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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티머스, 펀드 사기의 '끝판왕'이었다

입력
2020.07.08 04: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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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옵티머스 사기의 공범들
수탁사-사무관리사 정보공유 無 '시스템 구멍' 악용
하나은행ㆍ예탁원 속여 사기에 끌어들인 셈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옵티머스자산운용 본사의 모습. 뉴스1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옵티머스자산운용 본사의 모습. 뉴스1

[편집자 주] 한때 선진 금융기법으로 칭송 받던 사모펀드에서 연일 사고가 터지고 있다. 지난해 해외 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부터 올해 라임자산운용에 이어 옵티머스 사태까지. 돌연 환매중단이라는 얼개는 비슷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죄질은 갈수록 나빠진다. DLF 사태는 은행의 불완전판매가, 라임 사태는 운용ㆍ판매사 사기에 가까운 행태가 문제였다면, 옵티머스 사태에선 운용사가 아예 사기를 쳐버렸다.

이는 일부 개인과 회사의 일탈이라기보다, 근본적으로 '누더기'가 된 한국 사모펀드 시장의 제도적 결함 때문이다. 옵티머스 사기가 어떻게 이뤄질 수 있었는지, 그 과정에 시장과 금융당국은 어떤 실책을 저질렀는지 3회에 걸쳐 집중 조명한다.

드러나는 '검은 실체'

옵티머스는  2017년 6월 정부 산하기관이나 공공기관이 발행한 매출채권에 투자하는 만기 1년 미만의 사모펀드를 표방하며 투자금을 모았다.  투자 대상이 공공기관의 매출채권이라 안정적이고,  저금리 시대에 연 3%대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홍보에 상품이 나온 초기부터 기관, 개인까지 몰리며 인기를 끌었다.

특히 증권사들이 앞다퉈 판매에 나서면서 지난 3년간  2조원 넘는 투자금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1조5,000억원 가량은 환매가 이뤄졌고, 남은 잔고는 지난 5월 말 기준 5,200억원 정도다. 이 가운데 이달 5일 기준 1,056억원의 환매가 연기된 상태다. 아직 만기가 남은 4,100억원가량도 상환이 안 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달 중순, 만기가 도래한 일부 펀드에 옵티머스가 "상환을 연기할 수 있다"고 증권사에 알리면서 처음 문제가 불거졌다. 옵티머스의 펀드 구조상 공공기관이 펀드에 돈을 못 갚는 상황에 처했다는 건데, 공공기관이 그러기는 쉽지 않다. 알고 보니 실제 옵티머스가  투자한 대상은 공공기관 매출채권이 아니라 ‘비상장 기업들의 사모채권’이었던 것이다.

옵티머스-펀드-투자-흐름도

옵티머스-펀드-투자-흐름도


복잡한 운용 시스템

옵티머스는 어떻게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한다'던 투자제안서와 달리,  비상장 기업 사모채권에 돈을 넣는 ‘대범한 사기’를 저지를 수 있었을까. 

옵티머스 사기를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우선 사모펀드의 운용 시스템을 알 필요가 있다. 핵심은 사모펀드 운용 관련 모든 업무를 운용사가 오로지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맨 처음 사모펀드 상품을 기획하는 운용사는  판매 창구가 없기 때문에 증권사나 은행 같은 ‘판매사’를 낀다. 판매사가 운용사의 사모펀드를 대신 팔아 투자금을 받아온다. 여기서 ‘수탁사’가 등장한다. 수탁사는 판매사를 통해 들어온 자금을 운용사 대신 보관하면서, 운용사가 내리는 운용 지시에 따라 투자를 집행해주는 곳이다.

수탁사의 역할은 통상 은행의 신탁부서에서 담당하는데, 이때 운용사와 은행이 맺는 신탁 계약을 ‘집합투자규약’이라 부른다. 이 규약에는 운용사가 투자할 계획인 자산의 종류가 나와 있다. 수탁사는 운용사의 운용지시가 해당 규약에 따라 이뤄지는지 확인하고 투자자의 돈을 자산 매입에 사용한다. 나름의 견제 역할이 주어져 있는 것이다.

마지막 주체는 ‘사무관리사’다. 운용사는 자신이 운용하는 사모펀드의 ‘가치’를 산정해 펀드명세서를 공시해야 한다. 하지만 운용사에게 산정 시스템이 없는 경우가 많아, 이 업무를 사무관리사에게 외주를 주는 것이다. 사무관리사는 특정 사모펀드 가치를 산정할 수 있는 일종의 ‘회계장부 시스템’을 제공한다. 이 과정에서 자산의 종류 등 정보를 사무관리사가 대신 입력해주기도 하는데, 이때 100% 운용사가 제공하는 자산 정보에 의존하는 게 현재의 구조다.

옵티머스 사태의 경우, 판매사는 주로 NH투자증권이, 수탁사는 하나은행이, 사무관리사는 예탁결제원에서 맡았다.

사무관리사는 못 보는 ‘규약’ 악용

문제는 현행 시스템에서는 사모펀드 투자와 관련한 모든 정보를 운용사가 쥐고서,  판매사 수탁사 사무관리사에게 입맛대로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운용사를 제외한 나머지 주체들은 이를 알 수 없게 되어 있다. 공모펀드의 경우, 네 주체가 펀드 관련 모든 정보를 공유하는 것과 상당한 차이다.

한국일보 취재 결과, 옵티머스는 이런 점을 적극 악용했다. 수탁사인 하나은행과 맺은 규약에는 펀드가 살 수 있는 자산으로 ‘공공기관 매출채권’뿐 아니라 ‘사모채권’도 슬쩍 넣어둔 것으로 파악됐다. '투자금의 95% 이상은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하고 나머지는 현금성 자산으로 보유한다'는 투자제안서 내용과는 다른 상황이다.

이에 하나은행은 투자자가 설명 받은 투자 대상(공공기관 매출채권)이 아닌 ‘비상장사 사모채권’을 사들이라는 옵티머스의 운용 지시가 떨어졌을 때, 규약에 따라 매입할 수 있는 자산으로 명시돼 있는 사모채권을 사들인 것이다.


증권사별 옵티머스 펀드 설정잔액

증권사별 옵티머스 펀드 설정잔액


반면 이 정보는 사무관리사인 예탁원에는 공유되지 않는다. 공모펀드와 달리 옵티머스와 하나은행 간의 신탁계약에만 포함된 내용이기 때문에, 예탁원은  옵티머스가 제공하는 정보를 일방적으로 받아 봐야 한다. 특히 사무관리사가 수탁사에게 투자 재산을 확인할 수 있는 권한과 의무도 없다.

옵티머스는 두 주체 사이의 빈틈인 ‘규약’을 십분 활용해 사기를 친 것으로 보인다. 하나은행에게는  사모채권을 사들이라고 하고서는, 사무관리사인 예탁원에는 실제 매입하지 않은 공공기관 매출채권 정보를 다량으로 넘겨 투자자에게 공공기관 매출채권을 기준으로 가치가 산정된 펀드명세서를 제공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서류 조작’ 의혹이 제기된다. 옵티머스가 예탁원에 넘긴 자료는 실제 투자하지도 않은 공공기관 매출채권을 바탕으로 작성됐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결국 허술한 사모펀드 운용 시스템을 간파한 옵티머스가 수탁사와 사무관리사를 끌어들여 사기를 완성한 꼴”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그는 “아무리 사모펀드라지만 기본적인 투자 재산의 일치 여부는 시장에서 확인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제도가 미비하다는 이유로 손을 놓고 있었다는 비판은 수탁사와 사무관리사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상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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