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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기술 대 끊기지 않게" 가업 승계로 도시제조업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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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기술 대 끊기지 않게" 가업 승계로 도시제조업 살린다

입력
2020.06.26 01:0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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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ㆍSBA, 주얼리 기계금속 인쇄 등 도시제조업 가업승계 지원

기술 강국 일본의 경쟁력은 ‘모노쓰쿠리’에 있다. 혼신을 쏟아 최고의 물건을 만든다는 뜻이다. '마이스터'로 대표되는 독일 경제의 힘은 '히든 챔피언'에서 나온다. 작지만 강한 기업이라는 뜻이다. 반면 한국은 어떤가.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로 무장한 기업들이 숱하지만, 그마저 전수가 안돼 대가 끊기는 상황이다. 나라 경제의 든든한 바탕이라기보다는 세금으로 부축해야 할 대상이다. 서울시가 주얼리, 인쇄, 기계금속, 의류봉제, 수제화 등 도시 제조업 분야 기업들의 ‘가업 승계’ 지원에 나선 배경이다. 가업 승계를 마쳤거나 준비 중인 2세들을 만나, 도시제조업의 부활 가능성을 들여다 봤다.

40년 가까이 주얼리 도금업 외길을 걸어온 아버지의 뒤를 잇기 위해 가업승계를 준비 중인 이재호씨가 도금을 마친 제품을 검수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40년 가까이 주얼리 도금업 외길을 걸어온 아버지의 뒤를 잇기 위해 가업승계를 준비 중인 이재호씨가 도금을 마친 제품을 검수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24일 오후 6시 국내 최대 주얼리 업체가 밀집해 있는 서울 종로3가 안쪽에 위치한 ‘쁘띠도금’ 사무실. 이경만(59) 대표와 그의 아들 재호(30)씨가 퇴근도 잊은 채 바삐 몸을 놀리고 있다. 알록달록한 색깔의 약물과 전기도금 설비들로 가득 찬 40㎡ 남짓한 공간은 화학실험실과 흡사하다. 이 대표는 전기도금 일을 36년째 하고 있다. 100% 손기술로만 이뤄지는 일이다. 경험이 곧 품질이다.

국내 주얼리 제조 기술은 세계 정상급이다. 국내 기능인들이 국제기능올림픽에서 18회 연속 메달을 땄다. 그러나 이 같은 기술 대부분이 전수가 되지 않아 사라질 위기다. 대학에서 귀금속보석디자인을 전공한 후 아버지 밑에서 일을 배우고 있는 재호씨가 가업 승계에 나선 이유다. 재호씨는 “가업을 잇지 않으면 40년 동안 쌓인 아버지의 노하우가 사라질 상황”이라며 “아버지 기술을 이어 받아 나중에는 도금을 넘어 주얼리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새로운 꿈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말했다.

1986년 아버지가 문 연 기계금속업체 '서광기계'를 '서광테크'로 개명해 승계한 박원모 대표가 다양한 정밀 부품을 가공할 수 있는 '머시닝 센터' 를 만지고 있다. 박형기 인턴기자

1986년 아버지가 문 연 기계금속업체 '서광기계'를 '서광테크'로 개명해 승계한 박원모 대표가 다양한 정밀 부품을 가공할 수 있는 '머시닝 센터' 를 만지고 있다. 박형기 인턴기자



10년 넘게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아버지의 사업을 넘겨받은 박원모(43) 대표의 사연도 재호씨와 비슷하다. 기계금속 업체 '서광테크'를 창업한 아버지가 은퇴하면서 그 기술들이 사장될 위기였다. 박 대표는 "기계금속 분야는 기술력을 갖춘 업체들이 많은데, 영세하고 작업 환경이 열악한 탓에 가업 승계가 아니면 기술을 이어가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아버지의 기술에 더해 자신만의 아이디어와 방식으로 회사를 변신시키는 중이다. 서광테크는 영등포구 문래동 경공업지대에 '서광기계'라는 이름으로 1986년 문을 열었다. 30년 이상된 노후한 건축물이 대부분이라 작업장 환경이 열악하다보니 청년층 유입도 저조하다. 그마저도 일이 손에 좀 익을까 싶으면 금세 그만둬 버린다고 한다. 직원 6명 중 절반이 50대 이상이다.

박 대표는 아버지 사업과 기술을 이어받되 자신만의 새 방식을 도입하기로 했다. 우선 구전되는 작업 방식을 문서화해 시스템을 만들었다. 한국표준협회로부터 ISO9001 인증도 준비하는 등 박 대표가 회사를 맡은 뒤 공장 규모와 직원 수는 배가 됐다. 그는 “하나의 기술로 지난 30년을 왔는데, 그 기술을 발전시켜 또 다른 30년을 갈 수 있는 기술을 찾아내겠다"고 말했다. 청년들의 외면으로 국내서는 사양길로 접어든 사업이라지만, 그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머니가 운영하는 인쇄기획사 '태화기획'에서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문정아 실장이 인쇄소공인을 위해 마련된 서울 중구 소재 인쇄정보센터에서 출력된 인쇄물을 확인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어머니가 운영하는 인쇄기획사 '태화기획'에서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문정아 실장이 인쇄소공인을 위해 마련된 서울 중구 소재 인쇄정보센터에서 출력된 인쇄물을 확인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시대가 빠른 속도로 변하면서 사양 사업으로 접어든 것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인쇄업의 쇠락은 더하다. 여기에 도전장을 낸 청년이 있다. 어머니가 꾸려온 인쇄기획사 '태화기획'을 승계하기 위해 4년 전 경영 일선에 선 문정아(31) 실장이 주인공이다.

문 실장은 "인쇄업이 사양 산업이라고 밖에서 이야기를 들었지만, 들어와 보니 오히려 그 반대였다”며 “인쇄업이라는 게 굉장히 세분화된 과정의 합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비전을 봤다”고 말했다. 태화기획은 업력 30년 이상의 업체들이 각 공정을 나눠 맡고 있는 서울 최대 인쇄업 밀집지인 을지로에 있다.

문 실장은 자신과 같은 처지의 2세 모임 활동으로 자신의 회사뿐만 아니라 국내 인쇄업계의 성장을 이끌겠다는 각오까지 다지게 됐다. 2세 모임은 업계 최신 기술ㆍ동향 교육과 이들의 ‘네크워킹’을 지원하고 있는 서울시의 지원이 바탕이 됐다. 정기적으로 만나 아이디어와 고민을 나누다보니 자연스레 모임으로 발전했다.

문 실장은 "기획 일만 해서 책이 어떤 과정을 거쳐 나오는지는 잘 몰랐는데, 동종 업계의 2세들과 소통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며 “더 많은 젊은이가 일할 수 있도록 이 업을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등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 등으로 빼앗긴 국내 인쇄업의 부활이 그의 궁극적인 목표다.

2018년부터 '도시제조업 가업승계 지원사업'을 통해 '젊은 사장님'들을 지원, 성과를 확인한 서울시와 서울산업진흥원(SBA)은 올해도 도시 제조업 5개 업종 밀집 지역 6곳에서 2세들의 가업 승계를 돕는다. 안춘수 SBA광역소공인특화지원센터장은 "수작업에 의존한 장인들의 기술 노하우를 승계하기 위해서라도 가업 승계는 필요하다"며 "이를 통해 국내 제조업 경쟁력도 지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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