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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서양 귀족들은 왜 알로에에 열광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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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서양 귀족들은 왜 알로에에 열광했을까

입력
2020.07.03 06:00
수정
2020.07.09 21:37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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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18세기학회, 맛ㆍ도시에 이어 방 탐구

영국 화가 윌리엄 호가스의 '화장방'(1743~1745). 화장대 옆에 앉아 머리 손질을 받고 있는 백작부인이 아침 접견 중인 모습을 그렸다. 18세기 화장방은 귀족 여성이 치장을 하는 사적 공간인 동시에 사교활동이 이뤄지는 복합적인 장소였다.?

영국 화가 윌리엄 호가스의 '화장방'(1743~1745). 화장대 옆에 앉아 머리 손질을 받고 있는 백작부인이 아침 접견 중인 모습을 그렸다. 18세기 화장방은 귀족 여성이 치장을 하는 사적 공간인 동시에 사교활동이 이뤄지는 복합적인 장소였다.?


'17세기 말까지는 누구도 혼자 지내지 않았다.' 프랑스 역사학자 필립 아리에스는 자신의 저서 ‘아동의 탄생’에 이렇게 썼다. 집의 모든 공간은 가족이 함께 써야 했고, 그래서 침실도, 심지어 침대도 공용이었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또 다른 역사학자 미셸 페로는 ‘방의 역사’에서 개인적이고 은밀한 방은 근대에 만들어진 경험과 사유의 단위라고 했다. 사적인 영역으로서의 방이라는 개념이 그리 오래된 게 아니란 이야기다.

18세기는 방이라는 공간에 큰 변화가 있었던 시기다. 집 밖에 있던 화장실이 집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고, 계몽주의 영향으로 집에 별도의 서재를 두고자 하는 욕망이 급격하게 커졌다. 새로운 종류의 방이 생기는 한편 방의 역할도 세분화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변화에 따라 새로운 가구와 설비, 물건이 인기를 끌었다. 해외에서 건너온 문물이 늘고, 건축, 인테리어 등에서 괄목할 만한 발전이 뒤따르며 변화의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한국18세기학회가 ‘맛’과 ‘도시’에 이어 세 번째 책의 주제로 삼은 건 방이다. 동서양의 18세기 방 안팎 구석구석을 탐구하며 그 당시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변화를 겪었으며 무엇을 욕망했는지 세심히 살핀다. 지난해 상반기 네이버 지식백과에 연재한 글을 다시 한번 다듬고 매만져 책으로 펴냈다.

책은 18세기 여성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을 시작으로 응접실과 거실, 부엌과 화장실, 가구와 사물, 패브릭, 식물과 동물, 책과 서재 등을 천천히 둘러본다. 영국 문학의 거장 제인 오스틴이 가족과 함께 지내던 응접실 창가 작은 탁자에서 걸작들을 썼다는 사실은 자기만의 방과 책상을 가진 여성이 많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반면 프랑스의 영향으로 영국 상류층에서 유행하게 된 화장방은 여성이 외모를 치장하는 사적인 공간이면서도 다양한 사교 활동이 이뤄지는 독특한 공간이었다. 귀부인의 화장방에는 하단에 실내용 변기를 감춰둘 수 있도록 만든 캐비닛을 두기도 했다.


18세기의 방.??민은경 정병설 이혜수 외 지음ㆍ문학동네 발행 ㆍ440쪽ㆍ2만5,000원

18세기의 방.??민은경 정병설 이혜수 외 지음ㆍ문학동네 발행 ㆍ440쪽ㆍ2만5,000원



18세기 유럽 상류층의 방은 점점 권력과 부, 제국주의적 욕망을 과시하는 공간으로 변해갔다. 중국 도자기, 일본식 옷칠 화장대, 인도산 면직물, 오스만 제국의 카펫 등 이국적인 물건이 인기를 끌었고, 지구 각지에서 가져온 희귀한 열대식물을 전시하고자 온실을 짓는 것이 유행이 됐다. 희귀한 열대식물이었던 파인애플과 알로에는 전시용으로 몸값이 치솟았다.

귀족사회의 전유물이었던 애완동물은 18세기 들어 서민들 사이에서도 유행하기 시작했다. 상류층에선 원숭이나 앵무새가 특히 인기였다. 애완동물을 과시하는 유행에 흑인 시동이 포함됐다는 점은 인종차별의 근원이 '백인만이 인간'이라는 뒤틀린 관점에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해 씁쓸하다. 

책은 18세기 유럽뿐만 아니라 조선과 일본, 청나라, 오스만제국의 방도 들여다 본다. 21세기 방의 모습이 어떻게 형성됐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 적지 않다. 18세기의 방이라는 공통의 중심축이 있어서 27명의 필자가 쓴 글을 모은 건데도 산만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고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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