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책금 낮은 공유차가 10ㆍ20대 보험사기 악용
사람 가득 태우고 차로 위반ㆍ역주행차 들이받아
일진 등 학교폭력과 연계돼 조직적으로 범죄 가담
지난해 말 고등학교에 다니던 열아홉살 이민호(가명)군은 같은 학교 '일진' 친구들에게서 용돈벌이를 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공유차를 빌려 운전하다가 갑자기 변경하는 차를 노려 부딪히면 쉽게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명백한 범죄라 처음엔 거절했지만 "동참하지 않으면 졸업할 때까지 괴롭히겠다"는 협박까지 하는 터라 거절할 수 없었다. 일진들은 공유차에 사람을 가득 태워 사고를 내야 사람수만큼 보험금이 나온다며 이씨를 시시때때로 불러 차에 태웠다. 이들은 두 달간 고의로 3번의 접촉사고를 내고 2,000만원 가량 보험금을 챙겼다.
보험사기가 근절되지 않는 상황에서, 최근에는 20대 초반과 10대까지 가담한 '공유차 보험사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공유차는 사람을 만나지 않고도 쉽게 빌릴 수 있는 데다, 사고가 나더라도 부담해야 할 면책금이 낮아 상대적으로 보험금을 더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9일 한국일보의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 말부터 경기 오산시, 화성시, 수원시 등 경기 남부 일대에서 보험사기가 의심되는 공유차량 접촉사고가 80여건 넘게 발생했다.
보험사들은 사고기록을 살피던 중 보험금을 타간 당사자들의 연령대가 10대 후반 또는 20대 초반인 점, 그리고 이들이 공통적으로 공유차를 이용한 점에 비춰볼 때 보험사기가 의심된다며 2월 오산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했다. A보험사 관계자는 "보험금을 타간 이들의 통장내역을 살폈더니 각각에게 지급된 보험 합의금이 특정인 한 명에게 다시 모인 사실을 확인했다"며 "서너명이 보험사기를 벌이고 대장 한 사람이 합의금을 다 챙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보험업계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20대 초반 선배가 공유차를 빌린 뒤 그 차에 학교 후배들을 태워 사고를 내는 것으로 본다. 이들은 공유차에 사람을 가득 채우고 차량이 붐비는 마트 근처 등을 돌며 갑자기 차로를 변경하거나 일방통행길을 역주행하는 차들을 노리고 고의로 사고를 낸다. 그리고 해당 차량을 상대로 합의금을 타가는 수법을 쓴다.
보험업계에선 과거에는 일반 렌터카가 보험사기에 이용됐다면 최근엔 그 주요 수단이 공유차로 옮겨간 것으로 보고 있다. 렌터카에 견줘 비용이 저렴한 데다 사고가 난 뒤 보험처리를 하는 비용이 렌터카보다 훨씬 싼 점이 보험사기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렌터카는 차 사고가 나면 1인당 면책금이 50만원 정도로 높지만 공유차는 자기부담금 5만원 정도만 내면 된다. B보험사 관계자는 "공유차는 종합보험에 가입돼 있어 자기부담금이 낮다"며 "면책금을 내도 더 많은 보험금을 남겨먹을 수 있으니 청년들이 공유차 보험사기에 적극 나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보험범죄는 대부분 학교 폭력과 연계돼 조직적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실제 경찰은 일진 출신 고등학생들이 친구나 후배에게 폭력 등을 행사해 이들을 사고차량에 동승하는 역할(일명 마네킹)로 활용하는 것으로 본다. 손해보험협회 관계자는 "최근 1년 6개월동안 경기 남부에서 발생한 공유차 사고에서 청년들이 타간 보험금은 5억원 정도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경찰도 이 사건과 관련해 총 120여명을 보험사기 혐의로 입건한 것으로 확인됐다.
박철현 AXA손해보험 특수조사팀장은 "청소년 보험범죄는 학교 폭력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보험범죄에 대한 협박 및 강요를 받을 경우 지체 없이 신고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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