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규제 1년… 日기업? '韓기업 고객'? 잃을 처지
WTO 제소ㆍ현금화와 얽혀 갈등 해결 요원
일본 정부가 지난해 7월 한국에 대한 반도체ㆍ디스플레이 핵심소재 3개 품목 수출규제를 발표한 지 1년이 지났다. 한국의 해당 산업분야가 큰 타격을 입을 것이란 당초 예상과 달리 일본 수출기업의 실적 악화와 함께 한국인 관광객 급감 등으로 되레 일본이 부메랑을 맞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이 수출규제 대상으로 고순도 불화수소와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를 지정한 의도는 명확했다. 한국의 기간산업인 반도체ㆍ디스플레이 제조 공정에 필수소재이고 대일 수입의존도가 높다는 약점을 파고든 것이다. 그러나 지난 1년간 국산화 등 공급망 다변화에 나선 한국이 받은 부정적인 영향은 당초 예상보다 크지 않은 반면 일본 수출기업 입장에서는 큰 수출시장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에 직면했다.
고순도 불화수소 수출기업들이 대표적이다. 스텔라케미화가 지난달 발표한 2019년 회계연도(2019년 4월~2020년 3월) 결산에 따르면 순이익은 전년 대비 18% 감소한 19억엔이었고, 매출과 영업이익도 전년에 비해 각각 12%, 32% 줄었다. 스텔라케미화 측은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등에 따른 반도체 액정부문의 수출판매 감소를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모리타공업화학은 올 1월 한국에 대한 수출을 재개했다. 수출규제 시행 후 5개월만에 일본 정부로부터 수출허가를 받은 것이다. 하지만 한국 기업들은 이미 일본 이외 지역에서 안정적 공급망을 확보했고, 이에 따라 모리타공업의 올해 판매량은 수출규제 이전 대비 30% 정도 감소했다. 쇼와덴코도 지난해 순이익이 전년 대비 34% 감소한 730억엔, 매출은 전년 대비 9% 감소한 9,064억엔이라고 발표했다.
일본에선 미국 화학제조업체 듀폰이 지난 1월 충남 천안에 극자외선(EUV)용 포토레지스트 공장 건설을 발표한 것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한국 기업의 납품처 우선순위에서 일본 기업들이 점점 밀려나고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강제동원 배상판결에 대한 보복조치였던 일본의 수출규제는 한국 내 반일(反日)감정을 악화시켰다. 이는 일본제품 불매운동과 일본여행 자제운동으로 이어지면서 관광 등 일본 내 다른 산업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수출규제 직전인 지난해 6월 일본을 찾은 한국인 관광객은 61만1,900명으로 중국에 이어 2위였다. 그러나 7월에 56만1,700명으로 줄었고 12월엔 24만8,000명까지 급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진정되더라도 한국인들의 일본 관광이 활성화할지는 불투명하다.
문제는 수출규제 갈등이 강제동원 배상 문제와 얽혀있다는 점이다. 한국 정부는 일본 측이 주장한 수출규제의 근거를 모두 개선한 만큼 원상회복을 요구하고 있지만 일본은 이를 외면하고 있다. 이에 한국 정부는 지난 18일 세계무역기구(WTO) 사무국과 주제네바 일본대표부에 분쟁 해결을 위한 패널 설치 요청서를 제출했다. WTO는 29일(현지시간) 패널 설치 여부를 논의할 예정이다.
도쿄의 한 외교소식통은 "일본의 수출규제는 강제동원 배상 판결과 연계돼 있어 일본 측이 먼저 수출규제를 완화할 가능성은 적다"고 분석했다. 게다가 한국 사법부가 일본제철의 압류자산에 대한 현금화(매각) 절차를 밟고 있는 데 대해 일본 정부는 '모든 선택지'를 거론하는 등 추가보복까지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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