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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는 체킹이 될까

입력
2020.07.01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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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가 극성이라는 지적에 따라 팩트체킹이 유행이지만, 그 또한 하나의 도그마일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가짜뉴스가 극성이라는 지적에 따라 팩트체킹이 유행이지만, 그 또한 하나의 도그마일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문제는 ‘가짜 뉴스’가 아니라 ‘뉴스 그 자체’다.” 언젠가부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떠돌아다니는 문구다. 정곡을 찔렀다. 그런데 그게 오직 뉴스만의 문제일까. 어떤 일을 재현(再現)한다는 것, 그러니까 ‘다시 현재화(re-present)한다’는 건 늘 근본적 문제, 즉 재현은 원형과 절대 똑같을 수 없다는 딜레마에 빠지기 때문이다.

책 좋아한다는 이들이 즐겨 인용하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소설 ‘과학의 정밀성에 대하여’는 한 걸음 더 나간다. 소설은 제국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지도를 만들다 보니 어느새 지도가 실제 제국 크기만 해졌다는, 짧고도 간단한 얘기다. 서울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지도가 서울만한 크기라면, 그게 과연 지도로서 실용성이 있느냐 되묻는 우화다. 그러니까 완벽한 현실 재현이란 불가능할뿐더러, 설사 가능하다 해도 쓸데 없는 짓이란 얘기다.


환상적 리얼리즘으로 유명한 소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한국일보 자료사진

환상적 리얼리즘으로 유명한 소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한국일보 자료사진


그래서 재현이란, 결국 용도에 맞게 의미를 부여해 실제 세계를 적절하게 변용하는 작업이다. 말하자면 일종의 ‘인지적 가상 지도’를 만드는 작업인데, 여기에는 당연히 일정 정도의 취사선택과 도약, 그리고 편견이 끼어든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야마 잡아 쓴다’는 언론이 대표적이다. ‘문제의식 있는 비판적 언론인’ 노릇 하느라 이러면 이런다고 욕하고 저러면 저런다고 욕하거나, 어느 날 문득 홀로 이상하다 느낀 바를 우겨대는 ‘뇌피셜 야마’ 같은 기레기적 사례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 사회적으로 너무나 올바른 나머지 ‘좋아요’ 수천 개, 공유 수천 회를 기록한 기사 또한 현실의 한 조각, 세상을 보는 한 시각에 불과하긴 매한가지란 얘기다. 뉴스라는 것이 기존의 고정 관념에 기댈 수 밖에 없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가짜 뉴스가 아니라 뉴스 자체가 문제란 얘기는 그 의도와 무관하게 꽤 설득력 있는 말이다.

이건 언론만의 문제도 아니다. 언론은 생리상 ‘미네르바의 부엉이’보다 ‘광산의 카나리아’를 지향하다 보니 도드라져 보일 뿐이다. 기자와 달리 강제 수사권을 지닌 검사의 공소장, 모든 자료와 진술 등을 검토한 뒤 제3자 입장에서 판단했다는 판사의 판결문 또한 ‘범의(犯意)’를 기준으로 한 인지적 가상지도일 뿐이다.

판검사들이 ‘실체적 진실’ 운운해봐야 수사와 판결을 두고 숱한 이견이 쏟아지는 이유이자,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는 이유이자, 나중에 가서야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식의 증언이 나오는 이유다. 한명숙 사건은 여러 사례 중 하나일 뿐이다.


지난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1주기 추도식에 참여한 한명숙 전 총리. 김해=뉴스1

지난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1주기 추도식에 참여한 한명숙 전 총리. 김해=뉴스1


인지적 가상 지도가 인간 존재의 근본 조건이라면 팩트 체킹, 아니 이럴 땐 윗니로 아랫입술 가볍게 깨물며 F 발음 확실히 살려주는 ‘퐥트’ 체킹 따위 해봐야 대체 무슨 소용일까. 그거 사실, 디지털 시대 영악한 틈새전략 정도 아닐까.

이런 고민, 똑똑하단 사람들이 안 했을 리 없다. 빌 게이츠의 친구 한스 로울링은 그걸 ‘팩트풀니스(Factfulness)’라 했다. 부자 친구가 없어 덜 유명하지만 로울링 훨씬 더 이전에, 훨씬 더 흥미로운 방식으로 일본계 호주 역사학자 테사 모리스 스즈키는 ‘트루스풀니스(Truthfulness)’란 말을 썼다.

‘팩트’ ‘트루스’라 하지 않는다. ‘팩트풀’하다, ‘트루스풀’하다고 한다. ‘풀’이란 망설이는 어떤 포즈다. 이게 바로 팩트라고, 트루스라고 규정짓고 선언하고 단언하고 화 내고 가르치려 드는 게 아니라 이 정도라면 그렇게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슬쩍 물러서는, 여백을 만들어내는 제스처 같은 것이다.

모두가 팩트와 트루스를 내세우는, 모두가 ‘SNS 선지자’인 이 시대, 한번쯤은 이런 생각도 해본다. ‘퐥트’ 체킹 놀음이 극에 달해 마침내 뭐가 뭔지 모를 지경에 이르면, 어느 철학자 말마따나 “눈 밝은 피로”를 지닌 이들이 ‘풀’한 태도의 말과 글을 애써 찾아보는 때가 오지 않을까.

출근 직후 조회수 그래프를 보다 잠시 든, 디지털 퍼스트 시대 망상이다. 유명 정치인, 연예인 이름, 여야, 남녀, 미중, 한일, 보수진보 등등. 자, 오늘의 키워드는 무엇이냐.

[기자사진] 조태성

[기자사진] 조태성


조태성 문화부장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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