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단체, 신뢰의 길을 잃다
(상) 투명하지 않은 회계장부
정의기억연대(정의연) 회계부실 의혹을 계기로 유명무실한 정부의 공익법인 감시체계가 도마 위에 올랐다. 공익법인 성격에 따라 주무부처가 다른 데다, 설립 인가를 내주더라도 사후 관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아 정부가 공익법인들의 방만한 운영을 방치했다는 지적이다.
28일 비영리단체 전문평가업체 한국가이드스타와 국세청 등에 따르면 의무 공시 대상 공익법인 총 9,663곳 중 수억원의 예산을 사용하고도 지출 명세서조차 작성하지 않고 있는 공익법인이 다수 확인됐다. 자산 규모 100억원 이상이어서 외부 회계 감사 대상인 공익법인 중 일부는 감사보고서를 공개해야 하는 의무가 있지만 표지만 공개하는 등 '꼼수'를 사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공익법인의 성격, 사업에 따라 관할부처가 제각각이라 모두가 책임을 회피하는 사각지대가 발생했다고 지적한다. 설립 허가의 경우 사회복지법인은 보건복지부가, 사립대학재단ㆍ장학재단은 교육부가 맡는 식이다. 업무별로 세금 관련 신고는 국세청과 기획재정부가, 기부금 모집 등록은 행정안전부가 담당한다.
중앙에서 권한을 위임받아 이들을 관리 감독해야 할 지자체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한 지자체의 경우 관내 500개 이상의 공익법인을 직원 단 2명이 관리하고 있기도 하다. '나눔의집' 사태 때도 내부고발자들이 경기도와 광주시, 여성가족부와 총리실 등 주무부처에 민원을 넣었지만 어느 곳에서도 제대로 된 답변을 받지 못한 것이 '컨트롤타워'의 부재 때문이었다.
특히 가장 중요한 회계를 전담하는 국세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통상 국세청은 7월 중 일괄적으로 공시 점검을 한 후 문제가 있는 곳에 재공시 등을 요청, 미이행시 가산세를 부과하고 있으나 행정력이 미치지 못해 규모가 큰 공익법인들을 중심으로 관리해왔다. 국세청 관계자는 "공시된 결산서류에 불성실 또는 오류내역이 발견되면 공익법인 소재지 관할 지방국세청에 제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미국은 국세청(IRS)이 감사와 공익성 테스트를 통해 전체 공익법인의 세제 혜택 부과 여부를 일괄 결정한다.
이에 법무부는 공익법인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민관 합동 '공익위원회' 신설을 골자로 하는 공익법인법 개정안 초안을 마련, 입법예고 할 방침이다. 회계사 등 민간 전문가들과 각부처 공무원들이 모두 참여하는 공익위원회는 공익법인의 설립 허가권부터 시작해 감독 및 감사, 기부금 모집, 활성화 지원 등 공익법인 관련 전권을 갖는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미르재단 사태를 계기로 공익법인 투명성 강화를 위해 공익위원회 신설을 100대 국정과제로 선정했다. 2018년 3월부터 7월까지 법무부 산하 테스크포스(TF)에서 개정안이 마련됐으나, 기존안인 총리실에서 법무부로 이관되며 타부서에 권한을 내주기 꺼려하는 부처간 불협화음으로 진행이 지지부진했다. 이번 정의연 사태를 계기로 추진에 속도가 붙었다.
총리실 산하 시민사회위원회에서 개정안 초안 작업에 참여했던 주성수 한양대 명예교수는 "호주 모델 기반의 공익위원회에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 자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면 물의를 일으키는 공익법인의 인가 취소, 시민들이 원하는 정보 공시 제도 등 공익법인 투명성 강화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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