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 똥만 봐도... 뭘 먹고 어떻게 지냈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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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 똥만 봐도... 뭘 먹고 어떻게 지냈는지 알 수 있다

입력
2020.07.0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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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멧새. 극지연구소 제공


조선시대 광해군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엔 나인이 임금의 배변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 임금의 주치의였던 어의는 건강을 파악하기 위해 변의 맛을 보고 상태를 살폈다고 한다.

실제로 최근 연구에 따르면, 분변 속 미생물은 숙주가 되는 동물의 면역, 대사, 신경과 연관되어 건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연구자들은 장내 미생물 군집을 ‘제2의 인간 게놈’이라 부르며 어떤 미생물이 살고 있는지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의학적인 중요성을 인정받아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이미 지난 2007년부터 인간 장내 미생물 연구에 약 2,000억원의 자금을 투자해 그 조성과 역할을 분석하고 있다. 그 결과 학자들은 인간 뱃속에 살고 있는 미생물에 대해선 조금 이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는 분변 미생물에 대해 잘 모르는 점이 많다. 특히 인간 외에 다른 동물의 장내 미생물은 이제 막 연구가 시작되는 단계에 있다. 지난 2017년 여름, 그린란드 북쪽 끝 시리우스파셋에서 캠핑을 했다. 약 3주 간 텐트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구석구석 어떤 생물이 살고 있는지 살폈다. 여름엔 눈이 녹아 동토가 드러나며 이끼와 풀이 자란다. 그리고 모기를 비롯한 작은 날벌레들이 바닥 가까이 날았다. 처음엔 동물이 그리 많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는데, 땅을 밟으며 돌아다니자 이곳저곳에서 새들의 소리가 들렸다. 바다에서 그리 멀지 않은 호숫가엔 분홍발기러기(Pink-footed goose)가 모여 깃갈이를 했다. 가파른 절벽 돌 틈에 난 구멍 속엔 흰멧새(Snow bunting)가 둥지를 지었고, 바닥에 깔린 풀 사이로 세가락도요(Sanderling)가 웅크리고 알을 품었다.

이 새들의 뱃속엔 어떤 미생물이 있을까? 나는 세 종의 신선한 분변을 채집했다. 분류학적으로 볼 때 서로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같은 장소에서 먹이를 함께 먹는다면 비슷한 미생물을 공유할 수도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분홍발기러기는 물가에서 찾을 수 있는 수생식물을 주로 섭취한 반면, 흰멧새와 세가락도요는 거의 곤충을 입에 물고 있었다.

만약 예상이 맞다면, 흰멧새와 세가락도요는 비슷한 미생물을 공유할 것이고, 분홍발기러기는 이들과 전혀 다른 미생물 군집을 나타낼 것이다. 분변을 알콜에 담아 한국으로 가져온 뒤, 그 안에 있는 미생물의 유전물질을 추출하고 특정 염기서열을 증폭시켜 분석했다. 그리고 그 염기서열 결과를 토대로 각 분변마다 어떤 미생물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살피고, 종 별 차이를 비교했다. 결과를 확인해보니 세 종 모두 공통적으로 프로테오박테리아(Proteobacteria), 후벽균(Firmicutes), 의간균(Bacteroidetes)이 우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가락도요. . 극지연구소 제공


그리고 연구에 앞서 예상했던 것처럼 취식행동이 분변 미생물 군집 형성에 중요한 요인으로 나타났다. 곤충을 먹는 흰멧새와 세가락도요의 군집이 유사하게 나타났고 다양성이 높은 반면, 초식을 하는 분홍발기러기의 미생물 군집은 꽤 차이가 있었고 다양성도 낮았다. 이러한 결과를 토대로 볼 때, 북극 조류에서 계통분류학적 차이보다는 어떤 먹이원을 섭취하느냐가 장내 미생물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을 것이라 보인다. 아마도 먹이원에 따른 성분 차이로 인해 미생물 환경이 달랐을 것이고, 숙주가 되는 조류의 장내 먹이 소화와 흡수와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조금 더 자료가 쌓인다면, 마치 어의가 임금 변으로 건강 상태를 파악했던 것처럼 조류 분변만 봐도 이 새가 뭘 먹고 어떻게 지냈는지 대략 파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원영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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