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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님, 교회가 두렵습니까?

입력
2020.07.09 18:00
수정
2020.07.09 18:23
26면
0 0
김희원
김희원한국일보 논설위원

차별금지법 발의에 개신교 또 반대
낙선 압력에 국회의원들 입법 주저
차별에 분노한 시민은 두렵지 않나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정의당 종교계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정의당 종교계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차별금지법 전쟁이 시작됐다. 보수 개신교계는 지난달 정의당 의원 6명을 비롯한 10명의 법안 발의 의원들에게 교인을 동원해 문자·전화 폭탄을 투하 중이다. "게이냐" "동성애 옹호법 만드냐"는 항의가 빗발친단다. 국회에 제출된 차별금지법 반대 청원은 7일 동의 10만명을 넘겨 21대 국회 첫 국민동의청원으로 기록됐다. 2007년 이후 13년간 차별금지법이 6번 발의됐다가 번번이 폐기된 이유다.

21대 국회의원 대다수는 교회의 '낙선' 위협에 손을 떨며 스스로 법안을 회수해야 했던 선배들의 잔혹사를 익히 아는 모양이다. 흑인 차별에 항의하며 국회 로텐더홀에서 무릎을 꿇은 미래통합당 의원들은 "차별금지법 입법 활동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이들이 내건 피켓 문구는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였는데 사실은 낙선 위험이 없는 차별만 반대하는가 보다. 법안 발의자인 권인숙·이동주 의원을 제외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 역시 무소불위 거대 여당답지 않게 당론 논의조차 외면하고 있다. 의원들은 법 제정에 대한 입장을 묻는 언론사 설문에 응답하는 것조차 주저했다. 익명 조사인데도 가장 많은 선택은 '무응답'이었고 "이런 조사를 왜 하냐" "설문에 답하지는 않는 원칙을 갖고 있다"고 반응하기도 했다.

이토록 교회를 두려워하는 국회의원들이 이런 사실은 알고 계시나 모르겠다. 차별금지법 발의 의원들에게 항의뿐 아니라 소액 후원금도 밀려들고 있다는 것을.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하는 88.5%(6월 국가인권위 국민인식조사)의 국민이 어느 순간 훨씬 위협적인 세력으로 조직화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 순간은 아마 국회 안에서 실망스러운 논의 끝에 차별금지법이 통과되지 못하고 반대표를 던진 의원 명단이 공개되는 때가 아닐까. 아동ㆍ청소년 성착취물 유포자 손정우씨의 미국 송환 불허 판결이 나온 순간 사법부에 대한 공분의 에너지가 폭발한 것처럼 말이다. 지금 우리 시민들의 의식은 시대 변화를 읽지 못하는 소위 엘리트층을 훨씬 앞서고 있다. 막무가내 혐오와 차별에 지친 다수의 시민은, 국회가 가장 기초적인 인권 보호를 위한 입법 의무조차 방기할 경우 어떤 식으로든 실망을 표출할 것이다.

보수 개신교계의 조직적 반대는 지금까지 효과가 있었지만 분명 과대 대표되어 있다. 애초에 그들의 동성애 반대는 종교적 신념에서 비롯됐다기보다 개신교 세력을 유지ㆍ강화하기 위해 적그리스도를 불러온 것과 같다. 2000년대 이후 교인 수가 크게 줄고 교회 세습과 호화 증축에 대한 비난이 쇄도하는 등 보수 개신교의 위기가 고조될 때 반(反) 동성애 활동은 "공포와 혐오를 통해 세력을 넓히는" 데에 효과적이었다고 한채윤씨는 분석한다(책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길게 보면 동성애 혐오는 반공의 효력이 떨어지면서 보수 개신교가 새로 발굴해 낸 2000년대의 적(敵)이다. "차별금지법이 동성애를 조장한다" "동성애가 죄라고 설교하면 처벌한다" "종교의 자유를 막는다"는 등의 반대 논리가 사실인지, 교리에 맞는지를 따지는 것은 애초에 관심없는 일일 것이다.  

근본주의 개신교계는 모든 종교인을 대변하지 않는다. 예수의 길을 따라 약자와 소수자를 품는 교인이 주변에 많다.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교회와사회위원회가 최근 낸 차별금지법 입법 촉구 성명서에서 최형묵 목사는 “복음의 참뜻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를 용납하고 환대하며 사랑을 이루는 데 있다”고 했다.

국회의원들에게, 특히 진보 정당을 자칭하는 민주당 의원들에게, 지금 두려워해야 할 것은 누구냐고 묻는다. 지금까지 조직화된 집단이 무서웠을 것이고 성소수자는 무시해도 그만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세상 바뀐 줄 모르는 많은 정치인들이 낙선했다. 그들을 짐싸게 만드는 것은 일부 기득권 교회일 것인가, 차별에 분노한 시민일 것인가.

김희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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