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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세 ‘청년’ 피아니스트 연주회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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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세 ‘청년’ 피아니스트 연주회 연다

입력
2020.07.07 16:15
수정
2020.07.07 17:0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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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삼 전 부산대 음악학과 교수

95세의 나이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자신이 자곡한 곡 등을 연주하는 음악회를 여는 제갈삼 전 부산대 교수가 자택에서 피아노 연습을 하고 있다. 부산=권경훈 기자

95세의 나이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자신이 자곡한 곡 등을 연주하는 음악회를 여는 제갈삼 전 부산대 교수가 자택에서 피아노 연습을 하고 있다. 부산=권경훈 기자


“이 나이에 연주회를 여는 것은 내 힘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큰 힘이 도와준 덕분이지요.”

6일 부산 남구 광안리 자택에서 만난 제갈삼(95) 전 부산대 음악학과 교수. 그랜드피아노 2대가 놓인  방에서 그는 베토벤 ‘월광’ 3악장의 한 부분을 빠르게 연주했다. 피아노 앞에 앉은 그는 아흔다섯의 '청년'이었다. 제갈 교수는 “젊었을 때부터 피아노를 손에서 땐 적이 없어 손이 술술술 건반을 따라가는 대로 친다”며 “모든 게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주변의 모든 게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방에 들어설 때마다 피아노 위에 놓인 작은 베토벤의 흉상에 존경의 의미를 담아 목례를 한다고 했다.

제갈 교수는 오는 11일 부산문화회관 중극장에서 ‘제갈삼 교수 기네스 음악회’를 연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월광’과 자신이 21세 때 작곡한 피아노 독주곡 ‘감각적인 환상곡’ 등을 연주하고, 작곡한 노래들도 선보인다.

기네스 세계 기록 최고령 피아니스트는 루마니아 출신의 여성 켈라 데라브란키아로 103세 때 연주회를 열었다고 한다. 국내에서는 2001년 피아니스트 김원복 전 교수가 93세에 공연했다.

아흔이 훌쩍 넘은 나이와 관련해  제갈 교수는 “기네스라고 이름은 붙였지만 기록 경쟁을 위한 음악회는 아니다”며 “건강하게 연주회를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기념으로 남기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이번 공연을 기획한 박흥주 부산문화 대표는 제갈 교수를 대신해 세계 기네스 기록 등재를 한국기록원에 요청했다. 본인의 이름을 걸고, 본인이 작곡한 곡이 있는 연주회를 여는 것은 제갈 교수가 세계 최고령이라고 한다.

제갈 교수는 1925년 11월 경남 마산에서 태어났다. 5년제 중고등 교육기관인 대구사범학교에서 피아노를 처음 배웠다. 졸업 후 대구 수창국민학교에서 음악 교사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문학 교사였던 김춘수 시인과도 친분이 깊었다. 이후 마산중, 경남여중 등에서 교편을 잡은 뒤 부산교육대학을 거쳐 부산대 교수가 됐다. 제갈 교수는 “ 김춘수 시인의 ‘네가 가던 그 날은’에 내가 곡을 붙여 만든 노래도 엄밀히 따지면 김 시인 덕분”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전쟁 중에 ‘음악가 동맹’이란  순수 음악단체에 가입했다가 ‘동맹’이란 이름 때문에 좌익으로 몰려 고문과 함께 구치소 생활을 하기도 했다. 제갈 교수는 “당시에 죽을 줄만 알았는데 오해가 풀려 무사히 나올 수 있었다”며  “길에서 징병에 끌려갈 뻔한적도 있는데 마침 학교 제자가 교사인 것을 증명해줘서 위기를 모면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삶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는 것 조차 많은 도움과 인연 덕분이었다”고 회상했다.

제갈 교수는 1970년 ‘부산 피아노 트리오’ 멤버로 합류해 활동하면서 수 차례 연주회를 열었다. 1990년대 초 부산국제음악제 음악 감독으로 활약했다. 초창기 부산의 음악 역사를 정리한 책을 펴내는가 하면 음악교육 관련 논문과 칼럼도 지속적으로 발표했다. 부산 음악사의 빼놓을 수 없는 원로다.

그는 “누구든 나이에 얽매이지 말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았으면 한다”며 “손가락이 움직이는 한 감사하는 마음으로 백순 음악회도 열고 싶다”고 했다. 부산문화재단과 부산은행 후원으로 마련된 제갈 교수의 음악회는 무료로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부산=권경훈 기자 werth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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