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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나의 집을 소유한다는 것

입력
2020.07.10 15:26
수정
2020.07.10 18:15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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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집은 크게 두 가지 의미로 나눌 수 있다. 물리적인 공간으로서의 집과 심리적 안식처로서의 집. 그동안 내게 주된 관심사는 후자였다. 성장 과정에서 경험한 집은 안정되고 편안한 공간은 아니었다. 특히 부모님의 다툼이 잦거나 가족 구성원이 아팠던 시기에는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숙제처럼 느껴졌다. 그 때부터 나는 나이가 들어 가정을 꾸리게 된다면 또 아이를 갖게 된다면 ‘휴식’이 되는 집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리라 마음먹었다. 물리적인 공간으로서의 집이 딱히 좋았던 것도 아니지만, 아무리 작고 초라한 집이어도 따뜻한 공간이길 바라는 갈망이 더욱 컸던 것이다. 심리학 공부를 하고 상담일을 하는 것도 그때의 갈망이 어느 정도 이어진 것이라 볼 수 있다.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 집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 이미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쪽이든 미혼 혹은 비혼으로 살아가는 쪽이든 30대의 뜨거운 관심사는 집이다. 하지만 여기서의 집은 전자, 즉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집이다. 부동산 얘기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집값은 천정부지로 올라버렸다. ‘집값을 잡겠다’는 정부의 의도가 무색하게도 규제를 내놓을 때마다 서울 집값은 기세등등하게 하늘을 향해간다. 서울에 거주하는 평범한 30대의 내 집 마련은 당연히 어려운 일이지만, 이제는 아끼고 굴리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도 손에 잡히지 않는 신기루 수준이 되어버렸다. 때문에 ‘나의 집’을 갖고자 현실적으로 계획을 세우던 사람들의 공포감과 좌절감이 증폭되었다.

 20대까지만 해도 안식처로서의 공간에 대한 갈망이 컸던 나 또한, 30대가 되어 가정을 꾸리고 책임질 가족이 생기고 나니 ‘물리적인 집’에 대한 욕망이 자연스레 높아진다. 제 아무리 화목한 가정이라도 길바닥에서 안정과 휴식을 운운할 수는 없다.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처럼 물에 잠기는 집에 살면서 "괜찮아. 우리 가족은 행복해"라며 정신 승리하는 동화를 꿈꿀 수는 없다. 기본적인 필요를 채워주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게다가 코로나 사태로 인해 집의 활용도가 이전보다 높아졌고, 머무는 시간도 더 길어졌다. 단순히 심리적 안식처가 아니라 업무와 취미 생활을 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제 아무리 고소득의 직장인이라도 금수저가 아닌 이상 감히 그런 공간을 소유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부동산 문제에 대한 성토는 가족을 위해 보금자리를 마련하여 안락하게 살고자 하는 평범한 목표가 허황된 꿈은 아닐까라는 의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나 또한 심리적 안식처로서의 집은 노력을 통해 이루어갈 수 있지만, 물리적 공간으로서 필요한 집을 소유하는 것은 노력을 통해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니 씁쓸하다. 부지런히 일하고 노력하고 절약한 만큼 언젠가는 내 집을 가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무의미해졌다는 사실은 청년들에게 무력감을 안겨준다. 

집에 대한 욕망은 안전에 대한 욕구이자, 안정에 대한 욕구와 맞닿아 있다. 억압할수록 욕망은 더 커진다. 인간이 가진 아주 단순한 심리다. 집값에는 사람들의 심리가 반영된다. 규제를 내놓을수록 사람들은 더욱 불안해질 것이며, 더 간절하게 내 집 마련을 원할 것이다. 하지만 여태 그래왔던 것처럼 집값은 계속해 고공행진할 것으로 보인다. 집값을 잡는 것이 진정한 목적이라면 어떤 규제도 내놓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30대에게 집은 꼭 소유해야만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준비하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가질 수 있으리라는 믿음만으로도 충분하다. ‘평생 내 집을 마련할 수 없다’는 불안감만 해소되어도 지금보다는 살만할 것이다.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집을 소유하는 것도, 심리적 안식처로서의 환경을 유지하는 것도 너무나 중요하다. 부디 두 가지 의미의 ‘집’ 모두 손에 잡히는 곳에 있어 주기를 바랄 뿐이다.



김혜령 작가ㆍ상담심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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