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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니오 모리코네의 셀프 부고

입력
2020.07.08 18:00
수정
2020.07.08 18:35
26면
0 0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지난 2013년 12월 독일 베를린에서 자신의 콘서트 홍보를 위해 포즈를 취한 엔니오 모리코네. 로마=AP뉴시스

지난 2013년 12월 독일 베를린에서 자신의 콘서트 홍보를 위해 포즈를 취한 엔니오 모리코네. 로마=AP뉴시스

'슈카쓰(終活)'라는 말이 일본에서 유행한 것은 10년쯤 전부터다. 한자 말 '종활' 그대로 죽음을 준비하는 마지막 활동이다. '웰다잉(Well Dying)'과 의미가 통하지만 그를 위한 구체적인 행동을 가리킨다. 장례나 매장의 형식을 미리 정하는 것일 수 있고 자식을 분가시킨 독거 세대라면 집안 물건을 최소한만 남기고 정리하는 행위도 포함된다. 인터넷, SNS 등의 가입 정보를 유족이 알 수 있도록 전할 필요도 있다. 2년여 전 암으로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일본의 한 전직 기업인이 신문광고를 통해 생전 장례식을 열어 화제였는데 이런 행위도 종활의 일환이다.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것이 새롭지는 않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죽음을 준비하는 가장 대표적인 활동은 유언장 작성이다. 사후 가족 간 재산 분쟁을 막자는 의도가 크지만 최근에는 죽음을 기억하고 자신의 인생을 돌이켜 보자는 의미에서 유언장 쓰기를 캠페인처럼 벌이기도 한다. 한걸음 나아가 자신의 취향이나 가족의 의사까지 고려한 사전장례의향서 작성, 최근 법적으로 허용돼 장려되는 연명치료 거부 의향서 작성 등도 웰다잉을 위한 활동에 추가될 수 있을 것이다.

□목사 출신 미국 작가 로버트 풀검은 출생과 만남, 이별, 사망 등 인생의 중요 계기에 대한 관찰과 사색을 담은 '제 장례식에 놀러오실래요?'에서 남편이 전사(戰死)한 뒤 유산 등 문제를 처리하느라 2년 넘게 씨름한 마사 카터라는 여성 이야기를 한다. 카터는 그런 어려움을 자식에게 안기지 않겠다며 사후 재산 처리를 미리 가족과 논의해 유언장을 써 공증까지 받았다. 자식들과 자신이 묻힐 공동묘지를 둘러보고 계약도 했다. 단지 "물질만 남기고 가서는 안 된다"며 사후 부치도록 당부한 뒤 여러 사람에게 편지도 썼다.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가 6일 91세로 세상을 떠난 직후 그가 직접 쓴 '셀프 부고'가 공개됐다. '나 엔니오 모리코네는 죽었다'로 시작하는 이 글에서 그는 자신의 장례를 가족장으로 조촐하게 치르겠다며 "내가 얼마나 당신들을 사랑했는지 기억해 달라"고 작별을 고했다. '웰다잉'이 회자된 지 오래지만 최소한의 '종활'이라 할 유언장 작성 비율은 5%에 불과하다고 한다. 운 좋게 재난이나 중병을 피하더라도 풀검의 말대로 우리 모두 '시한부 인생'이다. 남은 이들에게 전할, 시네마천국의 '사랑의 테마'처럼 따뜻한 편지 한 장 정도 미리 써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김범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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