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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도 눈감는 체육계 괴물들의 카르텔

입력
2020.07.09 06:00
수정
2020.07.09 09:01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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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최숙현 선수의 마지막 메시지와 김규봉 경주시청 감독. 이용 국회의원 제공. 뉴시스

고 최숙현 선수의 마지막 메시지와 김규봉 경주시청 감독. 이용 국회의원 제공. 뉴시스


트라이애슬론 최숙현 선수의 투신 사건은 스포츠 인권잔혹사에 또 하나의 기록을 더 했다. 최선수가 6월 26일 0시28분 엄마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는 체육계의 인권 유린에 대한 처절한 고발이다. 가혹행위에 시달리다 세상을 스스로 등진 스물셋의 영혼을 향해  ‘그 사람들’은 가해 사실을 극구 부인하고 ‘폭행 사실이 없으므로 사과할 것도 없다’고 말했다. 

1998년 6월 8일생 최숙현 선수는 중학교 때부터 수영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고등학생 때 국가대표로 선발된 유망주였다. 트라이애슬론 경기는 수영 3.8㎞, 사이클, 180.2㎞, 마라톤 42.195㎞ 세 종목 총합 226㎞를 해내야 하는 극한 스포츠다. 철인 3종이라 불리는 이 종목은 극도로 강한 체력과 고된 훈련을 이겨내야 한다. 

최숙현 선수와 그 동료들이 지목한 4인의 가해자 ‘그 사람들’이 있다.  경주시청 감독 김규봉, ‘팀닥터’라 불렸던 정체불명의 운동처방사 안주현, 팀 에이스였다는 9년 선배 장윤정, 또 다른 선배 김도환이 그들이다.  7월 6일 최 선수의 동료들 증언에 따르면 ‘맞지 않는 날이 이상한 날’이라고 할 만큼 폭력은 일상이었다. 최선수의 일기장에는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맞았다’는 기록도 등장한다. 국민적 관심이 점점 뜨거워지자 철인 3종협회는 김규봉 감독과 장윤정 선수를 영구 제명했다. 폭행 증언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정작 이들은 가해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으니 수사 과정에서 진실 공방이 오갈 상황이다. 

녹취록 속 구타 현장에서의 '그 사람들'은 "최고의 선수를 만들기 위해서" "너를 믿는다"면서 폭행했다. "살려면 빌어라"고도 한다. 또 지자체 소속팀인데도 선수들이 매달 거액을 거두어서 사이비 운동처방사의 급여를 주었다는 대목도 그렇고, 폭행하는 팀닥터 옆에서 선수를 보호해야 할 감독이란 자가 "동태찌개 끓여놨습니다"라고 말하거나,  20만원어치의 빵을 토하게 해가며 먹였다는 엽기적인 상황도 어이없다. 하지만 스물세 살의 철인은 잔뜩 주눅 든 목소리로 "녜" "아니요",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 비명 같은 단답만을 내뱉을 뿐이었다. 이들의 횡포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최숙현 선수의 부모들도 '팀닥터'의 강요에 못 이겨 딸의 뺨을 때렸다고 한다. "운동을 계속하려면 그렇게 해야 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어느 한 곳만의 문제가 아니다. 많은 선량한 체육 지도자들이 헌신적으로 선수들을 보살피지만 현재 체육계에는 폭력을 당연시하는 '괴물들의 카르텔'이 공고한 권력 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번 사건의 가해자 '그사람들'과, '제발 숨쉬게 해달라'는 최숙현 선수의 고통을 외면했던 여러기관들- 철인3종협회, 경주시청, 경북체육회, 대한체육회, 경주경찰서-도 그 괴물 카르텔의 일부였다. 이런 구조 속에서는 제2, 제3의 최숙현 사건이 계속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 2030스포츠 비젼을 발표했다. 그 핵심은 '사람을 위한 스포츠'다. 스포츠의 헌법에 해당하는 올림픽헌장은 "스포츠는 인권이다"라는 기본 원칙을 천명한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 스포츠는 메달지상주의에 매달린 엘리트 체육 풍토에서 인권과 사람 중심을 희생시켰다는 반성을 해야 한다. 운동밖에 모르는 선수들은 운동 이외의 삶의 방법을 생각할 수도 없고, 지도자들의 '생살여탈권' 앞에서 폭력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성장해 왔다. 국위를 선양한 스포츠 영웅 메달리스트의 이면에 드리운 비인간적인 그림자를 이제 걷어내야 한다. 

사람의 생명과 바꿀 일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폭행과 모멸을 참으면서 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거짓이다. 우리 선수들이 'NO'라고 말하게 하라. 스포츠는 인권이다. 사람 중심 스포츠가 혁신이다. 



김효선 여성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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