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측, 국군포로 2명에 2,100만원씩 배상해야
조선중앙TV 저작권료 공탁… 강제집행으로 배상 가능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민사소송을 걸어서 이기면, 배상금을 받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교류도 없는 북한에 배상을 요구하며, 무슨 방법으로 배상을 받겠냐고요? 그렇게 생각하기 쉬운데요. 여기, 실제로 북한과 김 위원장에게 소송을 냈다가 승소한 이들이 있습니다. 한국전쟁 정전협정 이후 북한에 억류돼 강제노역을 했던 국군포로 한모씨와 노모씨입니다.
이들은 2016년 김 위원장과 북한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가 4년이 지난 7일에서야 1심에서 승소판결을 받았습니다. 이 재판은 국내에서 김 위원장을 상대로 열린 첫 재판이었는데요. 1심 판결에 따르면 북한과 김 위원장이 공동으로 한씨와 노씨에게 각각 2,100만원씩 총 4,200만원을 지급해야 합니다.
통상적인 민사소송 방식을 적용하면 김 위원장과 북한이 원고들에게 직접 손해배상을 해야 해요. 그러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이기는 하죠. 북한에 있는 김 위원장이 남한에 있는 개인에게 돈을 건네는 모습이 상상이 되시나요?
배상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하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아마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낸 소송을 보면 어느정도 대답이 될 텐데요. 대법원은 2018년 이춘식씨 등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신일철주금이 피해자들에게 1억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신일철주금은 '버티기'에 들어갔습니다. 기업 측이 합의에 나서지 않자 원고 측 변호인단은 신일철주금의 한국 내 자산에 대한 압류를 신청했어요. 신일철주금이 포스코와 함께 국내에서 설립한 합작회사 PNR의 주식 8만1,075주였습니다. 지난해 초 법원이 압류신청을 승인했는데, 1년이 지나도록 뚜렷한 배상책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결국 법원이 최근 국내 자산 강제매각을 위한 절차에 돌입했고요. 압류된 주식을 매각하면 피해자들은 배상금을 받을 수 있게 되겠죠.
북한이 한국에 직접 소유한 자산이 있는 건가요?
엄밀히 말하면 없다고 보는 것이 맞아요. 그런데, 북한의 소유라고 볼 만한 자산이 있기는 해요. 바로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 등 국내 방송사들이 조선중앙TV에 지불해야 할 저작권료입니다. 방송사들은 조선중앙TV가 제작한 영상 콘텐츠 활용 목적으로 북측에 저작권료를 지급해왔는데요. 남측을 대리하는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경문협)과 북측을 대리하는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가 계약을 맺었고, 통일부의 승인을 거쳐 북한에 저작권료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어요.
그런데 대북 제재로 송금에 제약이 생기면서 2009년부터 저작권료를 법원에 공탁해왔어요. 송금하지 못하는 저작권료를 법원에 맡겨놓은 셈이죠. 변호인단은 현재까지 남아있는 공탁금의 규모를 16억원 수준으로 파악하고 있는데, 공탁금에 대한 강제집행을 계획 중이라고 합니다. 국군포로들이 공탁금으로 배상을 받게 된다면, 대북 송금 제재가 뜻하지 않게 '큰 일'을 한 상황이 연출되는 거에요.
원고 측 변호를 맡았던 엄태섭 법무법인 오킴스 변호사는 이날 한국일보 통화에서 "원래 판결이 확정돼야만 강제집행이 이뤄질 수 있는데 판결문에서 가집행할 수 있다고 판시해 확정 전에도 집행절차에 돌입할 수 있다"며 "이번주 중 공탁된 재산이 있는 동부지법에 (강제집행을) 신청할 예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전혀 장벽이 없는 건 아닙니다. 이론적으로 강제집행이 진행되기 전에 누군가 공탁금을 빼가거나 제3자가 공탁금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며 이의신청을 한다면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고 하는데요.
억울하게 강제노동을 해야만 했던 국군포로들이 북한을 상대로 배상을 받는 날이 조만간 오게 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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