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만에 부활한 MBC 일일극 '찬란한 내 인생'
"앞으로는 이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드라마 제작에 더욱 더 주의하도록 하겠습니다."
1년 만에 부활한 MBC 일일드라마 '찬란한 내 인생' 제작진이 첫 방송이 나간 지 일주일도 안돼 시청자들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극중 간호사를 비하한 장면이 전파를 타면서 호된 질책을 받은 탓이다. 논란의 여지 없는 부적절한 설정이며, 만듦새도 떨어진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문제의 장면은 지난 2일 방영분에 등장했다. 재벌 2세로 나오는 고상아(진예솔)가 병원에 입원한 어머니를 찾았다가 환자를 보기 위해 들어온 간호사 박현희(유하)를 맞닥뜨린 장면이다. 네일아트를 받은 간호사의 손톱을 본 고상아는 "뭐하자는 거냐"라며 다짜고짜 초면에 반말부터 하더니 관리자를 불러 "간호사 교육을 어떻게 시키냐. 수준이 왜 이러냐"고 호통친다.
때마침 간호사가 신고 있는 하이힐을 보고 "딱봐도 카피 구두 어떻게 다른지 구분도 못하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신는 낯뜨거운 수준"이라며 모욕한다. 간호사가 "이거 진짜예요"라며 억울한 듯 신발을 벗어들고 눈 앞에서 흔드는 장면은 백미다. 급기야 고상아는 간호사의 뺨을 올려붙인다.
이를 두고 '개념 없는 간호사를 참교육 시킨다'라고 홍보할 생각을 한 제작진의 안일함은 문제를 더 키웠다. MBC 측은 이 장면을 '화제의 1분'으로 편집해 '개념 없는 간호사 참교육 시키는 진예솔 "수준하고는..."'이라는 제목으로 자사 공식홈페이지와 네이버TV 등에 게시했다.
시대 변화에 뒤처진 제작진의 행태는 홍보만이 아니다. 연출이나 홍보 의도가 '안하무인 재벌 2세' 캐릭터를 선보이기 위함이라고는 하지만, 그 방법으로 간호사라는 직업을 다루는 방식 자체가 애초부터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실제 일터에서 하이힐을 신거나 네일아트를 받는 간호사가 있을 리 없는데도, 제작진이 제 편한대로 왜곡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열악한 근무 환경 등의 문제는 외면한 채 간호사를 그저 '짝퉁 명품 구두를 신고 네일아트 받은 허영심 가득한 젊은 여성'으로만 몰아간 대목이 더 고약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일하는 여성을 제대로 묘사해내는데 인색한, 기존의 문제적 행태를 그대로 답습했다.
더구나 드라마에서 특히 간호사라는 직업군을 악의적으로 소비해온 역사는 길다. 드라마 속 간호사는 대개 짧은 치마를 입거나 병동에 앉아 수다를 떠는 정도로 묘사된다. '남성 의사'에 의존하는 캐릭터로 서사 바깥에 존재하기 일쑤였다. 여성이 주로 하는 일에 대한 폄하, 그중에서도 젊은 여성에 대한 멸시가 그 밑바닥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문제된 장면 속 간호사 역시 고상아의 부당한 대우에 분명하게 항의하는 게 아니라 끝까지 '내 구두는 가짜가 아니다'라고 항변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만 등장한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결국 여성은 '직업적 정체성'이 아니라 '사치적 소비재'로 자신을 정체화하는 존재라는 걸 비아냥거리는 설정"이라며 "전문직업인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하는 일이라는 이유로 가치절하하는 여성혐오가 끼어들어가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노동문제와 고객에 의한 갑질을 문제시하지 않은 것 역시 시대착오적"이라며 "이 같은 장면이 중간에 걸러지지 않고 전파를 탔다는 게 참담하다"고 덧붙였다.
'찬란한 내 인생'은 MBC가 1년 만에 부활시킨 일일극이다. '일일극은 곧 막장'이란 선입관도 이겨내야 하고, KBS 1ㆍ2에서 방영하는 일일드라마 '기막힌 유산' '위험한 약속'과의 경쟁에서도 살아남아야 한다. 하지만 '찬란한 내 인생'은 방영 초부터 논란을 자초하며 1%대 시청률에 머물고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