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않기로 하는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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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않기로 하는 선택

입력
2020.06.26 16:00
수정
2020.06.26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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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결혼 전, 엄마와 출산에 관한 이야기를 길게 나눌 기회가 있었다. “엄마, 나는 아기 안 낳으려고.” 꽤 오래전부터 생각해 왔던 이 말을 입 밖으로 꺼내자, 엄마는 내가 본 중 가장 충격을 받은 듯한 얼굴로 왜 아이를 낳아야 하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낳아야지, 왜 안 낳는다고 그래. 네가 있어서 내가 얼마나 행복했는데. 그리고 애가 없으면 나이 들어서 외로울 거야.” ‘네가 있어서 행복했다’는 엄마의 말에 잠깐 뭉클해졌지만, 나는 열 달 동안 아이와 함께 내 몸을 나눠 써야 하는 것이 무섭고, 무엇보다 내가 낳은 아이가 한 명의 어른으로 무사히 자랄 때까지 잘 책임질 자신이 도무지 없다고, 그래서 낳지 않기로 마음먹었다고 대답했다. 엄마는 눈을 창밖으로 돌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앞으로 그런 말은 나한테 하지도 마라. 생각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어….” 그 이후로 길에서 작은 아이들과 마주칠 때마다 엄마는 나에게 들으란 듯이 “얘 좀 봐. 얼마나 귀엽니?”라고 말하고는 하지만,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가족 외에, 나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왜 아이 낳을 생각을 하지 않냐’라는 무례한 말을 거의 들은 적이 없다. 친구나 동료 중 대부분은 결혼하지 않았거나, 결혼했더라도 나처럼 아이를 낳지 않기로 선택한 여성들이다. 운 좋게도 출산의 압박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었던 셈이다.

얼마 전 출간된 최지은 작가의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에는 나처럼 딩크(Double Income No Kids의 줄임말. 의도적으로 아이를 갖지 않는 맞벌이 부부를 뜻한다) 여성 17명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들은 정말로 아이를 낳지 않아도 되는지, 왜 자신이 낳지 않기로 하는 선택을 하게 됐는지 끊임없이 흔들리고 고민한다. 모두가 출산에 관한 타인의 무례함에서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강화도 조약’에 비견될 만큼 가족으로부터 전방위적인 압박을 받는 경우도 있고, 아이를 둘 정도 낳고 키우는 부부, 즉 소위 말하는 ‘4인 정상 가족’으로 살아가는 모델이 주변에 많아 낳지 않는 선택을 하면서도 ‘내가 잘못된 걸까?’라는 의심을 품게 되는 경우도 있다.

만약 결혼은 했지만 아이는 낳지 않는 여성들에게 어떤 비난들이 쏟아지는지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면, 딩크 여성 관련 기사의 댓글들을 보면 된다. 주로 ‘아이를 낳지 않을 거라면 군대에 가야 한다’ ‘결혼을 했는데도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들은 사회 구성원의 자격이 없다’ ‘미래에 다른 사람들이 낳은 자식들이 낸 세금으로 당신들을 부양하게 되니, 당신들은 민폐를 끼치는 거다’ 등이다. 여성의 삶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너무나 잘 알 수 있다. 누군가는 결혼과 동시에 여성이 할 일이란 출산과 육아뿐이며, 그래서 엄마가 되는 것, 아니 엄마‘만’ 되기로 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모든 사람의 삶은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고, 여성의 삶도 마찬가지다. 엄마 ‘까지도’ 된 여성들 역시 엄마이기만 한 것은 아니며, 그들에게도 다른 삶의 단면과 다른 역할이 있다.

아이가 있는 삶은 어떤 식으로든 행복하고 동시에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거기서 오는 행복과 고통을 영영 모르고 살아갈 테지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불확실성은 여기까지라는 걸 안다. 다만, 영원히 경험하지 못할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좁은 나의 삶에만 갇히지 않기 위해, 기억하려고 한다. 무언가를 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나와 같지 않다는 것, ‘선택’ 자체가 어려운 사람들도 있다는 것, 모든 사람이 자신의 자리에서 각자의 행복과 고통을 껴안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 누구도 다른 누구의 삶을 단순히 불행하거나 단순히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



황효진 콘텐츠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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