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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이 점점 없어집니다

입력
2020.07.08 15:34
수정
2020.07.08 18:1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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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화
서석화작가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아는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세상이 또 그 사람 이름만큼 헐거워진다. 그녀는 나와는 촌수가 성립되는 친척은 아니다. 살갑게 개인적인 관계를 갖지도 않았으니 친지라고도 할 수 없다. 관계를 억지로 짚어보자면 그녀는 내 외종사촌 언니들의 내종사촌이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잘 안다. 대학 2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걸 필두로 오늘 이 시간까지 많은 일가친척, 지인들이 세상을 떠났다. 4년 전 어머니를 보내 드리며 나는 이제 어떤 부고에도 담담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내게 어머니는 내가 느낄 수 있는 모든 그리움과 외로움의 진원지였으며, 내가 낼 수 있는 최대치의 사랑과 존경과 애틋함의 주인공이었다. 그런 어머니와의 생사를 가르는 이별을 나는 겪었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극한의 놀람과 슬픔은 그렇게 민낯으로 쳐들어왔고 나는 아직도 그것들과 전쟁 중이다. 그런데 오늘 날아든 부고에 평상심을 잃는다. 떠오르는 몇몇 얼굴들, 내게 소중한 이들에 대한 걱정이 떠난 이를 향한 애도보다 먼저 찾아왔다. 

맨 먼저 K이모가 떠올랐다. 어머니 직계 형제는 다 돌아가시고 사촌까지 훑어도 이제 한분 남은 외가 쪽 어른, 다정하고 열려 있는 마음을 가진 K이모를 나는 좋아했다. 이모와 오늘 세상을 떠난 이는 사돈이지만 친한 친구였다. 물론 나이도 같았다. 나는 동갑인 친구의 부음을 듣는 이모의 마음이 읽혀 애가 탔다. 다음으론 외종사촌 언니 중에 큰언니가 걱정됐다. 큰언니와 오늘 세상을 떠난 이는 그들의 많은 내종사촌 자매들 중에서도 유독 각별했다. 그 각별함이 언니를 오래 울게 할까 봐 마음이 쓰였다. 사람이 세상을 떠났는데 떠난 이보다 그 사실에 가슴 아플 사람에 대한 걱정으로 애가 타는 나를 만난 신기한 날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신기한 일은 바로 이어 일어났다. 울음이 터진 것이다. 고백한다. 떠난 이에 대한 애도만은 아니었다. 아는 사람이 점점 없어진다는 자각 때문이었다. 그것은 지름을 잴 수 없는 거울로 나를 비추는 것처럼 후려쳤다. 

점점 없어진다. 내가 아는 사람들! 옛날 사진을 보면 그 사실은 극명해진다. 아직도 갖고 있는 어머니 앨범 속엔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앨범을 덮으면 그들은 이미 세상에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어머니가 떠나시기 몇 달 전, 옛날 사진들을 보고 싶다고 하셔서 어머니 앨범을 병원에 가져가 함께 본 적이 있다. 그때 어머니는 내가 기억하는 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소리 내어 우셨다. 쓰러진 후 십육 년을 병석에 계시면서도 신세한탄이나 원망, 눈물 한번 드러낸 적 없이 강했던 어머니의 울음. 그리고 기어코 나까지 울게 만들었던 어머니의 반복되던 혼잣말, 그건 작정하고 그리운 이들을 온몸으로 부르는 주문과 같았다. “여기 이 사람들 다 어디 갔을꼬? 얼마나 먼 데 갔으면 다시는 못 올꼬? 이렇게들 성성했는데 네 아버지, 네 이모와 이모부, 지 명 반도 못 살고 간 천금 같은 내 조카, 진짜 다들 어디 갔을꼬?” 그날 어머니는 한참 동안이나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내 앨범도 마찬가지다.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너무 생생하게 느껴지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말하는 ‘다음 세상’ 주민이 되어 떠났다. 기억은 시간보다 정직하다. 아는 사람이 시간이 흐른다고 모르는 사람이 되지 않는 이유다. 그런데 그 ‘아는’ 사람들이 점점 없어지는 것이다. 

오늘 그녀의 부음을 전해 준 건 외종사촌 언니들이었다. 형제자매가 있는 그녀들에겐 내가 한 명의 외종사촌일 뿐일 테지만, 형제가 없는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혈연이다. 서로의 어머니를 이모라 부르고, 특히 큰언니는 딸인 나보다도 어머니를 더 닮아 어머니가 떠나신 후 부쩍 그리운 적 많았던 사람이었다. 최근에 큰언니로부터 받은 카톡도 ‘이모 닮았지?’라는 말과 함께, 정말 어머니를 빼닮은 큰언니 사진이었다. 나는 큰언니가 오늘 부고에 마음 아플까 봐, 오래 울까 봐, 그러다 마음이 약해질까 봐 정말 조바심이 났다. 제발 오래 살아달라는 말이 방언처럼 터졌다. 아프지 말라는 말도 자꾸 나왔다. 

나이는 해마다 많아지는데 아는 사람은 해마다 줄어든다. 아는 사람이 줄어든 세상은  자꾸 넓어진다. 자꾸 넓어지고 있는 세상은 자꾸 모르는 곳을 낳는다. 모르는 곳이 많으면 사람은 외로워진다. 대표로 문상을 가는 작은언니 계좌로 조의금을 보내면서 나는 K이모에게 전달을 부탁하며 오랜만에 이모 용돈도 함께 보냈다. 이모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아직 한 사람이라도 우리 곁에 있다는 게 너무 소중했다. 남아 있는 아는 사람을 한 사람 한 사람씩 소환해 마음으로 만나본다. 그저 고맙고 그저 눈물겹다. 내게 ‘아는’ 사람이 돼 준 소중한 그들을 생각하자 가슴이 뭉클, 평화롭게 젖는다. 아는 사람!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요 시간이다. 그리고 우리를 끝까지 ‘우리’이게 하는 신비다. 오늘 세상을 떠난 이의 가는 길이, 내가 그녀를 ‘알고 있음’으로 조금이나마 덜 외롭기를...     

                 

서석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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