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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이 거기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입력
2020.06.26 22:0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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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수를 마시며 더위를 식히고 있는 의료진. 뉴시스

냉수를 마시며 더위를 식히고 있는 의료진. 뉴시스


안네 스펙켄스는 이제 막 의학박사 학위를 받고 종합병원 정신과 병동에서 일하게 된 신출내기 의사였다. 어느 밤, 당직 근무를 서는 그를 집중치료실에서 급하게 호출했다. 환자 한 명이 엄청난 불안감을 호소하며 호흡곤란을 일으키고 있으니, 얼른 와서 조치해달라는 청이었다. 서둘러 환자의 의료파일을 훑어봤지만, 별 특이사항은 없어 보였다. 다만 며칠째 잠을 자지 못한 채 불안증세를 호소한다는 내용이 눈에 띌 뿐이었다. 

환자에게 간 스펙켄스는 자신이 왜 여기로 왔는지, 충분한 수면이 병세를 완화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를 찬찬히 일러주었다. 환자가 곁에 앉은 초보 의사를 한참이나 바라다보더니 이상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는 자신이 잠을 자는 사이에 죽음을 맞을까 봐 두렵다고 말했다. 잠이 들면 영영 못 깨어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고, 아내와 아이들을 다시는 못 볼까 봐 무서워서 눈을 감고 잠을 잘 수가 없다는 호소였다. 그는 어린 자녀 둘을 둔 40대 초반의 남자였다. 한창 나이에 병상에 누워 있는 그의 고통이 짐작은 갔다. 그렇다고 해도 죽음이 두려워 잠을 이룰 수가 없다니. 집중치료실에서 일하는 그 어떤 의료진도 그가 촌각을 다투는 위험에 처해 있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스펙켄스는 걱정하지 말라고 환자를 안심시킨 뒤 그가 숙면에 들도록 안정제를 처방하고는 그곳을 벗어났다. 이튿날 아침, 스펙켄스는 어젯밤 그 환자가 잠을 푹 잤는지 확인하러 집중치료실로 갔다. 남자의 파일을 찾았지만 있어야 할 곳에서 보이지 않았다. 그는 지나가던 간호사를 붙들고 해당 환자의 파일이 어디 있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종종걸음치던 간호사가 짧게 대답했다. “아, 그 환자는 지난밤에 사망했어요.” 당신이 거기 서 있는 초보 의사였다면 어땠을까?

지난 한 달 사이 네 번이나 종합병원을 들락거렸다. 4월 초부터 시작된 위병이 영 낫지를 않아서였다. 마스크를 쓴 채 소화기내과 전문의와 상담하고, 종합검진을 받고, 개운치 않은 이상소견이 발견돼 CT 촬영하고, 그걸 두고 전문의와 다시 상담하는 과정이 이어졌다. 공교롭게도 그 한 달 동안 내가 읽었던 건, 의사와 간호사들이 들려주는 ‘내 인생을 통째로 바꿔놓은 환자’에 관한 번역원고였다. 아픈 이들과 함께 생사의 살얼음판 위를 달리며 숱한 죽음을 목격하는 사람들. 흡사 고해성사처럼 풀어놓은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정작 놀라웠던 건, 의료진이야말로 감정적 타격에 가장 심대하게 노출되는 약자라는 깨달음이었다. 그러다 보니 전에는 보이지 않던 의료진의 표정들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선별진료소 구석에서 꾸벅꾸벅 졸던 방호복 차림의 남성, 연신 구토해대는 환자를 다독이다 끝내 눈물 흘리던 젊은 간호사, 눌린 풍선처럼 푹 꺼진 위내시경 사진을 보며 불안을 숨기지 못하던 내 담당의의 까만 눈동자…. 

스펙켄스는 말한다. 30년 전 그날 아침, 충격과 절망감에 떨던 그 순간을 단 하루도 잊은 적 없다고, 그 일로 인해 자신의 진로까지 바뀌었지만, 그날의 상처는 낙인처럼 영혼에 남아 있다고. “모든 의사의 가슴에는 그들만의 묘지가 있다.” 외상 외과의 카림 브로히의 말은 의사들이 감내하는 숙명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코로나19 최전선에서 사투를 벌여온 의료진의 처우를 놓고 연일 보도되는 상식 이하의 뉴스를 읽으면서 속상한 한편 분노가 치민다. 선의로 달려갔든 직업적 책무로 임했든, 의료진을 그렇게 대해서는 안 된다. 육체적·심리적 타격이 적잖을 그들을 물심양면 보호하지는 못할망정 절차상 문제를 들먹이며 책임 공방을 벌이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거기에 있던 의사와 간호사라면 어떨까? 이런 처우를 당하고도 또다시 선의와 직업적 소명에만 기대 헌신할 수 있겠는가?



지평님 황소자리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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