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앱에 침팬지를 넣는다면

이전기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페이스앱에 침팬지를 넣는다면

입력
2020.06.30 16:00
수정
2020.06.30 18:09
0 0
이정모
이정모국립과천과학관장

침팬지. ©게티이미지뱅크


요즘 며칠 동안 소셜 미디어에서는 페이스 앱(Face App)이 대유행이다. 러시아에 본사를 둔 와이어리스 랩이 개발한 사진 편집 프로그램이다.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신경 네트워크를 사용하여 사진에서 사람의 얼굴을 매우 사실적으로 변환해 준다. 

소셜 미디어 친구들이 너도나도 변형한 자기 얼굴을 보여 준다. 중년의 교수가 수십 년 전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거나 수십 년 후 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웃긴 사진도 있고 “아, 이 사람은 늙어도 참 곱구나” 싶은 사진도 있다. 심지어 성별을 바꾸기도 한다. 하도 많이 올라와서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 재밌기도 해서 나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삼청동에서 과학 전문서점 갈다를 운영하는 천문학자 이명현 박사는 여자로 변환한 사진을 여러 장 올렸다. 증명사진을 변환시킨 게 아니라 원래 내가 알고 있던 장면의 사진에 나온 남자 이명현을 여자 이명현으로 바꿨다. 완벽하다. 오히려 이명현 박사는 여자로 태어나면 더 좋았을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다. 또 여자 이명현 박사의 얼굴에서 그의 딸 모습을 보면서 유전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도 새삼 느끼게 됐다. (그래서 내가 이 앱을 사용하지 못한다.)

그런데 페이스 앱을 침팬지에게 적용하면 어떨까? 쉽지 않을 것이다. 엄니 때문이다. 여기서 엄니란 어머니 혹은 어금니를 짧게 부른 게 아니다. 포유동물 가운데는 유달리 길게 자라는 이빨을 가진 동물들이 있다. 보통 앞니와 송곳니 가운데 엄니로 자라는 게 있다. 생각해 보시라. 어금니는 너무 안쪽에 있어서 길게 자랄 수가 없다. 상아라고 부르는 코끼리 엄니는 앞니가 발달한 것이고 멧돼지와 바다코끼리의 엄니는 송곳니가 발달한 경우다. 


침팬지의 엄니. ©게티이미지뱅크



코끼리나 바다코끼리만큼 크지는 않더라도 엄니가 있는 동물들은 많다. 늑대와 침팬지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침팬지는 수컷에게만 엄니가 있다. 이 엄니는 수컷끼리 싸울 때 사용한다. 가끔 가다가 실제로 엄니를 사용해서 싸우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엄니를 보여 주는 것만으로도 싸움은 끝난다. (사람들도 그렇다. 실제로 주먹질을 하거나 대포를 쏘는 일보다는 포악한 표정을 드러내는 것만으로 싸움이 끝난다. 다행이다.) 

침팬지에게 페이스 앱을 적용하여 성별을 바꾼다면 엄니 때문에 전혀 다른 존재로 보일 것이다. 남자 침팬지 이명현 박사를 여자 침팬지 이명현 박사로 바꾸면 완전히 다른 침팬지로 보여서 원래 이명현 박사를 짐작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아무런 재미가 없다. 페이스 앱은 침팬지에게는 쓸모없는 앱이다. (아마 침팬지가 스마트폰으로 소셜 미디어 활동을 한다고 해도 페이스 앱이 인기를 얻지 못할 것이다.)

침팬지 수컷의 싸움이 보통 평화적으로 끝날 수 있는 까닭은 무리 내에서 또는 다른 집단과의 싸움에서 엄니가 때때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엄니에 물려서 크게 다치거나 치명상을 입어 죽는 것을 보았고 그것을 잘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진짜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엄니를 보여 주는 수준에서 승부를 가리려고 하는 것이다. 

침팬지와 인류가 공통 조상에서 갈라선 게 700만년 전이다. 각자 다른 진화의 길을 걷는 동안 침팬지는 큰 변화가 없어서 여전히 700만년 전과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살아가지만 인류는 혁신에 혁신을 거듭했다. 이마가 턱과 같은 수직선상에 놓일 정도로 커졌고 눈두덩이가 거의 없어졌으며 턱과 이빨은 작아졌다. 엄니 역시 사라졌다. 

우리는 개와 고양이처럼 작은 동물에게 물리는 것도 두려워한다. 하지만 사람에게 물릴 것을 걱정하면서 살지는 않는다. 엄니가 없기 때문이다. 개와 고양이는 흉기를 들고 싸우지 않지만 사람은 누군가를 헤치려고 할 때 꼭 흉기를 찾는다. 엄니가 있고 없고의 차이다. 인간의 송곳니는 엄니로 자라기는커녕 높이도 그 옆의 다른 치아보다 같거나 낮다. 물어봐야 송곳니 상처를 내기가 어렵다. 

인류는 왜 엄니라고 하는 어마어마한 살인 병기를 포기했을까? 가장 합리적인 해석은 서로 위협하거나 죽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툼이 없지는 않았지만 온순한 존재가 된 것은 사실이다. 먹이의 변화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싸울 때 적에게 치명적인 송곳니는 위턱에 난 송곳니다. 실제 인류의 송곳니는 위턱부터 먼저 작아졌다. 식성보다는 싸움이 줄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설득력이 있는 까닭이다.

침팬지는 갈등을 전쟁으로 해결하는 데 반해 가장 가까운 친척인 보노보는 갈등을 사랑으로 해결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만큼 보노보는 평화의 상징이다. 그런데 인간은 보노보보다 몸집은 더 크지만 송곳니는 더 작다. 이것은 인류가 보노보 이상으로 평화로운 존재라는 뜻이다. 

원시인과 달리 현대인은 식량을 구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침팬지와 달리 누구나 짝을 지을 수 있다. 적어도 우리는 보노보뿐만 아니라 원시인보다도 더 평화롭게 살아야 한다. 사진 편집 프로그램만으로 쉽게 남녀 얼굴이 변환되는 존재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고 크게 싸우지는 말고 착하게 살자. 

이정모국립과천과학관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이정모 칼럼
한국일보가 직접 편집한 뉴스 네이버엣도 보실 수 있습니다. 뉴스스탠드에서 구독하기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