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이 가봤다]다음달 고위험시설부터 전자출입명부 의무 시행…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유흥업소, 공공기관, 교회…보여주는 QR코드부터 성경책 속 바코드까지 다양
시간 장소 가리지 않고 감시하는 ‘빅브라더’ 출현 우려도 커져
“선생님, 전화번호만이라도 좀 불러 주세요. 그냥은 못 들어가세요.”
19일 충남 천안의 A나이트클럽 입구. 어떻게든 들어가겠다는 중년 남성과 어떻게든 잡아서 전화번호를 얻어내겠다는 직원 사이에선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나 죽겠어”, “제가 더 죽겠어요”하는 심상찮은 말도 오갔다. 손님과 2m 이상 떨어져 있었음에도 강렬한 알코올 냄새가 코를 찔렀던 상황. 그런 취객에게서 개인 정보를 받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닌 듯했다. 왜 직원은 들어가려는 손님을 붙잡고 전화번호를 물어본 것일까.
나이트클럽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산뜻했던 민트색의 입간판에서 그 ‘단서’를 찾아볼 수 있었다. 입간판 중 하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한시적으로 영업일을 단축한다는 안내가, 다른 하나엔 전자출입명부(KI-Pass) 시행에 따른 QR코드 발급 안내가 보였다.
비단 거나하게 취하지 않았더라도 구석에 세워진 그 안내 사항을 꼼꼼히 읽고 들어가는 사람은 없었다. 그 탓에 직원은 찾아오는 손님 한 명 한 명마다 네이버 QR코드를 보여달라고 말해야했다. 오후 9시 30분. 아직 한가한 시간대였지만 단체 손님이 올 때마다 입장 시간은 계속해서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전자출입명부’ 의무 시행을 일주일 앞두고 해당 시설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정부가 지정한 고위험 시설은 이달 말까지 계도 기간을 거쳐 다음달 1일부터 입장하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전자출입명부를 받아야 한다. 고위험 시설에는 23일부터 추가된 △방문판매 등 직접 판매 홍보관 △유통물류센터 △대형학원(일시 수용 인원 300인 이상) △뷔페를 포함해 △헌팅포차 △감성주점 △유흥주점 △단란주점 △콜라텍 △노래연습장 △실내집단운동(격렬한 GX 등) △실내 스탠딩공연장 등이 해당된다.
전자출입명부는 기본적으로 QR코드를 사용해 개인 정보를 수집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현재는 네이버 모바일 앱이나 웹 버전에서만 QR코드 사용이 가능하다. 그러나 네이버 회원이 아니거나 고령층을 비롯해 스마트폰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 회원 가입부터 어려움을 겪는다.
실제로 A나이트클럽 관계자는 “QR코드 때문에 손님과 실랑이를 벌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네이버 로그인조차 안 돼 있거나 너무 취해서 대화조차 쉽지 않은 손님들이 많다. 그럴 땐 전화번호라도 받아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최소한의 정보라도 받아두면 이후에 해당 장소에서 확진자가 발생하거나 혹은 확진자와 동선이 겹친 손님이 나왔을 때 바로 연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확한 정보는 방역의 기본이다. 지난달 초 이태원 클럽 관련 집단 감염 발생 당시 허위로 작성한 출입자 명부 때문에 보건 당국은 역학조사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처럼 취했다는 이유로 혹은 시스템이 복잡하다는 이유로 본인 인증에 허술함이 생기면 제2의 이태원 클럽 사태가 또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전화번호만 입력해도 본인인증 끝...취한 손님도 문제없어
결국 나이트클럽 직원은 막무가내로 들어가려는 손님에게 전화번호만이라도 알려달라 요구했다. 손님은 취기에도 자신의 전화번호만은 또렷이 대답했다. 직원은 전화번호를 태블릿PC에 입력했다. ‘띠링’하는 소리와 함께 취객 주머니에서 문자 알림음이 울리고 직원은 그제서야 입장을 허락했다. 해당 직원은 “문자가 왔다는 건 자기 전화 번호가 맞다고 볼 수 있는 확률이 높으니까 일단 들여보낸다”고 설명했다.
태블릿 PC에는 ‘씽씽패스’ 웹 페이지가 띄워져 있었다. 씽씽패스는 네이버 QR코드의 불편함을 보완하기 위해 스타트업 회사 자이엔트가 개발한 인증 프로그램이다. 전화번호만 알려주면 인증이 끝나기 때문에 QR코드보다 훨씬 쓰기 편하다. 자이엔트 관계자는 “QR코드 하나만으로는 모든 상황을 커버할 수 없다”며 “여러 이유로 QR사용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까지도 출입 관리가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라며 씽씽패스 개발 이유를 설명했다. 예를 들어 QR코드는 스마트폰 액정이 깨졌거나 해상도가 낮은 경우 잘 보이지 않는데 그럴 때 씽씽패스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
설명만으로는 100% 이해가 되질 않았다. 기자들은 네이버 QR 인증 방식과 씽씽패스를 동시에 사용 중인 나이트클럽 입구에서 시연해 봤다. 과정은 간단했다. 우선 준비된 태블릿 PC에 전화번호를 입력하면 몇 초 안에 문자 메시지가 온다. 해당 문자에는 본인 인증을 할 수 있는 링크가 적혀 있는데, 접속해서 이름을 넣으면 코로나19 자가 진단 화면이 뜬다. 열이 나는지 안 나는지 등 3개의 항목에 ‘있음’ 혹은 ‘없음’을 체크하고 확인이 되면 재입장 시 보여줄 수 있는 QR코드와 협조해줘 감사하다는 문구가 뜬다.
그런데 실제로 해보니 전화번호 전체를 입력한다는 게 오히려 더 개인 정보가 유출되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네이버 QR코드는 본인 인증 할 때를 빼곤 개인 정보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씽씽패스는 태블릿PC에서 인증할 때부터 전화번호 전부를 적는다는 부담이 있었고 문자에도 언제, 어디를 방문했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적혀 있었다. 4주 뒤에 이 정보가 폐기된다는 안내를 보고 난 뒤에야 불안감을 덜 수 있었다.
자이엔트 관계자는 국가 재난 상황에서 사생활 침해를 최소화하고 서비스는 간소화하자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이태원 클럽 방문자들이 실제와 다른 개인 정보를 적는 바람에 방역 당국이 기지국 전파를 추적하고 카드 결제 기록을 열람하는 등 무분별한 사생활 침해가 이뤄졌다. 이런 개인 정보 침해를 최소화하고, 신속한 역학 조사를 가능케 하기 위한 방법을 고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전화번호를 입력하는 순간에 개인 정보는 철저하게 암호화돼 가게 주인도, 개발자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려주려 한다”고 전했다.
더 편리한 방법은 없을까...고민에 빠진 다중이용시설??
그런가 하면 지방자치단체에서 직접 개발한 전자출입명부를 이용하는 곳도 있다. 서울시 성동구는 한발 앞선 지난달 15일부터 노래방, PC방 등 일부 업종에 '모바일 방명록'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모바일 방명록의 특징은 네이버 QR코드와 달리 '제가 한번 찍어보겠습니다' 방식이다. 구청 혹은 업장 앞에 비치된 QR코드를 카메라 앱으로 찍으면 이름과 전화번호를 입력할 수 있는 웹 페이지가 뜬다. 본인 인증 후엔 발열 상태 및 해외 여행 경험 등에 대한 검증을 거친다. 처음 1회만 본인 확인을 하면 이후 성동구 내 다른 업소에 출입할 때도 QR코드를 스캔하는 것만으로도 인증이 가능하다. 또한 모바일 방명록을 이용해 확진자와 같은 시간대 같은 장소에 방문한 출입자는 실시간 ‘출입제한’ 조치를 안내 받는다.
성동구의 한 노래연습장 업주는 24일 “출입 관리가 편해졌을 뿐더러 감염 위험에 대한 불안감도 덜었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여러 명이 한꺼번에 올 때면 일행 중 일부만 자기 연락처를 남겼고 그마저도 진짜 번호인지 알 길이 없었지만 모바일 방명록은 모든 손님의 연락처를 일시적으로 확보할 수 있고, 가짜 번호를 남기는 것도 막을 수 있다.
성동구의 모바일 방명록과 정부의 전자출입명부 시스템을 함께 사용한다는 그는 "이용자 비율이 9대1 정도로 구에서 만든 모바일방명록 사용 빈도가 높다"라며 "카메라로 찍기만 하면 되고, 본인 인증도 한 번만 하면 되니까 손님들이 훨씬 편리해한다"고 설명했다. 성동구청 관계자 역시 "구민들 사이에서 모바일 방명록의 만족도가 아주 높다"고 덧붙였다.
교회 등 종교시설 등도 입출입 관리로 고민이 많다. 전자출입명부를 의무적으로 도입할 필요는 없지만 신도들이 많이, 그리고 자주 드나드는 탓에 코로나19의 핵심 전파지가 될 수 있다는 우려의 시선이 있기도 했다. 전자출입명부를 도입하면 효과적으로 출입 관리가 가능한 데다가 신속하게 동선 파악을 할 수 있다.
다만 나이많은 신도가 대다수인 교회엔 네이버 QR코드 대신 씽씽패스 같은 민간 기업의 기술을 쓰는 것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전의 한 교회 목사는 “현재는 손으로 직접 연락처를 쓰는 방식으로 신도들의 출입을 관리하고 있다”며 “하지만 효과적으로 신도들을 관리하기 위해서 어떤 방식으로 전자출입 명부를 활용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토로했다. 네이버 QR코드는 15초에 한 번씩 바뀌기도 하고 스마트폰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QR코드보다 손으로 직접 적는 것이 훨씬 편할 수 있어서다.
그럼에도 그는 전자출입명부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이 목사는 “코로나19가 감기 같은 단순한 질병이 아니라는 걸 우리 모두 알았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는 신도들에게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공동체가 돼야 한다”며 “신앙과 안전을 동시에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교인들이 수만 명을 웃도는 초대형 교회는 그나마 상황이 조금 낫다. 규모가 큰 만큼 신도 목록을 이미 전산화를 통해 보관하고 있는 상태라 출입 기록 관리가 훨씬 수월하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서울의 A교회에서는 외부 업체에 의뢰해 등록된 교인에게 고유한 바코드를 부여하고 있다. 해당 바코드를 통해 출입을 관리하는 것이다. 혹시 문제가 생기거나 교회를 찾은 신도가 아직 등록이 안 돼 있는 경우엔 현장에서 임시로 바코드를 발급해 준 다음 정식으로 교인 등록을 해주는 시스템을 구축해뒀다.
모든 동선이 다 기록된다고? 또 다른 빅브라더 우려는 없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개인의 동선이 디지털로 박제된다며 ‘포스트’ 빅브라더 출현에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미 경찰과 통신사, 카드사가 연계돼 역학조사 과정에서 사적인 정보를 수집할 수 있게 됐는데, QR코드로 개인 정보까지 수집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걱정이다. 과도한 사생활 침해라는 의견도 있다.
현장에서도 개인 정보 유출 우려로 방문하는 손님들이 줄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나이트클럽 관계자는 “단골 손님들이 먼저 연락을 해서 앞에서 QR코드로 인증하냐고 물어본다. 그렇다고 하면 개인 정보가 유출될까봐 안 온다는 사람도 많다”고 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국가가 개인 정보를 수집하는 것을 두고 설전이 벌어지고 있다. A커뮤니티의 한 누리꾼은 “이게 빅브라더가 아니고 무엇이냐”며 “(수집된 개인정보를) 4주 후 폐기한다고 하는데 믿을 수 없다”(대****)고 말했다. B커뮤니티에서도 "실제로 중국에서 사용한다는데 우리는 개인 정보가 수집되는 것에 대해 너무 관대한 것 같다"(so****)고 불만을 제기하는 누리꾼도 있었다. 반면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문제 제기 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재난 상황이니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흑****), "수기보다 훨씬 더 안전한 듯"(블****)이라며 어쩔 수 없다는 반응도 나왔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진자가 계속 늘고 있는 상황에서 개인 정보 수집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단순히 유흥시설뿐만 아니라 방문 판매 업체나 대형 학원 등 우리 일상과 밀접한 공간까지 집단감염의 위험에 노출됐기 때문이다. QR코드가 보편화하는 현상을 거스를 수 없다면, 그 다음을 생각해야 한다. 대상 범위는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진 않을 것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원칙적으로는 코로나19 위기 경보가 '심각'이나 '경계' 수준일 때만 전자출입명부를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제도 도입 전 성동구청의 방식도 검토했고, 그 외의 여러 가지 방식을 고민하다가 지금 방식을 선택했다"며 "네이버 QR코드 방식이 역학조사에 필요한 최소한의 개인 정보만 수집하는 것"이라고 이유를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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