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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sorry"라고요? 당신의 사과는 틀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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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sorry"라고요? 당신의 사과는 틀렸습니다

입력
2020.07.04 04: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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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리' 범람 시대, 전문가 7인이 말하는 사과하는 법?
사과 핵심은 "미안해" 아닌 "내가 잘못했어"
있었던 일 그대로 밝히고, 재발방지책 언급해야
공개사과? 빠를수록 좋아... 조건 달면 마이너스


지난 5월 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서울 서초사옥에서 경영권 승계 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월 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서울 서초사옥에서 경영권 승계 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연합뉴스?


2015년 6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서울 서초사옥에서 대국민 사과를 했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당시 삼성서울병원이 슈퍼 전파자 역할을 했다는 비판여론이 일자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 고개를 숙인 것이다. 이 부회장은 당시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감염과 확산을 막지 못해 국민 여러분께 너무 큰 고통과 걱정을 끼쳐 드렸다. 책임을 통감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철저히 조사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당시 이 부회장의 사과를 두고는 대체로 평가가 나쁘지 않았다. 잘못을 인정하고 재발방지 약속까지 했다는 점에서 사과에 필요한 핵심 요소가 두루 포함돼 있었다는 반응이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부회장이 직접 등장해 위기를 정면돌파하는 모습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때문에 위기를 모면하려는 술수로 해석하기보다는 진정성이 느껴졌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그로부터 5년 후 이 부회장은 다시 한번 대국민 사과 자리에 섰지만 이번엔 평가가 조금 달랐다. 그는 지난 5월 6일 '승계 문제와 관련해 많은 질책을 받았는데, 이제는 이 문제로 더 이상 논란이 없도록 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반응은 어땠을까. 5년 전과 달리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았다. 자발적인 사과로 받아들여지기보다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이뤄진 수동적 사과로 보는 시각이 높았던 탓이다. 더구나 이 부회장이 현재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 진정성을 의심하는 분위기도 만만치 않았다. 김우찬 경제개혁연대 소장(고려대 경영대 교수)은 “법적으로 책임지겠다는 말이 빠져 있어서 제대로된 사과로 보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한국 사회에서 유명인사나 기업들의 사과를 접하는 것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이재용 부회장의 사례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정보가 갈수록 투명하게 공개돼 잘못을 덮고 넘어가기가 쉽지 않게 된 현실도 사과문을 자주 접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숱한 사과문과 사과회견을 지켜보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때로는 비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사과가 되려 역풍을 몰고 오기도 한다. 그렇다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과는 따로 있는 걸까. 충분히 사과했다고 생각했는데, 상대는 왜 받아주지 않는 걸까. 전문가 7명으로부터 사과가 범람하는 시대에 제대로 사과하는 법에 대해 물어봤다.


사과의 핵심은 깨끗이 잘못 인정하기

미국 사회심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아론 라자르가 1,000건 이상의 사과 사례 분석 등을 토대로 쓴 저서 ‘사과에 대하여’에 따르면, “사과의 기본은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과정이 없다면 사과는 시작조차 불가능하다고 강조한 것이다.

국내 전문가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쿨하게 사과하라’의 저자인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는 “사과의 핵심은 ‘아이 엠 쏘리(I’m sorry)’가 아니라 ‘아이 워즈 롱(I was wrong)’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사과할 때 '미안하다'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오르겠지만, 사과의 언어는 ‘내가 잘못했어’로 시작되는 게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도 “사과할 때는 책임 인정이 전제가 돼야, 피해를 어떻게 복구할지를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깨끗이 잘못을 인정하려면 있었던 일을 있는 그대로 밝혀야 한다. 김영욱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ㆍ미디어학부 교수는 “내가 어떤 일을 했는데 거기서 무엇이 잘못됐다는 내용이 들어가야 한다. 잘못한 사실에 대한 구체적 진술 없이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면 오히려 화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성률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도 "소비자들이 많은 정보를 취득해 검증할 수 있는 상황에서, 투명성이 전제되지 않은 사과는 제대로 된 사과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2014년 ‘땅콩 회항’ 사태와 관련한 대한항공의 사과는 기본에서 벗어난 잘못된 사과로 여론이 악화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대한항공은 첫 사과문에서 '잘못은 사무장이 한 것이며, 조현아 당시 대한항공 부사장은 당연한 지적을 했다'는 책임 회피성 변명으로 역풍을 맞았다. 대한항공은 비난이 잇따르자 또 한번의 사과문을 통해 '큰 상처를 드렸다. 그 어떤 사죄의 말씀도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분위기는 바뀌지 않았다. 고개만 숙였을 뿐 어떤 잘못을 했다는 것인지 구체적 언급이 없었고, 사과의 주체도 명확하지 않아 진짜 사과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잘못을 인정했다면 재발방지 대책까지 나와야 제대로 된 사과가 완성된다. 김준익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문제의 원인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뒤, 현재 일어난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이고, 앞으로 반복될 수 있는 문제는 어떻게 예방할 것인지 상대에게 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와 같은 다짐성 문구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조치를 밝히는 게 중요하다고 김 교수는 강조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1년 전 패션 온라인몰 '무신사'의 사과는 ‘올바른 사과의 사례’로 꼽힌다. 사과의 핵심 요소들을 충실히 갖췄기 때문이다. 무신사는 지난해 7월 12일 홈페이지에 ‘박종철 열사께 누를 끼쳐 죄송합니다’라며 사과문을 올렸다. "지난 7월 2일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당시 공안경찰의 ‘책상을 탁하고 쳤더니 억하고 죽었다’라는 발언을 인용한 광고 문구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게재했다. 해당 문구가 엄중한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음에도 홍보 목적으로 사용한 것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사과 드린다.” 무신사는 당시 ‘탁 쳤더니 억하고 말라서’라는 문구를 쓰며 양말 광고를 한 것이 부적절했음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인정한 것을 넘어, 회사 대표는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를 직접 찾아 고개를 숙였다. 직원들을 대상으로 역사교육을 실시하고, 향후 내놓는 콘텐츠는 검수과정을 거치게 하겠다는 재발방지 약속도 했다. 결국 잘못은 했지만 사후 대처가 나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만희 신천지 총회장이 지난 3월 2일 경기도 가평군 신천지 평화의 궁전에서 열린 코로나19 확산과 관련한 사과 기자회견에서 엎드려 절을 하고 있다. 이날 이만희 신천지 총회장은 "잘잘못을 따질 때가 아니다"라고 말해 빈축을 샀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만희 신천지 총회장이 지난 3월 2일 경기도 가평군 신천지 평화의 궁전에서 열린 코로나19 확산과 관련한 사과 기자회견에서 엎드려 절을 하고 있다. 이날 이만희 신천지 총회장은 "잘잘못을 따질 때가 아니다"라고 말해 빈축을 샀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공개 사과,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사과할 땐 내용도 중요하지만 타이밍도 중요하다. 특히 대중을 향한 공개 사과라면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전성률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는 “불만은 시간이 지나면 없어지는 게 아니라 증폭되기 때문에 신속한 사과는 필수 조건”이라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도 “시간을 끌게 되면 상대가 잘못된 부분을 되뇌며 확신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즉각적인 사과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빚은 야구선수 강정호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최근 과거 잘못에 대해 사과하는 기자회견을 했지만 비난 여론이 사그라지지 않자 국내 프로야구 복귀를 포기했다. 음주사고(2016년 12월) 직후 곧바로 사과하지 않고, 국내 복귀를 결정한 이후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이 많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복귀하려고 사과했다’는 의심이 커지면서 진정으로 반성하는 모습이 안 보인다는 반응이 많았다.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정의기억연대 활동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진 지 3주가 지난 시점에 사과 기자회견을 했다. 하지만 시기가 늦어 이미 커질대로 커진 의혹과 불신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온라인 쇼핑몰 쿠팡도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을 두고, 뒤늦은 사과로 비판을 받았다. 지난 5월 말 사내에 확진자가 발생한 지 5일이나 지난 시점에서 사과를 하자 소비자들의 원성을 샀다. 쿠팡의 대처는 비슷한 시기 마켓컬리의 대응과 비교되며 더 큰 질타를 받았다. 마켓컬리는 확진자 발생을 방역당국에서 통보 받자 당일 오후 고객들에게 관련 내용을 상세하게 공개하며 사과한 바 있다.

결국 사과 타이밍은 철저히 피해자 입장에서 고려돼야 한다. 이동귀 연세대 교수는 “‘혼란스러워서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신이 편한 시점을 정해 사과한 것이다. 이는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지난 4월 23일 부산시청에서 시장직 사퇴 의사를 밝히는 기자회견을 가진 뒤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여직원 성추행 혐의를 받고 있는 오 전 시장은 이날 피해자에게 사과하면서 '경중에 관계 없이'라는 말을 써 되려 피해자의 반발을 샀다. 연합뉴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지난 4월 23일 부산시청에서 시장직 사퇴 의사를 밝히는 기자회견을 가진 뒤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여직원 성추행 혐의를 받고 있는 오 전 시장은 이날 피해자에게 사과하면서 '경중에 관계 없이'라는 말을 써 되려 피해자의 반발을 샀다. 연합뉴스?


사과할 때 이런 말은 하지 마라 ?

실패한 사과에는 공통점이 있다. 해서는 안 될 말이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잘못을 축소하려는 발언이 대표적이다. 여직원을 성추행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오거돈 전 부산시장은 지난 4월 기자회견에서 “경중에 관계 없이 어떤 말로도 용서받을 수 없다”며 고개를 숙였지만 되려 피해자의 반발을 샀다. '경중에 관계 없이'란 말이 문제였다. 피해자는 다음날 입장문을 통해 “명백한 성추행이었고 법적 처벌을 받는 성범죄였다. ’경중과 관계 없이’라는 표현으로 내가 유난스러운 것으로 비칠까 두렵다"고 밝혔다.

'불쾌했다면 미안하다'는 식의 조건부 사과도 피해야 한다. 피해자를 속 좁은 사람으로 취급하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는 가해자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조건을 달면 진정성이 떨어진다. '당신이 이 정도쯤은 포용해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한 것인데 아닌 건가'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이만희 신천치 총회장도 지난 3월 코로나19 확산과 관련한 사과 기자회견에서 “지금은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때가 아니다”고 말해 빈축을 샀다. 김준익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런 일이 생겨 유감이다’ ‘의도치 않게’와 같은 표현들은 가능하면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변명으로 범벅이 된 사과와 엉뚱한 대상에게 한 사과는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는 “피해자들과 충분히 대화하지 않은 상태에서 TV 등을 통해 대중에게 먼저 사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항상 피해자를 중심에 놓고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이 사과할 일이 생겼다면, 법인 명의로 사과문을 내는 것도 가급적 피해야 한다. 부담스럽더라도 기업 대표가 직접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좋은 일이 있을 땐 앞에 나서다가 위기 때는 꽁무니를 뺀다면 소비자가 모를 리 없다”며 “대표가 직접 사과하는 게 진정성 있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기술적 접근보다 진정성 담아야

제대로 된 사과가 필요한 이유는 갈등을 풀어내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사과를 받는 쪽은 용서를 함으로써, 사과를 구하는 쪽은 용서를 받음으로써, 양쪽 모두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사과는 종종 신뢰 회복과 성장의 발판이 되기도 한다. 전성률 서강대 교수는 “사과할 일이 생겼을 때 이를 잘 처리하면 불만이 가득했던 고객이 충성 고객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있다”며 “진심이 담겨 있다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다만 사과할 때 진정성을 내려놓고 기술적인 측면에만 집착해선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는 “중요한 것은 사과하는 사람의 태도인데, 사과문을 잘 쓰는 쪽으로만 머리를 굴리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김영욱 이화여대 교수도 “진정성이라는 것은 듣는 사람이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대가 받아들일 수 있는 사과를 해야 한다”며 “일시적으로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사과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채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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