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인수계약 파기 수순?
자본잠식된 이스타항공, 계약 파기 땐 파산 가능성↑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에 인수합병(M&A) 선결 조건인 부채 해소를 열흘 안에 이행하라고 통보했다. 자본잠식 상태인 이스타항공이 1,000억원 규모로 추정되는 부채를 신속히 갚을 가능성이 희박한 점을 감안할 때 제주항공이 사실상 인수계약 파기 수순에 돌입했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7개월을 끌어온 인수 협상이 파국으로 치달으면서 이스타항공은 파산할 가능성이 커졌다.
2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제주항공은 지난 1일 이스타항공에 "10일 이내 선결 조건을 이행하지 않으면 주식매매계약(SPA)을 해지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이스타항공이 발송한 관련 공문을 법무법인 광장을 통해 검토한 결과 이스타항공의 태국 현지 총판 '타이이스타제트' 지급보증 문제 등을 포함해 M&A 선결조건이 해결되지 않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제주항공은 그간 인수를 마무리하려면 이스타항공이 △타이이스타제트 항공기 임차 채무 3,100만달러(약 373억원) 지급보증 해소 △이스타항공 임직원 임금 체불 250억원 해소 △조업료·운영비 등 각종 연체 미지급금 해소 등을 먼저 이행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제주항공은 지난달 이행 확인을 요구하는 공문을 이스타항공에 보냈고, 이스타항공은 지난달 30일 각종 대금을 지급하지 못한 상황에 대한 입장을 담은 공문을 답신했다. 아울러 대주주인 이상직 더불어민주당 의원 일가가 보유한 이스타홀딩스 지분 38.6%를 포기하고 경영권을 제주항공에 넘기겠다는 입장도 표명했다. 이는 이스타항공 매각 이후 발생할 이스타홀딩스의 수익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이스타홀딩스 지분은 이 의원의 아들 이원준(21)씨가 66.7%, 딸 이수지(31) 이스타홀딩스 대표가 33.3%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제주항공이 체불 임금 등을 문제 삼아 인수 작업을 올스톱하자 이스타항공 측이 대주주의 경영권과 매각대금을 포기할 테니 이 돈으로 임금 문제를 해결하라고 제안한 셈"이라며 "하지만 제주항공 측은 이스타항공이 M&A 선결조건을 이행할 능력이 안된다고 판단하고 최후의 통첩을 보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스타항공이 제주항공의 요구를 이행하려면 800억~1,000억원 가량의 현금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스타항공이 열흘 내 이런 대규모 자금을 확보할 수 있을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이 회사의 올해 1분기 말 기준 부채는 2,200억원에 달하고 지난 3월부터 전 노선 셧다운에 들어가 4개월째 매출이 없다. 자본 총계는 -1,042억원으로 완전 자본잠식 상태다. 더구나 매달 250억원가량 빚이 늘어나고 있어 코로나19 사태가 지속된다면 연말 부채가 4,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이미 양측이 체불 임금 해소와 노선 셧다운 등에 대한 책임을 두고 서로 공방을 벌이며 갈등의 골이 깊어진 탓에 인수 계약이 결국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특히 이스타항공이 지난달 29일이던 딜 클로징(인수 종료)을 앞두고 임시 주주총회를 소집하더니 당일엔 이스타항공 창업주인 이 의원이 지분 헌납을 사전 조율 없이 발표하면서 양측 사이는 더 틀어진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제주항공이 초반엔 이스타항공을 인수하면 외형 확장, 신규 노선 개발, 슬롯 확보 등에서 장점이 많다고 판단했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항공업황이 나빠지자 경영진에서 계획을 튼 것으로 안다"며 "실제 이스타항공은 지난해 B737 맥스 운항 중단 이후 사세가 급격히 기운 상태이고, 자본 잠식까지 일어나 인수하더라도 '독이 든 성배'가 될 거란 지적이 많았다"고 말했다.
거래가 무산되면 정부가 당초 계획한 제주항공 1,700억원 지원도 취소될 전망이다. 앞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달 29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M&A가 종결돼야 정책금융 지원이 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스타항공은 정부의 추가 지원이 없을 경우 파산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