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행사 통해 지지율 회복 노린듯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는 러시아에서 제2차 세계대전 승전 75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가 열렸다. 이미 헌법개정을 선언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장기 집권’을 위한 국민투표를 앞두고 통과 여부 불안감에 무리수를 뒀다는 비판이 거세다.
24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러시아 정부는 이날 수도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1만4,000명의 병력과 각종 무기 및 군사장비 230여대를 동원한 군사 퍼레이드를 강행했다. 푸틴 대통령은 연설에서 자부심을 한껏 드러냈다. 그는 “유럽은 소련에 자유를 빚졌다”며 “우리 군인들이 그들의 땅을 지켰고, 침략자로부터 해방시켰으며, 독일인들을 나치즘에서 구해냈다”고 주장했다.
원래 승전 기념일은 지난달 9일이었지만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한 차례 연기됐다. 그러나 누적 감염자가 60만명을 넘어서는 등 러시아에선 하루 7,000명씩 확진 환자가 추가되고 있어 대규모 야외 행사가 위험하다는 전문가 경고가 끊이지 않았다. 게다가 이날 군인 등 참석자 대다수가 밀집된 공간에서 보호장구도 없이 행사를 치르는 장면이 포착돼 집단감염 우려는 더욱 커지는 상황이다. 푸틴 대통령은 코로나19 취약층으로 분류되는 80~90대 참전군인들과 악수할 때조차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누가 봐도 이런 무리한 행보는 푸틴의 조급증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그는 올 1월 국정연설에서 2036년까지 사실상 종신 집권을 가능케 하는 개헌안을 제안했다. 그러나 유가 하락과 코로나19 봉쇄에 따른 경기침체가 겹치면서 지난달 푸틴에 대한 지지율은 집권 20년 만에 최저치인 59%까지 추락했다. 내달 1일 예정된 국민투표가 코 앞에 다가온 터라 애국심을 자극하는 대형 행사를 마다할 처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25일부터 시작되는 사전투표 일정을 감안한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야권은 투표 연기를 촉구하고 있다. 아나스타샤 바실리예바 의사노조 대표는 “푸틴이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국민 생명보다 우선시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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