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임주희(19)가 '임주희'를 연주했다. 여기서 따옴표 속 임주희는 피아노 에튀드 곡의 제목이다. 프랑스 출신 작곡가 카롤 베파가 지난해 8월 임주희에게 곡을 헌정했다. 이들의 인연은 2011년 프랑스 안시 뮤직 페스티벌에서 시작됐는데, 앳된 소녀 임주희를 만난 카롤 베파는 이미 그때 음악성을 알아봤다(본보 6일자 21면).
에튀드 '임주희'는 7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리사이틀에서 초연됐다. 임주희가 자신의 이름으로 개최한 독주회는 처음이다. 카롤 베파는 아마도 임주희를 쾌활하고 에너지가 넘치면서도, 긴장감 가득한 연주자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에튀드 형식인 만큼 곡 길이는 3분 정도로 짧았지만, 진한 인상을 남겼다. 곡은 무언가에 쫓기는 듯 시작해 쉼표를 찾기 힘들 정도로 숨가쁘게 진행됐다. 그리고 마치 화가난 듯 '쾅' 하는 마무리 타건과 함께 갑작스레 끝나버린다. 리사이틀의 첫 곡이었다. 식전주로 치면 고흐가 사랑했다는 '압생트(Absinthe)' 느낌이다. 호불호가 갈리는, 오묘한데 강렬한 맛이다.
임주희는 두번째 곡으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1번 '발트슈타인'을 들고 왔다.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기념한 시의성 있는 선곡으로 보였다. 임주희가 지휘자 정명훈과 가장 많이 협주한 곡이기도 하다. 통통 튀는 도입부 선율을 잘 살려냈다. 힘있는 왼손과 간드러지는 오른손이 대비됐다. 비르투오소적인 3악장에선 물 만난 고기처럼 마음껏 건반 위를 뛰어다녔다.
리사이틀의 2부는 모두 쇼팽의 곡(발라드 1번ㆍ소나타 3번)들로 채워졌다. 이날 앵콜 곡 2개 중 하나를 쇼팽의 곡(녹턴 15번)으로 또 연주했던 점을 고려하면 연주자의 쇼팽 사랑을 짐작할 수 있다.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 세 살 이후 임주희가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론 쇼팽이 꼽혔다고 한다. 서정적인 느낌이 강한 '발라드 1번'에선 악센트의 강약 조절에 공을 들이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반면 '소나타 3번'에선 2악장 스케르초와 론도 형식의 4악장을 통해 본인의 흥을 마음껏 풀었다.
이날 임주희의 쇼팽 연주는 '쇼팽의 왕자'인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연주와는 또 다른 매력을 발산했다. 조성진이 피아노(p)를 표현하는데 강점을 가진 연주자라면, 임주희는 포르테(f)를 표현하는 데 뛰어난 기량을 보였다. 같은 곡을 놓고 이 둘의 연주를 비교해보는 것도 감상 포인트가 될 수 있다. 임주희는 9월 미국 줄리어드 스쿨에 입학할 예정이다. 체계적인 교육과 큰 무대 경험이 더해진다면, 어쩌면 머지 않아, 클래식 팬들은 또 한 명의 한국인 쇼팽 콩쿠르 우승자를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임주희의 리사이틀 공연은 10일부터 목프로덕션의 유튜브 채널에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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