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들이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다고 말하는 외국인들이 있다. 아예 약속 개념이 없어 보인다고도 한다. 알고 보니 ‘다음에 밥 한번 같이 먹어요’를 말 그대로 해석한 데서 온 오해였다.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되는 외국인들은 그 말에 전화기만 쳐다보며 기다린다는데 결국은 감감무소식일 테니 그럴 만도 하다. 인사말로 쓰인 빈말을 알 리가 없다.
‘아’ 해 다르고 ‘어’ 해 다르다는 속담이 있다. 같은 이야기라도 말하기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표현법을 이처럼 중요하게 여긴다면서 하는 빈말은 모순과 같다. 어딘가로 가는 사람을 보면서 ‘어디 가세요?’라 인사한다. 같이 일하다가 먼저 나가면서, 남아 있는 사람에게 ‘그럼 수고하세요’라 한다. 가게에서 안 사고 나올 때는 ‘나중에 올게요’라 하고, 안 올 것을 뻔히 아는 주인은 ‘둘러보시고 오세요’라 한다. 심지어 지인의 부탁을 거절하면서 ‘생각해 볼게요’란다. 어디 그뿐인가? 한국인은 식당에서 나오는 사람에게 밥 먹었냐고 묻는다. 그러면 외국인은 밥 말고 빵을 먹었다고도 하고, 혹은 자신이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처럼 보이냐고 진지하게 되묻기도 한다.
이처럼 맥락에 안 맞는 말에도 화내지 않는 한국인을 보며 외국인들은 고개를 갸우뚱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빈말들에 애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어디 가느냐, 밥 먹었냐, 밥 한번 먹자는 말은 자신에 대한 이웃의 호감이며, 나중에 온다거나 좀 더 생각해 보겠다는 모호한 말은 남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려는 배려였다는 것을 배운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치 그런 적 없었다는 듯이 그들이 익숙하게 인사를 건네는 날이 온다. ‘어디 가세요? 밥 먹었어요? 나중에 우리, 밥 한번 같이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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