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들은 안 팔고 22차례 전쟁 벌여?
집값ㆍ전셋값 다 올라도 "정책 작동"?
이런 인식 못 버리면 대책 무용지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한국일보>
집 부자들이 정부 고위층에 많아서 집값을 끌어올린다는 음모론적 해석은 늘 있어 왔다. 집값 상승기엔 대부분 그랬고, 박근혜 정부처럼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시키겠다고 노골적으로 규제를 푸는 시기엔 더했다.
3년째 집값이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는 문재인 정부도 다르지 않다. 세금(보유세)을 많이 걷으려고 고의적으로 집값을 끌어올린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세금까지 들먹이는 건 너무 나갔지만, 집값이 고위층의 경제적 이해와 맞닿아 있다는 해석은 허투루 흘려버릴 수 없다. 조국 사태에 이어 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에 불이 붙으면서 ‘공정’이 다른 모든 잣대를 압도하고 있는 지금은 더욱 그렇다.
청와대 고위공직자 64명 중 28%인 18명이 2주택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통계는 그 심증에 물증을 얹었다. 직속상관인 노영민 비서실장이 작년 12월 말 “6개월 내에 한 채만 남기고 팔아라”고 한 권고를 대부분 뭉갠 결과다. 하긴 권고를 한 노 실장조차 당시 본인이 언급한 기준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집 두 채를 그대로 보유하고 있다가 여론이 악화하자 지금에야 집 한 채를 팔겠다고 나섰다.
고위 공직자 만이겠는가. 국회의원이든(300명 중 29%인 88명), 서울시의회 의원이든(110명 중 31%인 34명) 힘깨나 쓰는 직역을 조사해 보면 대체로 10명 중 3명가량은 다주택자다. 말로는 집을 팔라고 하면서 세금이든 개발이든 정책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설령 영향을 주지 않았다 쳐도- 이들은 적어도 집을 들고 있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심지어 노 실장이 강남 아파트가 아닌 청주의 집을 판 것을 두고 강남불패를 자인한 것이란 비아냥까지 나온다.
저마다 내세울 이유는 있다. 매물로 내놨는데 잘 안 팔려서, 공동 소유라서, 가족들이 따로 거주하고 있어서 등등. 이런 피치 못할 사정이 고위공직자들에게만 있을 리 없다. 그런데 본인들은 불가피한 다주택자이고, 일반 다주택자는 모두 파렴치한 투기세력이다. 이런 투기세력과 전쟁을 한답시고 수요 규제만 내세우다 공급 정책은 외면한 22번의 대책은 집값은 물론, 전셋값 폭등으로까지 이어졌다. 사다리가 끊어진 건 감정적인 아우성이 아니라 팩트다.
그럼에도 이 정부의 ‘집값 인지 감수성’은 제로에 가깝다. 시민단체가 3년 동안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을 기준으로 53% 올랐다고 하자, 전혀 공감하기 어려운 한국감정원 통계를 들이대며 14% ‘밖에’ 오르지 않았다고 강변한다. 주무장관인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 와중에 “정책은 다 종합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본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지난해 11월 국민과의 대화에서 “우리 정부에서 부동산 가격을 반드시 잡겠다”고 근거 없는 호언장담을 했다. “일본처럼 우리도 집값이 곧 폭락할 테니 집을 사지 말고 기다리라“고 문 대통령이 측근에 말했다는 조기숙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전언이 사실이라면 그 연장선상일 것이다.
아직까지 전 정부 탓도 한다. 김 장관은 “전 정부에서 모든 부동산과 관련한 규제들이 다 풀어진 상태에서 (넘겨) 받았기 때문에”라고 했다. 이게 어디 문 정부 탓이냐, 대출 규제를 대폭 풀어 준 박근혜 정부 탓 아니냐는 것이다. 첫 1, 2년은 그랬을 수 있다. 그런데 3년이 지났고, 대책은 스무 번이 넘게 나왔다.
조국 사태가 터져도 “이게 뭐가 문제냐”고 하고, 인국공에 격분해도 “그럼 정규직화가 틀렸단 말이냐”고 하고, 시장이 대책을 비웃어도 “대책은 잘 작동하고 있다”고 한다. 서민과 젊은층이 왜 분노하는지 인지하지 못하는, 마치 딴 세상에 살고 있는 듯한 이 동떨어진 감수성. 문 대통령이 2일 김 장관을 직접 불러 강력 대책을 지시했지만, 이런 감수성을 바꾸지 않은 채 단지 지지율 하락에 보이는 임기응변일 뿐이라면 이번에도 뾰족한 답을 못 찾을 공산이 크다. 시장의 내성만 더 단단히 하고 음모론을 확신으로 바꿔놓는 23번째 대책이 될지 모른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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