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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조차 ‘깜깜이’ 공시…만연한 공익법인의 부실회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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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조차 ‘깜깜이’ 공시…만연한 공익법인의 부실회계

입력
2020.06.28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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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단체, 신뢰의 위기에 빠지다??<상>투명하지 않은 회계장부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부실 회계처리 의혹 등을 사하는 검찰이 지난 5일 압수수색을 실시한 경기도 안성시 '평화와 치유가 만나는 집' 모습. 연합뉴스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부실 회계처리 의혹 등을 사하는 검찰이 지난 5일 압수수색을 실시한 경기도 안성시 '평화와 치유가 만나는 집' 모습. 연합뉴스


편집자주

최근 부실 회계 등으로 논란이 된 정의기억연대 사태를 계기로 시민사회단체의 여러 난맥상이 드러났다. 후원 및 기부금으로 활동하는 단체의 특성상 투명성이 생명인데도 회계 장부는 부실하기 짝이 없었고, 정치무대를 지향하는 활동가들로 인해 비정부기구(NGO) 본연의 비판 기능도 상실했다. 3회에 걸쳐 길을 잃은 시민사회단체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정상화의 길을 짚어봤다.

 

‘2019년 공익변론에 11억 지출, 수혜인원 2,000만명. 2018년 11억 지출, 수혜인원 0명.’

대표적인 시민사회단체 중 하나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이 2018, 2019년 국세청 홈텍스에 공시한 결산 내역은 아이러니 투성이다. 공시에 따르면 민변은 2018년 5월부터 2019년 4월까지 공익변론에 총 11억6,804만5,521원을 지출했고 수혜대상은 무려 전체 인구에 절반 가까운 2,000만명이다. 반면 직전 결산기준에서는 2017년 5월~2018년 4월 마찬가지로 공익변론 등 고유목적사업과 관리비 등에 11억8,406만8,158원을 사용하고 수혜인원은 제로로 기록했다.

민변의 회계장부는 수혜인원을 9명, 99명, 999명으로 기록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의연과 마찬가지로 국세청에 결산 및 자산 내역을 공시해야 하는 공익법인이지만, 허술하기 그지없다. 누구보다 법률에 정통한 변호사 단체조차 회계를 허술하게 관리ㆍ운영해온 셈이다. 이로 인해 민변은 올해 초 국세청으로부터 “공시 내역 일부가 공익법인 회계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민변이 국세청 홈텍스에 공시한 2018년 5월부터 2019년 4월까지의 기부금품 모집 지출명세서. 민변은 공익변론 목적으로 대표지급처 모변호사 등 2,000만명에 11억원, 정기예금 목적으로 모은행 계좌 등 2,000만명에 20억원을 지출했다고 공시했다. 국세청 홈텍스 캡처

민변이 국세청 홈텍스에 공시한 2018년 5월부터 2019년 4월까지의 기부금품 모집 지출명세서. 민변은 공익변론 목적으로 대표지급처 모변호사 등 2,000만명에 11억원, 정기예금 목적으로 모은행 계좌 등 2,000만명에 20억원을 지출했다고 공시했다. 국세청 홈텍스 캡처


민변이 국세청 홈텍스에 공시한 2017년 5월부터 2018년 4월까지의 기부금품 모집 지출명세서. 민변은 공익변론 등 고유목적사업비 및 일반관리비 목적으로 0명에 11억원을 지출했다고 공시했다. 국세청 홈텍스 캡처

민변이 국세청 홈텍스에 공시한 2017년 5월부터 2018년 4월까지의 기부금품 모집 지출명세서. 민변은 공익변론 등 고유목적사업비 및 일반관리비 목적으로 0명에 11억원을 지출했다고 공시했다. 국세청 홈텍스 캡처


공익법인 80%가 불성실 공시

 

정의연의 부실회계 의혹을 계기로 비영리 공익법인의 ‘깜깜이 회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각에선 “내가 낸 후원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당최 알 수가 없다”며 후원금 반환 청구 소송에 나서는 등 시민단체에 대한 기부자들의 불신도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이를 계기로 공익법인 회계와 운영 전반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봐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정의연 사태를 계기로 사회적 이슈가 된 시민단체의 회계부실은 일부의 일탈이 아니다. 민변 같은 대형 공익법인에서도 회계 공시는 단체 업무의 우선 순위 중 가장 뒷전으로 밀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28일 비영리단체 정보제공업체 한국가이드스타에 따르면 2019년 공시 의무가 있는 공익법인 9,663개 모두에 외부 회계감사 기준을 적용할 경우, 이중 불성실 공시로 '평가 제한' 판정을 받은 곳은 7,814개에 이른다. 공익법인 5곳 중 4곳(80.8%)의 공시가 그 정확성을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빈약하다는 분석이다.

회계 불투명 사유 가운데 인건비를 제로로 공시한 공익법인이 4,955개로 가장 많다. 직원 수를 0명으로 기재한 곳도 1,877개에 이른다. 일반관리비 및 모금비용을 0원인 곳 또한 4,857개다. 해당 단체의 목표, 즉 고유목적에 사용된 사업에 한 푼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공시한 곳도 1,326개나 된다.

공익법인도 불투명 회계에 대해 할말이 없지 않다. 별도 회계담당자를 둘 정도로 여유가 없고, 실제로 상임근무자가 없어 인건비가 발생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산업재해 피해자 지원사업을 하는 수도권 지역의 A재단법인의 경우 고유목적사업비, 관리비, 인건비를 모두 '0원'으로 공시했다. A재단 관계자는 “상임 여직원이 1명인데, 봉사 차원에서 급여는 받지 않고 출장비 등 형태로 받아왔다”라며 "내년 공시부터는 세세한 내역까지 정확하게 공시할 방침"이라고 해명했다. 장애인 관련 복지사업을 하는 B사회복지법인은 직원 수를 0명으로 기재했다. B법인 관계자는 “급여를 받는 사람은 이사장 한 명뿐인데, 법인 산하 기관에서 원장을 겸직해 거기서 인건비가 지급돼 그렇게 기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떤 경우라도 후원금이나 기부금으로 운영하는 공익법인은 1원 한 장의 지출 내역까지 투명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박성환 한밭대 경영회계학과 교수는 “공익법인은 공익을 위한다는 그 신성한 목적 때문에 세금 감면 등의 혜택을 받는다”라며 “돈을 어디서 받고, 또 어떻게 사용했는지 1원이라도 정확하게 보고하는 것은 후원자들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책임이자 의무”라고 꼬집었다.


'기부 의향' 48%→39%로 줄어

회계 내역을 자세히 공개했다고, 혹은 공개하지 않았다고 자금 사용이 적법하게 이뤄졌거나 이뤄지지 않았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다만 회계 불투명성이 공익법인 전체에 대한 사회의 신뢰도를 크게 흔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기부 경험이 있는 사람’은 2013년 전체 34.6%에서 지난해 25.6%로 감소했다. 향후 기부 의향이 있다고 밝힌 비율은 같은 기간 48.4%에서 39.9%로 떨어졌다. 반면 모금단체 등을 통하지 않고 대상자에게 직접 기부했다는 비율은 2013년 12.8%에서 작년 17.0%로 증가했다. 박성환 교수는 "공익법인 공시는 기부자들이 내 돈이 어디에 사용될지 미리 보여주는 지표로, 후원을 선택할 때 중요한 정보가 된다"면서 "불성실한 공시는 기부 문화의 위축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조금씩 모은 돈으로 좋은 일에 기부했다 배신감을 느낀 기부자들의 후원금 반환 소송도 잇따르고 있다. 최근 위안부 할머니 기부금 및 후원금 반환소송 대책 모임이 나눔의집과 정대협에 제기한 1, 2차 소송에 참여한 후원자는 총 55명. 청구 금액만 8,700만원에 이른다. 소송을 대리하는 김기윤 변호사는 “후원자 중에는 계약직으로 일하며 받은 적은 월급으로 100만원을 후원한 20대 여성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검찰청에 따르면 2015년만 해도 3건에 불과하던 기부금품법 위반 혐의 기소 사례는 2019년 12건으로 증가했다.


"시민단체 거버넌스도 투명해야"

전문가들은 공익법인에 대한 시민사회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회계뿐 아니라 공익법인의 거버넌스 또한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진단한다. 예산 집행 결정 등이 기록된 운영위원회나 이사회 회의록 등을 적극적으로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이드스타에서 최고 평점을 받은 법인들조차 아직 여가까지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의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설립된 재단법인 '바보의나눔'의 경우, 가이드스타 평가 기준으로 4년 연속 별 3개(만점)을 받았다. 기부금 수익과 지출 내역을 1원 단위까지 정확하게 공시하고, 홈페이지에 결산서까지 수십장에 걸쳐 기부자들에게 철저하게 공개하고 있다. 매년 홈페이지에 법인카드 사용내역까지 모든 사항을 하나도 빠짐없이 공개하고 있지만, 이사회의사록은 아직 공개되지 않고 있다.

주성수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명예교수는 "기부자는 공익법인의 주체 중 하나로서 자신의 기부금이 법인 운영위에서 어떤 방식의 표결을 거쳐, 얼마나 그리고 어디에 사용하게 됐는지 그 결정 과정 또한 보고 받을 권리가 있다"면서 "기부자 중 한 명이 시민들의 대표 형식으로 운영위원회 위원에 포함돼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후원자는 기부금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감시해야 하며, 공익법인은 후원자에게 지속적인 피드백을 주는 기부문화가 정착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공익법인 관리 체계가 뛰어난 미국처럼 공익법인 평가 지표를 고도화하는 방법도 대안 중 하나로 꼽힌다. 미국 공익법인 평가단체 '채리티 내비게이터'는 투명성 평가 지표로 최고경영진의 급여, 이사회의 독립성 등을 사용한다. 박두준 한국가이드스타 연구위원은 "한국은 해당 정보를 알 수 있는 공시 양식조차 존재하지 않는다"라며 "공익법인이 기부자 등 이해관계자와 소통하는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민감한 정보라도 공개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글 싣는 순서>

(상) 투명하지 않은 회계장부

(중) 스스로 권력집단이 된 NGO

(하) 어떻게 정상궤도 되찾을까

이승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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