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비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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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비핵화

입력
2020.06.24 18:00
수정
2020.06.24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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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되는 北美 대화 실패는 불신이 뿌리
북핵 협상, 미 대선 후 새길 모색 불가피
중재자 역할 더욱 의욕 내 성과 만들어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6월 30일 판문점 남측 자유의 집에서 나오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판문점=연합뉴스

북한 핵개발 의혹이 처음 제기된 것이 1982년쯤이고 국제 안보 이슈로 본격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을 전후해서다. 이를 저지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비핵화 노력이 3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지 못하다. 대화와 설득도, 경제 제재와 군사적 압박도 핵을 가지려는 북한의 강한 욕망을 꺾지 못했다. 사그라드는가 싶을 때마다 그 욕망을 부추긴 건 거듭된 북미의 적대 관계 해소 실패다.

이 과정에서 한반도는 참으로 여러 번 전쟁의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세계적인 핵 군축 바람을 타고 북한은 1992년 국제원자력기구(IAEA) 핵 안전조치 협정에 서명한다. 하지만 신고 내용을 의심한 IAEA가 특별사찰을 요구하자 이에 반발해 이듬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해버렸다. 북미 간 말폭탄이 오가는 가운데 핵 개발의 싹을 자르기 위해 당시 빌 클린턴 정부는 제한된 북한 폭격을 진지하게 검토했다. 1차 북핵 위기의 시작이었다. 당시 대북 강경파이던 윌리엄 페리 국방장관은 정밀 타격으로 북한 핵시설을 공격하는 계획을 입안했다. 하지만 치밀하게 준비된 제한 전쟁으로도 초기에만 미군 5만명, 한국군 49만명이 죽거나 다치고 100만명의 민간인이 피해를 볼 것이라는 계산이 나오자 계획은 보류됐다.

그 뒤 북미는 제네바 합의로  화해의 토대를 마련했지만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는 조지 W 부시 정부에서 다시 위기에 봉착한다. 2003년 북한은 또다시 NPT에서 탈퇴했고 길게 보면 그때 시작된 위기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물론 그 사이 6자회담 등 새로운 방식의 대화를 통해 얻은 성과가 적지 않지만 그 약속들은 어느 것 하나 충분히 이행되지 못한 채 휴지 조각 신세가 되고 말았다. 대화로 결실을 끌어내는 것보다 그것을 깨기가 훨씬 쉬웠다. 상호 신뢰가 없으니 어렵사리 도달한 합의는 사상누각일 수밖에 없다. 남북미 평화 무드가 조성되기 직전인 2017년에 북한 폭격설이 파다했던 기억이 새롭다.

논란이 되고 있는 볼턴 회고록은 북미 협상이 이처럼 과거에도 지난했을뿐 아니라 현재도 어렵다는 것을 재확인시켜 준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 협상할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볼턴 같은 강경 우파들의 입김이 거셌던 백악관과 국무부도 일사불란하지 않았다. 북미 대화는 미래도 어려울 것으로 보는 게 상식에 부합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미가 여전히 협상의 해답을 쥐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누군가 나서서 이들에게 이제 줄다리기는 멈추고 그만 종목을 바꿔 보는 것이 어떠냐고 설득해야 한다. 지난 2년여 동안은 문재인 정부가 이런 역할을 자임하고 북미 협상 중재와 남북 협력에 의욕을 낸 과정이었다. 평창동계올림픽에 김여정, 김영철이 참관한 것을 시작으로 이어진 남북미 대화의 새 역사를 누구도 폄훼하기 어렵다.

대화로 비핵화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를 "희망"했던 볼턴의 회고록에서도 역설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이런 노력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난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의 북미 정상회담 제안 이야기나, 문 대통령이 북미 합의에 종전선언을 포함시키려 하고, 하노이 노딜 이후 3차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려고 애쓴 정황들이 특히 그렇다.

북미와 남북의 평화 분위기가 서서히 무너져 가고 있다. 대선을 앞둔 미국은 북한 문제에 관심을 잃은 지 오래다. 북한은 미국의 무반응에 쌓인 불만을 남측을 향해 터뜨리고 있다. 대선 이후 미국 정부가 지난 두 차례의 정상회담 성과를 계승하는 대화를 이어갈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해도 그의 즉흥적 스타일을 우려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정권이 바뀌면 원점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예 새로운 협상을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비핵화는 잠시 길을 잃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중재자이자 당사자로서 문재인 정부의 역할과 책임은 커질 수밖에 없다. '한반도의 봄' 2라운드를 준비하는 전열을 가다듬어야 한다.

김범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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