면, 이들 지역은 소음지수가 높은데도 2년 사이 아파트 가격이 10~20% 올랐다.

15일 인천 부평구의 한 아파트 단지와 주택들이 방음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경인고속도로와 접해 있는 모습. 방음벽보다 훨씬 높은 고층아파트가 눈에 띈다. 고층일수록 소음원이 다양하고 소리의 경로도 완벽히 차단되지 않아 소음에 매우 취약하다. 서재훈 기자

15일 인천 부평구의 한 아파트 단지와 주택들이 방음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경인고속도로와 접해 있는 모습. 방음벽보다 훨씬 높은 고층아파트가 눈에 띈다. 고층일수록 소음원이 다양하고 소리의 경로도 완벽히 차단되지 않아 소음에 매우 취약하다. 서재훈 기자


아파트값과 소음의 상관관계는 도로 교통망이 도시기능의 핵심적 역할을 한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여기저기 길이 뚫려 주변이 조금 시끄러워져도, 편리한 교통이 지역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덩달아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소음피해가 심각해진 지역일지라도, 소음 관련 민원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게 지자체 담당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지자체의 한 관계자는 "밤에 느끼는 소음이 기준치를 초과한 60데시벨(㏈A) 정도가 나와도, ‘대도시인데 이 정도 소음은 참아야지’라고 넘어가는 주민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교통이 편리한 곳에 거주해서 집값도 올랐으니, 임계치만 넘지 않는다면 소음은 감수해야 할 '필요악'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집값을 우선하고 소음피해는 뒷전으로 놓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도로소음은 도시계획 단계에서 소음지도를 잘 활용하면 충분히 관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소음진동 분야의 한 전문가는 "국내에선 도로소음을 '극복하고 피해야 할 소리'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듣고 살아야 하는 소리'로 간주해 체념하는 경우가 많다"며 "아파트 입지가 정해진 뒤에는 현실적으로 소음피해를 줄이기 어려운 만큼, 사후 보완대책보다는 도시계획 단계에서 저감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간 소음 1위 인천시민 40%, 밤 기준치 초과 소음에 시달려

3차원 입체 소음지도를 제작한 광역시 가운데 밤 시간대 가장 많은 주민이 극심한 소음에 노출된 도시는 인천광역시로 나타났다. 낮에는 인천 인구의 17.2%가, 밤에는 39.7%가 기준치를 초과한 소음에 노출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고속도로 인근 거주지에선 대형차량 통행량이 많아 소음도가 특히 높았다.

인천이 시끄러운 이유는 다른 지역에 비해 교통량과 대형차량의 통행 비율이 높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가장 심각한 소음에 노출된 지역은 계양구 귤현동과 서구 봉수대길 등 2곳이 꼽혔다. ‘소음진동 관리지역’으로 선정된 이들 동네는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와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가 교차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어 환경기준치를 7~12㏈A 초과한 소음에 노출돼 있었다. 서구 연희동과 부평구 구산동은 ‘소음취약지역’으로 분류됐다. 연희동은 나대지나 임야 비율이 높은 데도 주거 밀집지역을 도로가 통과하는 탓에 소음에 노출된 인구가 많았고, 구산동은 서울외곽순환도로와 인접한 영향이 컸다.

인천 부평구는 해가 진 뒤에도 차량 통행이 많아 도로변 주거지에서 느끼는 소음이 높게 나타났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인천 부평구는 해가 진 뒤에도 차량 통행이 많아 도로변 주거지에서 느끼는 소음이 높게 나타났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전문가들은 방음벽 설치 등 소음이 퍼지는 경로를 차단하는 조치만으론 고속도로 주변의 소음피해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물류차량 등 대형차가 시간당 600대 이상 지나는 지역의 경우 기준치를 훨씬 초과한 최대 79.7㏈A의 소음도가 측정됐다. 이 때문에 대형차량 통행을 줄이는 게 가장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소음 저감대책으로 꼽힌다. 도로에 대형차량 100대를 포함해 시간당 500대의 차량이 지나고 이들 차량의 평균속도가 시속 60㎞라고 가정할 때, 이 도로에서 방출되는 소음은 66.1㏈A 정도다. 그런데 같은 도로에서 대형차량 통행이 절반만 줄어도 소음은 환경기준치 이하인 63.8㏈A로 크게 줄어든다. 이밖에 전기버스를 도입하고, 저소음포장을 통해 타이어마찰 소음을 흡수하는 방법도 소음과의 전쟁을 위한 해결책으로 제시됐다.

신축 잇딴 지방 마천루... 소음에 취약

전국적으로 마천루가 잇따라 들어서면서 대도시는 갈수록 소음에 취약한 구조로 바뀌고 있다. 부산 등 지방 대도시에선 수년 전부터 50층 이상 초고층 건물의 분양이 활발하다. 그러나 고층일수록 전망은 좋을지 몰라도, 사방에서 발생한 소음의 영향을 받을 확률도 높아지는 단점도 생긴다.

국토교통부의 건축물 현황 통계에 따르면, 31층 이상 고층건물은 2013년 1,189채에서 2017년 1,912채로 4년 만에 60% 이상 증가했다. 지역별로는 부산에는 66~101층 짜리 초고층 건물이 12채나 들어섰고, 인천시도 송도포스코타워(68층)와 송도더샵퍼스트(64층), 청라푸르지오와 청라더샵레이크파크(각 58층)가 지역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대구 수성SK리더스뷰(57층)와 대구위브더제니스(54층), 대전 금강엑슬루타워(50층)와 울산 태화강엑소디움(54층), 경기 화성시 메타폴리스(66층)도 50층 이상 고층 건물이다. 현재 건축 중인 초고층 건물도 주로 지방 대도시에 몰려 있다.

이처럼 전국적으로 마천루가 우후죽순 올라오고 있지만, 정부의 소음관리 기준은 달라진 거주환경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도로에서 발생하는 소음 크기가 변하지 않았더라도, 지형이나 건물구조 등 환경적 요인이 바뀌면 소음이 퍼져나가는 경로에 막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주택건설 승인 기준은 5층 이하 빌라가 대다수였던 1970년대에 마련돼, 지금처럼 대도시의 상징이 된 초고층 거주지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지난 1일 서울 용산구 강변북로에서 차량이 줄지어 이동하고 있다. 방음벽이 도로와 아파트를 분리하고 있지만, 24시간 계속되는 도로소음을 차단하기엔 역부족이다. 이한호 기자

지난 1일 서울 용산구 강변북로에서 차량이 줄지어 이동하고 있다. 방음벽이 도로와 아파트를 분리하고 있지만, 24시간 계속되는 도로소음을 차단하기엔 역부족이다. 이한호 기자

문제는 건물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소음에 취약해지고 있는데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소음관리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부산시 관계자는 "소음 저감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시작한 3차원 소음지도 구축사업에 예산 지원이 안 되고 있다"며 "소음지도는 5년 주기로 갱신해야 하는데, 국비지원이 끊겨 완성된 지도를 활용하기 어려워졌다"고 토로했다.

소음으로 인한 건강상 피해가 단기간에 드러나지 않는데다 인과관계를 증명하기 힘든 점도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요인이다. 국립환경과학원 관계자는 "소음피해는 미세먼지처럼 피해가 보편적이지 않고 개별적으로 체감도도 달라 '모두의 피해'로 인식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피해자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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