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을 사랑했던 남자… I♥NY 디자이너 밀턴 글레이저가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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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을 사랑했던 남자… I♥NY 디자이너 밀턴 글레이저가 남긴 것

입력
2020.07.05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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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뇌졸중으로 91세로 별세


미국 뉴욕 알바니시에 있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플라자 앞 I♥NY 사인. 알바니=AP 연합뉴스


전세계에서 사랑 받고 있는 미국 뉴욕시의 브랜드 ‘아이러브 뉴욕’(I♥NY)을 디자인한 밀턴 글레이저(Milton Glaser)가 지난달 26일 91세로 별세했습니다. 26일은 글레이저의 생일이었다고 하는데요, 부인이 밝힌 글레이저의 사인은 뇌졸중이었습니다.

현재 뉴욕은 글레이저가 디자인한 ‘I♥NY’ 가 찍힌 티셔츠와 모자 등의 판매로 매년 3,000만달러(약 360억원)를 벌어들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글레이저는 이외에도 뉴욕 매거진의 공동 설립자이자 밥 딜런의 포스터를 제작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선명한 색조와 에너지 넘치는 디자인으로 1960~70년대 시각적 문화에 변화를 가져온 위대한 디자이너였다”고 평가했는데요. 뉴욕을 누구보다 사랑했던 남자, 글레이저가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했던 건 무엇이었을까요.

‘I♥NY’ 아이디어, 어떻게 떠올랐나

I♥NY로고를 디자인 한 밀턴 글레이저가 지난달 16일 91세로 별세했다. 뉴욕=게티이미지 AFP 연합뉴스


‘I♥NY’이라는 로고는 원래 기념품을 위해 디자인 된 건 아닙니다. 1977년 뉴욕은 당시 ‘세계의 범죄 수도’라는 오명과 함께 파산 직전에 시달리던 도시의 이미지를 쇄신하고자 했는데요. 뉴욕시는 재정난 극복을 위해 관광객을 유치하는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글레이저에 로고를 의뢰하게 됩니다. 글레이저는 택시 안에서 봉투 뒷면에 빨간 크레용으로 스케치 해 이 로고를 만들었는데요. 로고는 곧바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나 자유의 여신상처럼 뉴욕의 상징이 됐다고 NYT는 전했습니다. 사실 로고의 인기에 제일 당황한 건 글레이저 본인이었습니다. 그는 2011년 빌리지 보이스에 “이 작고 아무것도 아닌 아이디어에 일어난 일에 깜짝 놀랐다”고 말한 바 있죠.

2001년 9월 11일 테러 공격 이후에는 이 도시를 찾은 방문객들이 연대감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I♥NY’가 새겨진 티셔츠를 구매했습니다. 당시 글레이저는 “I♥NY More Than Every(나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뉴욕을 사랑한다)”로 디자인을 수정 했지요. 이는 도시 전역에 포스터로 배포됐고, 9월 19일 데일리 뉴스의 앞면과 뒷면에 실리면서 테러 희생자와 가족들, 이들을 추모하는 세계인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글레이저는 이 로고로 돈을 많이 벌었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글레이저가 로고 디자인 작업을 사회공헌으로 받아들이면서 저작권을 뉴욕시에 무상으로 넘겼기 때문입니다.

헝가리 출신 유대인 이민자 부모 아래 성장

2007년 나이지리아의 한 여성이 '아이러브뉴욕'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있다. 나이지리아=AP 연합뉴스


글레이저는 1929년 뉴욕 브롱크스에서 헝가리 출신의 유대인 이민자 부모 아래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드라이 클리닝과 의류 원단을 다루는 가게를 경영했고 어머니는 전업 주부였다고 하는데요.

뉴욕타임스는 앞서 글레이저가 뉴욕의 명문인 플랫 인스티튜트 대학 입학 시험에 2번 낙방했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뉴욕에 거주하는 일본 기자 아베 카스미는 글레이저를 추모하는 기사에서 “천재라는 사람도 이런 과거가 있다는 것은 젊은이에게 희망을 주는 에피소드”라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글레이저는 이후 패키지 디자인 회사에서 근무했고 맨해튼의 쿠퍼유니언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대학 동급생 3명과 함께 그리니치 빌리지 지역에서 공장을 개조한 아파트를 빌려 디자인 회사를 세웠지요. 여러 회사의 로고와 광고, 책 표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으며 1968년에는 격주간지 뉴욕 매거진을 창간했습니다. 글레이저는 1968년 ‘반전시인’ 밥 딜런의 앨범에 들어간 포스터를 디자인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밀튼 글레이저 회사를 설립 한 것은 1974년입니다.

선견지명이 있는 브랜딩의 천재

지난 2010년 밀턴 글레이저가 당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으로부터 국가예술훈장을 받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아베 카스미 기자는 글레이저에 대해 “단순함과 직관의 미학을 누구보다 믿었던 아티스트”, “선견지명이 있고, 조금 완고한 장인 정신을 갖췄지만 실은 친절한 사람이었던 것은 아닐까”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지난 2월 뉴욕을 대표하는 맥주회사 브루클린 브루어리의 창업자 스티브 힌디(Steve Hindy)와 진행한 인터뷰를 소개했는데요. 이 회사의 로고 역시 글레이저가 무료로 디자인 했지요. 스티브는 글레이저에 대해 “자신의 비전을 가진 천재다”라며 “남들이 그의 일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없는, 그런 존재”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어 “예산이 없다고 하자 밀턴은 비용을 받지 않고 우리의 주식 일부를 보유하는 것에 합의해줬다”고 계약 당시 상황을 회고했습니다.

미국 뉴욕 타임 스퀘어의 한 가게에 전시된 ‘I♥NY’ 티셔츠. 뉴욕=AFP 연합뉴스


아베 기자는 3년 전 글레이저가 남긴 메시지 ‘인생에서 소중히하고 싶은 것, 뜻 깊은 인생이란’을 공유하면서 추모 기사의 끝을 맺습니다. 로직과 직감 중 어느 파냐는 질문에 그는“직감에는 더 큰 힘이 있다. 로직은 모르는 것을 보완하기 위한 잔재주다. 나는 믿지 않는다”고 즉답했습니다. 그러면서 ‘I♥NY’로고가 탄생할 때도 ‘직감’을 믿었다고 했지요.

“명성, 돈, 남의 평가라는 게 재미없어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 그것은 당신의 인생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와 관계성, 단지 그것뿐입니다. 무엇이 진실인지 어떻게 알아내냐고요? 그것은 인생의 질문입니다.”

고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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