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말소리의 이면

입력
2020.07.10 04:30
25면
0 0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외국어 공부는 학습량에 그 결과가 비례하는 정직한 공부이다. 누구든 단어를 외우고 문법을 익히는 데 들이는 시간과 노력을 피할 수 없으며, 대부분 투여한 만큼의 성과를 얻는다. 그런데 발음만큼은 우리를 종종 배신한다. 특히 늦은 나이일수록 힘들며, 아무리 노력해도 외국어 발음에 한계를 느끼는 사람도 많이 있다. 그렇다면 원어민이 아닌 사람의 발음은 아무리 유창하더라도 사실상 흉내 내기라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 이유는 언어별로 사용되는 말소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언어에서 발견되는 같은 음가라 여겨지는 발음도 실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 그렇기에 각 언어의 말소리를 같은 것끼리 묶는 것은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우리에게 알려진 많은 언어에 있지만, 한국어에는 없는 대표적인 말소리가 ‘어두 유성음’이다. 영어의 단어 첫머리에 올 수 있는 /b/, /d/, /g/, /z/ 등의 ‘어두 유성음’이 한국어에는 없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에서 사용되는 일본어에서도 한국인이 발음하기 어려운 음가로 어두 유성음(/d/, /g/, /z/ 등)이 꼽힌다.

1923년 일본 관동대지진 당시 한국인이 우물에 독을 푼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한국인이 집단 학살을 당했다. 외모상 한국인과 일본인이 구분되지 않았기에 학살자들이 이 발음의 차이를 이용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어두 유성음 /z/가 들어간 15엔 50전(じゅうごえんごじっせん)을 발음시켜서 어색하면 한국인으로 간주하여 그 자리에서 학살했다고 전해진다.

언어는 논리적이고 객관적이어서 서로의 생각을 이어주고 세계 문명을 엮는 기틀이 된다. 하지만 동시에 매우 주관적이어서 서로 충돌하기도 하고, 편을 가르고, 심지어 학살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강미영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