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伊 마피아 채권, 1조원대 팔렸다… 고수익에 양심 판 금융기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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伊 마피아 채권, 1조원대 팔렸다… 고수익에 양심 판 금융기관들

입력
2020.07.08 20:00
수정
2020.07.09 05:0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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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피아 조직 ‘드랑게타’ 발행 채권 불티?
마약 밀매 등?범죄 수익 ‘돈세탁’해 준 꼴?
채권 사고판 기관들 “인지 못해” 발뺌


이탈리아 마피아 조직 드랑게타의 유령회사가 발행한 채권을 구입한 이탈리아 금융기관 방카제네랄리의 홈페이지.?

이탈리아 마피아 조직 드랑게타의 유령회사가 발행한 채권을 구입한 이탈리아 금융기관 방카제네랄리의 홈페이지.?


세계 최대 범죄조직 중 하나인 이탈리아 마피아가 발행한 채권이 1조3,000억원어치나 팔렸다. 계속되는 초저금리 시대에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이만한 투자처를 찾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마피아 채권’을 사들인 금융기관들은 문제점을 몰랐다고 발뺌한다. 하지만 무기밀수, 마약밀매, 심지어 난민 브로커까지 각종 범죄행위로 조성한 불법 자금을 ‘돈세탁’해 준 꼴이 됐다. 돈 앞에 도덕적 의무를 저버린 금융기관들을 향한 비난이 거세질 전망이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7일(현지시간) 이탈리아 거대 상업은행 방카제네랄리와 연기금, 헤지펀드 등 기관투자자들이 마피아 조직 ‘드랑게타’와 연계된 유령회사들이 발행한 채권을 인수했다고 보도했다. 드랑게타는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를 근거지로 하는 마피아 조직이다.

보도에 따르면 해당 채권들은 이탈리아 보건기관들이 지급하지 않은 서비스 청구대금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의료업체들이 정부에 요청한 미납 결제명세서 등을 토대로 채권이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채권 중에는 칼라브리아 지역 난민캠프에서 나온 것도 있었다. 액수도 엄청나다. 회계법인 언스트영이 은행들에 제공한 컨설팅 서비스 내역을 보면 드랑게타 유령회사들의 사모채권은 2015~2019년 무려 10억유로(1조3,500억원)어치가 글로벌 금융시장에 풀린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금융회사들은 마피아 채권 여부를 알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방카제네랄리 측은 FT에 “고객들을 위해 중계자를 거쳐 채권을 매입했을 뿐 발행 주체가 누군지는 몰랐다”고 해명했다. 마피아 채권 상품을 내놓은 이탈리아 투자은행 CFE 역시 “범죄 수익으로 채권이 조성된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비교적 이름이 생소한 드랑게타는 최근 20년간 급성장한 신흥 마피아다. 기업형 코카인 밀매, 돈세탁, 무기 밀거래를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 조직이 여러 하부 조직을 거느린 기존 마피아와 달리 수백개의 독립 파벌로 구성돼 있다. 유럽형사경찰기구(유로폴)에 따르면 드랑게타의 한 해 범죄수익은 440억유로(약 59조3,600억원)에 달한다. 이 중 80%가 마약밀매에서 나온다. 최근에는 전통적인 범죄 사업 대신 스타트업 기업으로 위장하는 등 합법 영역으로 진출을 꾀하고 있다. 미국 CNN방송은 앞서 4월 “드랑게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곤경에 빠진 주민들에게 필수품을 공급하는 등 지역사회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2018년 8월 제노바 모란디 다리 붕괴에도 드랑게타가 연관됐을 것이란 추측도 나왔다. 다리 건설 당시 드랑게타가 이권에 개입해 저질 시멘트를 사용하는 등 부실 시공을 주도했다는 주장이다. 드랑게타는 2006년부터 10년에 걸쳐 칼라브리아의 한 난민센터에서 3,600만유로를 횡령한 적도 있다.

이탈리아 사법당국은 드랑게타의 행보를 예의주시하는 중이다. 현지 경찰은 지난해 12월 유럽 전역에서 범죄조직 가입, 살인, 마약밀수, 돈세탁 등 각종 혐의로 드랑게타 조직원들에 대해 대대적인 검거 작전을 벌여 260명을 체포했다. 1980년대 시칠리아 마피아 조직원 400여명이 경찰에 검거된 이후 최대 규모의 소탕 작전이었다. 당시 붙잡힌 조직원 가운데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창설한 중도우파 정당 ‘전진이탈리아’의 지역당 위원장도 포함돼 정계 로비 가능성이 불거지기도 했다.


김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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