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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케스 소설을 판소리로... 배경은 유럽... 이자람이 또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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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케스 소설을 판소리로... 배경은 유럽... 이자람이 또 해냈다

입력
2020.06.25 20:0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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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판소리 '이방인의 노래'

소리꾼 이자람의 판소리 공연 '이방인의 노래'는 이주 노동자 부부와 고국의 전직 대통령간 만남을 해학적으로 그려낸다. 완성플레이그라운드 제공

소리꾼 이자람의 판소리 공연 '이방인의 노래'는 이주 노동자 부부와 고국의 전직 대통령간 만남을 해학적으로 그려낸다. 완성플레이그라운드 제공


무대에 작은 테이블이 여러 개 놓여 있다. 테이블 위 장미는 은은한 조명 빛을 받아 유난스럽게 빨갛다. 유럽 어느 도시의 고급스러운 카페 분위기. 곧 이어 카페에 걸어 들어오는 손님은 베이지색 점프슈트와 흰색 운동화 차림에다 염색한 머리를 자유롭게 풀어 내렸다. 

그런데 이게 판소리 공연 '이방인의 노래'다. 무대에 등장한 손님은 다름 아닌 소리꾼 이자람. 2016년 초연 땐 한복 차림으로 거의 서서 부르는 옛 판소리 공연 형식을 따랐는데 4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린 이번 공연은 이를 완전히 갈아엎었다. "관객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해서 그들을 소설 속 그 공간으로 데려가고 싶은 욕심"이 일었기 때문이다.    

'이방인의 노래'는 남미 문학의 거장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단편 소설 '대통령 각하, 즐거운 여행을!(Bon Voyage, Mr. President!)'을 판소리로 재창작한 작품이다. 스위스 제네바에 사는 카리브 출신 이주 노동자 오메로와 아내 라사라, 그리고 큰 병을 고치러 마침 제네바를 찾은 고국의 전직 대통령간 우연한 만남을 그린다.  

남미 소설을 판소리로 변환하는 게 가능할까 싶은데, 이자람은 그걸 해낸다. 소설을 자유자재로 주무르는 솜씨가 여간 아니다. 가령 오메로가 스테이크를 먹는 장면은 소설 속에선 별 의미 없이 지나간다. 하지만 판소리 공연에서는 이 장면을 하이라이트로 삼았다. 

스테이크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안에 육즙이 폭죽처럼 터지더니, 오랜만에 먹은 고기에 오장육부가 꿈틀대자 오메로는 "고기도 사람을 골라서 흡수되더냐!" 외친다. 분명 유럽을 배경으로 한 남미 소설인데, 이 장면은 영락없이 골계미가 가득한 우리 판소리의 한 대목 같다.  


이자람은 '이방인이 노래'에서 점프슈트와 운동화 차림으로 공연을 한다. 우리 판소리는 이자람을 통해서 새롭게 다시 태어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자람은 '이방인이 노래'에서 점프슈트와 운동화 차림으로 공연을 한다. 우리 판소리는 이자람을 통해서 새롭게 다시 태어나고 있다. 연합뉴스?


이건 오롯이 이자람의 역량이기도 하다. 무대를 자유로이 오가는 이자람은 뮤지컬을 했다가 모노극도 하고, 스탠딩코미디 같은 재담까지 선보인다. 창과 아니리를 섞어 장면 묘사를 찰지게 하더니 눈썹을 씰룩거리는 전직 대통령,  잔뜩 움츠린 오메로, 매서운 눈길의 라사라로 돌변한다. 이자람은 "전통 판소리 공연에는 없는 빠른 몸동작을 잘 표현하기 위해 1인극 전문 배우들에게 배웠다"고 말했다.  

판소리의 변신에 대한 소리꾼 이자람의 도전은 이번만이 아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희곡을 판소리로 옮긴 '사천가'와 '억척가'를 만들어 호평받았고, 지난해에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판소리 '노인과 바다'를 무대에 올렸다. '이방인의 노래' 다음 작품도 창작 판소리인데, 역시나 이번에도 고전 중 고전인 '멕베스'를 골랐다. 프랑스 1인극 연출가와 호흡을 맞출 예정이다.  

7월 5일까지 서울 한남동 더줌아트센터.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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